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숙제방

장자 시즌2 7주차 메모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8-06 08:57
조회
75
거대한 수탈-길들임 기구로서의 국가

“문명을 국가가 성취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고대 문명이 정착생활, 농경, 도무스, 관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 이는 실제 역사적 순서와는 근본적으로 상치된다. 신석기시대 인류가 이룩한 이 모든 업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국가와 비슷한 그 어떤 것이 나타나기도 전에 이미 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에 기초했을 때, 배아 상태의 국가는 후기 신석기시대 곡물과 인력 모듈을 통제와 전유의 기초로 활용함으로써 생겨난다. 이 모듈은, 나중에 다시 보게 되겠지만, 국가를 기획하는 데서 사용가능한 유일한 발판이었다.”(163~164)

제임스에 따르면,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든 기술, 이른바 문명이라 할만한 것은 국가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국가 이전에도 있었고, 오히려 국가가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거대한 ‘길들임’이다. 이 길들임 과정은 길들이는 주체와 길들여지는 대상 모두에게 적용된다. 3장에서 지적했듯이, 길들여진 곡물은 도무스의 집단적 보조 없이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동시에 도무스에 길들여진 인간은 이전의 습지 같이 풍부한 자연 속에서 수렵·채집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반도 잃어버렸다. 제임스는 습지 같은 곳을 떠도는 유목민들에게서 자연 경관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관습이 있었고, 그것들이 국가적 도무스에 저항하는 그들의 윤리였다고 지적했다.

그런 것에 비춰봤을 때, 지금 지구의 상태는 어떤가? 지구온난화는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였고, 최근에는 코로나가 기승이다. (‘코로나’는 국가를 넘어서서 글로벌 지구에 의해 초래된 질병이다. 코로나의 발생은 제임스가 3장에서 지적한 전염병의 발생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정도? 질병은 국가라는 도무스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 질병은 어디에나 침투 가능. 오히려 거대한 배양접시에서 발생한다. 선진국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코로나!) 지구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고, 인류는 그 변화를 초래한 원인인 동시에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여기에서 제임스가 주목했던 국가에 대항하는 유목민들의 욕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에 길들여진 삶은 생태계를 교란해도 괜찮다는 움직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어떻게 공통된 지반을 만들 것인가?

장자가 국가를 본성과 덕(德)을 훼손시키는 거대한 기구라고 비판한 것과 제임스가 국가를 ‘수탈-길들임’의 기구로 분석한 것은 맥을 같이하는 지점이 있다. 장자가 기심(機心)을 경계했을 때도, 그것은 마음을 정형화하는 모든 제도와 기술에 대한 거부 없이는 인간의 자유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자와 제임스의 질문을 따라가면 국가가 우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알 수는 있어도, 어떻게 국가 다음을 사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일단 나의 문제는 세계가 겪는 문제와 나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집단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별로 한 적이 없어서인지 사회적 문제라는 것에 반응하는 정도가 좀 떨어진다. 아니, 그런 것에 대해 둔하다. (헬조선에 대한 감이 없다. 이제는 조선이 얼마나 헬이든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 더 보편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건 코로나를 겪으면서 전 세계가 헬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어떤 사회든 내 한 몸은 돌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세계는 너무나도 지옥 같아 보인다. 평화로운 나의 세계와 지옥 같은 지구 세계. 그렇다고 지구 세계로부터 나의 삶을 설명할 수도 없고, 나의 삶을 그대로 지구에 투영할 수도 없다. 세계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고, 이것이 현재 국가 다음을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지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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