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 4/ 두 번째 시간 공지/ 철학과 여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1-22 16:03
조회
184
“철학자들에게는 언제나 그대가 방금 말한 여가가 있어 이들은 평화롭고 여유롭게 대화한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며 어느새 세 번째 논의를 시작했듯이, 철학자들도 당장의 논의보다 새로운 논의가 더 마음에 들면 주제를 바꿀 수 있지요. 그들은 논의의 길고 짧음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진리에 이르는 것이라오.”(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숲, 92~93쪽)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조건으로 ‘여가’를 꼽습니다. 학위도 아니고, 지식의 양도 아니고, 말주변도 아닙니다. 철학자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여가입니다. “참주와 왕은 마치 목자가 산속 울타리 안에서 살 듯이 성벽에 둘러싸여 여가 없이 살기에 필시 목자 못지않게 촌스럽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자랄 것”(97쪽)이라고 말하며 여가가 없다는 점에서는 참주와 목자가 다를 바 없으며, 오직 철학자만이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가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건 물론 지혜에 대한 사랑을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시간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유시간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상식적인 관념과 시대적인 가치, 그리고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에 대해 거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률이나 법령이 논의되거나 반포되는 것, 관직을 차지하려는 정파들의 노력, 피리 부는 소녀들이 함께하는 술잔치 같은 것들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철학자는 정의 자체와 불의 자체는 각각 무엇이고 그것들은 어떤 점에서 서로 또는 다른 것들과 다른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여가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플라톤은, 뭐랄까 《테아이테토스》를 통하여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된 철학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속적인 삶에 무관심하고 본질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는 자. 피상적이고 잡다한 일상사를 초월한 사회 속의 은둔자. 저는 이런 철학(자)의 이미지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철학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만큼, 그것은 ‘현실’의 문제에 더욱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테오도로스, 테아이테토스가 보여주는 ‘지혜를 추구하는 자’의 태도 자체는 퍽 감동적이긴 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토론을 통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 혹은 자신의 논증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화 상대와 함께 어떤 공통관념을 형성하기를 욕망합니다. 저는, 이러한 토론의 윤리 자체가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에 대한 실천적 논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관점 속에서 무언가를 해석할 수밖에 없고, 다른 이들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고착된 관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테아이테토스, 테오도로스의 대화는 어떤 완벽하게 일치된 보편적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각자의 관점 속에 무언가 예측하지 못한 것을 출산해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무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지적 역량을 변환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상대주의에 내포된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힘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테아이테토스》를 끝까지 읽고 만납니다. 간식은 태미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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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3 09:25
    철학자의 여기가 단순한 시간적 여유가 아닌 상식적인 관념, 시대적 가치, 타인 의 시선 등에 대한 거리의 확보를 담보로 하고 있다.... 이래서 철학이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