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2학기 5주차 공지 '국가 없는 사회'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7-12 15:04
조회
100
바로 공지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끝까지 읽어오시면 돼요. 장자와 연결하면 좋겠지만, 먼저 클라스트르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원시부족을 분석하는지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력이 되시면 클라스트르의 문제의식과 장자의 문제의식을 크로스해주시죠. 이번에도 재밌는 생각들 기대하겠습니다!

세미나 후기는 호진쌤께서 정리해주실 테니, 간단하게 흥미로웠던 질문들을 스케치할게요.

크게 두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국가를 얘기하는 대신 사회가 자연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얘기하는 것 같다. 국가에 대한 논의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와 ‘언어 활동을 주로 분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였습니다. 앞의 질문이 저자의 문제의식과 관련된다면, 뒤의 질문은 인류학의 분석 방식과 관련됩니다.

 

다양한 형태의 정치권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권력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권력을 사유할 때, 우리는 대체로 ‘명령하는 소수와 복종하는 다수’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구도는 권력이 명령하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다수는 권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권력은 기본적으로 소수가 다수에게 가하는 폭력·강제라는 이미지에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물론 클라스트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만을 선(善)이고 발달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클라스트르는 자기 민족의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다른 민족의 정치권력을 평가하는 것을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원시부족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그것도 고도로 발달된 정치권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회들은 모두 또는 거의 대부분 지도자, 우두머리가 이끌고 있는데, 주목해야 할 결정적 특징은 이들 추장들 중 누구도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14~15) 오히려 추장은 재물이나 말을 자신이 끊임없이 증여함으로써만 추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증여하기를 요구받기도 하는데요. “그때 추장은 대부분의 자기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합니다.(51) 제가 생각했던 지도자는 힘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리더의 이미지였는데, 지도자로서의 추장은 어쩐지 좀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클라스트르는 이러한 정치적 양상에서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중앙집권적·강압적 권력’을 예방하는 노력들이 보인다고 분석하죠. 아마 책 제목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인 것도 근대 국가의 형태를 취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양한 사회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인 듯 합니다. 클라스트르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한 사회의 정치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구적 정치권력을 모델로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 사회의 정치를 문제삼을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저희에게는 그런 기준들이 부재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정치를 필요로 하고, 그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정치를 사고할지 등등 더 많이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말하기의 정치성

원시부족 중에서 고유한 문자(文子)를 가진 부족은 거의 없습니다. 서구의 민속학이 많은 원시부족을 덜 발전된 야만인으로 분류하는 것도 그들의 무문자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자가 없다고 해서 정치권력이 발달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문자가 없어도 말을 통해서 그들의 인식 구조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단어에 얼마만큼 주목하느냐가 그들의 세계관을 표현합니다. 단어로 표현되지 않은 사물은 그들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란 얘기죠.

그런데 클라스트르가 말하기에 주목한 것은 인식 구조를 분석하기보다 추장과 부족원들 사이의 독특한 관계 맺음을 분석하기 위함입니다. 그도 다른 인류학자들처럼 언어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말하기가 어떤 관계에서 작동하는지, 부족 내에서 말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자 등에 대한 분석은 전통적인 인류학의 분석 방식을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추장은 다른 부족원들과 달리 부족 내에서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입니다. 분쟁은 오직 추장의 말하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부족원들은 공식적으로 말할 권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추장의 말하기를 침해할 것이라고 스스로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추장은 말을 증여함으로써 부족의 평화를 수호하고, 동시에 자신의 권위도 유지합니다.

약간 맥락이 달라지지만, 태미쌤께서 최근 고민하고 계시는 ‘힘 있는 말하기’를 질문하셨습니다. 추장이 말을 증여함으로써 부족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말이 실재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추장은 부족원들의 귀에 쏙쏙 박히도록 얘기해야 합니다. 추장의 말에는 그들이 겪고 있는 분쟁을 해결할 지혜와 슬픔에 압도되지 않을 유머가 모두 담겨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추장이라는 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장에게는 말하기야말로 자신의 실존이 달린 활동입니다.

세미나에서도 말하기는 실존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뻔하고 재미없는 말은 다른 세미나원들의 귀에 흔적을 새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무시당하기도 하죠. 최근 태미쌤께서도 본인의 말하기가 어딘가 불통(不通)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추장의 말하기에 눈길이 갔던 것도 부족원과 통(通)하기 때문이죠. 무엇이 ‘힘 있는 말하기’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대략 함께 생각할 지점은 나왔습니다. ‘타인에게 가닿는 말’이어야 하지만, 대중 영합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확고한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만,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말하기’라는 행위는 타인에게 말을 전하는 행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즉, 자신과의 관계와 자신과 관계 맺는 타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에 힘이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사유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듯한데, 토론에서는 이 이상 진행되지는 않았네요. 하지만 태미쌤께서 이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가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마지막 주차에 이 고민으로 잘 풀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어떻게 발전시키실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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