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2학기 에세이 후기 '함께하는 것과 공부에 대하여'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8-24 12:51
조회
109
이번 청문회 2학기 주제는 ‘국가’였습니다. ‘국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면서 《장자》를 ‘국가’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어보는 시도이기도 했죠. 개인적으로는 장자가 국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국가 안에 살면서도 국가 너머를 어떻게 그리고 있었는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장자의 정치성(?)이라고나 할까요? ‘국가’라는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 저에게 익숙한 정치인데, 장자를 통해 ‘국가적인 것’을 해체하는 것 역시 정치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장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 여러 학파들을 어떤 점에서 비판하는지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양생(養生)이 그 자체로 정치적 실천일 수 있다는 느낌도 잡았습니다. 다만 아직 이걸 선생님들과 적극적으로 나눌 만큼 정리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장자가 비판하는 ‘국가’를 실체로 놓지 않고, 거기서 ‘국가적인 것’을 도출하는 지점에서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장자》와 새롭게 만날 길을 발견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도 이번에 장자와 만나면서 새롭게 느낀 매력이나 혹은 그를 통해 발견한 문제의식을 다른 공부에서도 계속 잡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이 마음을 담아 후기는 선생님들의 에세이와 그에 대한 코멘트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세미나의 힘

순옥쌤께서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시는 게 처음이셨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메모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토론 내용을 자기 식으로 정리해서 후기를 쓰는 것을 많이 어색해 하셨죠. 저희들이 보기에는 아주 충실히 잘 해주셨지만.^^ 마지막 에세이 발표에서는 ‘국가’나 ‘장자’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지는 못하셨지만, ‘함께 공부하는 것’에 대한 소회를 풀어주셨습니다.

순옥쌤은 호진쌤께서 어렵게 책 읽고 바쁘게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좋은 것이 있으니 저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공부를 하는거겠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데요.ㅋㅋ 이번에 순옥쌤도 호진쌤처럼 공부의 매력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세미나 특성상 책을 읽고, 메모하고, 말을 듣고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담감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생각이 발전되고 그게 또 미묘한 즐거움을 주죠. 공부를 시작할 때든 공부를 오래 했든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공통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느껴졌는데요. 함께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의 관념으로 새로운 사유의 길을 발명하도록 도와주고,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고유한 즐거움이 발생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죠! 한 번 이 맛을 느끼셨으니 이제 순옥쌤도 거의 영업이 끝났다고 봐야겠죠? ㅋㅋㅋ

태미쌤의 에세이 주제도 세미나에서 출발합니다. 태미쌤은 ‘세미나에서 경청하는 것’을 장자의 무욕(無欲)과 연결 지어서 풀려고 하셨는데요. 《장자》에서도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여서 해볼 만했지만, 이번에는 매끄럽게 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문제 삼아야 하는지 계속 구체화하는 중이셨습니다. 작년부터 같이 공부해오고, 지금도 ‘주역과 글쓰기’에서 함께 공부하는 입장에서 태미쌤께서 이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어쨌든 경청해야 할 필요성도 함께 공부하는 것을 고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데 절박하지 않으면 경청할 필요도 없죠. 다음에는 왜 경청할 필요가 있는지도 같이 버무려져서 에세이가 진행됐으면 좋겠네요. 함께 고민해요!

 

유쾌한 글과 가벼워지는 공부

그러나 공부하다 보면 마냥 즐거운 일만 겪을 수는 없습니다. 공부에 재미를 느꼈듯이, 공부가 재미없어질 때도 있죠. 순옥쌤이 ‘함께 공부하는 부담감’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쓰신 반면에, 호진쌤은 ‘함께 공부하는 부담감’을 당위적으로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하셨다고 쓰셨습니다. 둘 다 공부하면서 겪을 수 있는 모습이고, 4명에서 이렇게 상반된 글이 나올 수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어쨌든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은 심각한 모습으로 공부하고 무거운 글을 쓰는 것과 연관됩니다. 이 다크한 중량감이 정확히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부해야 할 혹은 공부를 그만둬야 할 필연적 이유를 찾을 때가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고, 공부를 그만두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 재밌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이 재미는 단순히 자극의 반응이 아니라 생각이 새롭게 구성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역량이 증대되는 느낌이겠죠. 공부가 어떻게 즐거움을 선사하는지는 꼭 풀어보고 싶은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건 의식이 아니라 마음이 정하죠. 이걸 부정하고 의식으로 인과를 만들 때 공부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진쌤의 에세이는 많이 무거웠습니다. 짧은 글에서도 ‘통제욕구’, ‘인정욕망’ 등 여러 주제들이 섞여 있었는데요. 이번 장자 세미나에 집중하지 못했던 자책감을 풀고 그 원인을 설명하시려고 했지만, 사실 이 시도가 글을 점점 더 무겁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코멘트를 나누면서 문제는 공부하는 태도와 연관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호진쌤은 글에서의 산만함과 자신의 공부가 연관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슷하게 저의 에세이에 대해서도 무겁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무거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공부에서 매번 걸려 넘어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자》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공부해도 무거워지는 것이 지금 제가 넘어가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문제제기는 심각하고, 그걸 푸는 유머러스함이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번 에세이에서도 그 문제가 다시 반복됐습니다. 장자적으로 공부한다면, 공부할수록 점점 더 가벼워져야 하는데 말이죠. 내가 배우는 철학이 몸에 새겨지지 않음을 보는 것은 참 괴롭습니다. 분명 이건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무엇일지, 유머는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지 등등 장자의 사유를 충분히 나눌 수 있었을 텐데요.ㅠㅠ 많이 찝찝하게 마무리됐지만, 아쉽다면 다음 학기에 다시 도전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ㅎㅎ 호진쌤과 태미쌤은 이번 학기까지 하신다고 하셨지만, 저는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학기는 노년을 사유하는 ‘예스 에이징’ 세미나와 콜라보했습니다. 마침 장자의 다음 주제가 생로병사이기도 했거든요. 현재 규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 한 번 보시고, 주변에도 홍보해 주세요. 학기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동일한 문제를 다른 주제 속에서 반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 달려보죠! 한 해 동안 한 철학자를 찐하게 만나는 것도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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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4 15:23
    제가 무거워지는 시점에 가벼움을 선사해주는 후기네요~ 그 가벼움이 정당화되지 않을 수 있게 한번 더 짚어주는 후기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고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