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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공통과제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1-08 23:12
조회
25
171107 절차탁마 M 공통과제 /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혜원

키워드: 기억, 시간

말할 수 있는 것, 말해지지 않는 것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는 최소 네 가지 카메라가 있다. 1. 멘델의 눈. 2. 게달리스트의 입장. 3. 게달리스트를 향한 시선. 특히 세 번째는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지는데 다름 아니라 게달리스트가 ‘저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의식하면서 대두된다. 그리고 4. 다수의 화자가 얽히는 ‘이 이야기’를 상정한 카메라. 작가는 이렇게 다수의 카메라를 들고 유대인 유격대 게달리스트를 조망한다. 그런데 이런 다수의 시점은 ‘유대인’유격대가 䃲차 대전’을 뚫고 나가며 ‘종전’이라는 결승선에 도달하는, 일관된 스토리의 완성을 방해한다.

나에게는 䃲차 대전’과 ‘유대인’이라고 하면 ‘수용소’로 수렴하는 일관된 이미지와 스토리가 있다. 나치는 군사적으로 강력하고 총통 독재국가이고 유대인을 절멸시키려는 ‘악의 힘’, 그리고 유대인은 약하고 차별받고 수용소에 갇힌 ‘무고한 희생자’사후적으로 보면 전쟁의 구도는 무엇이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힘과 그것에 희생되는 나약함으로 수렴하게 마련이다. 이런 이미지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저항했다’라고 하면 어디까지나 유대인들‘도’저항했다는, 예외적인 이미지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럼 유대인은 어디까지나 죽어가다가 나치의 적들에게 구원받은 수동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사후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䃲차 대전’의 이미지를 지운다. ‘지금’의 수용소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지금’여기서 구성해 낼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전쟁 중에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일단 움직일 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누가 죽는지, 누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시선이 나온다. 바로 멘델의 시선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 있다. 시계 수리를 비유로 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품의 이름과 역할을 기억하듯 자신이 만난 사람들, 게달리스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고장 나지 않은 과거를 복원할 수 있는 유대인 집단, 게달레 병영의 면면, 그중에서도 정신적 지주인 게달레에 주로 초점을 맞추며 이 시간을 넘어갈 뿐이다. 그의 카메라는 좁고, 멈추어 있고, 플래시백이 잦다.

멘델이 만난 게달리스트들은 어느 시점에 매여 있다거나 혹은 어떤 장소에 집착하지 않는, 그 자체로 ‘게달레 병영’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본적도 없고 거기서 뭘 할지 계획도 없는 채(어쩌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전쟁 중에 적아를 구분하며 움직이는 집단이다. 전쟁이 끝나고 게달리스트들은 더 전면에 드러난다. 게달레가 “종합선물세트”라고 자부했던 그들은 ‘유대인’집단으로 구분되어 수용되고 너나 할 것 없이 “무기력과 의심을 경험”한다. 전쟁이 끝나는지도 알지 못했던 게달리스트들이 마주친 것들은 알지도 못했던 수용소에 감금되는 치욕, 들어본 적도 없는 가스실, 종전임에도 여전히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차별받는 시선 등이다. 그들은 그런 시선 앞에서 ‘우리’를 강화하고 역동적으로 모험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한다. 그리고 정착하려 하는 자는 더 이상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이런 게달리스트들은 같은 유대인 집단에서도 이질적인 자들로 나온다. 게달리스트들을 초대한 S.부인의 심경이 묘사되는 것은 이 책에서 멘델을 제외하고는 가장 긴 분량이다. 그녀는 이미 이들을 '2차 대전'에 활약한 '유대인들'로보고 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 용기 있게 독일군에게 저항한 유대인들이지만 머릿니나 발싸개, 변소에서 목매달아 죽은 사람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한다. 게달리스트들이 수용소에서 마주한 심각한 일은(목매달아 죽은 생존자) 발싸개, 머릿니와 동급으로,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고 실제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 된다.

소설은 이렇게 시종일관 䃲차 대전 유대인’서사에서 가장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수용소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게 되더라도 주변으로 처리한다. 멘델은 과거에, 게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처한 ‘지금’에, 게달리스트들을 마주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유대인의 활약상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서 중심적으로 담는 것은 게달리스트들이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면면이지 수용소가 아니다. 게달리스트들이 수용소에 도착하더라도 그곳은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거나 이름도 알려고 하지 않은 독일 군인/포로들 몇몇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시점 처리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2차 대전 중 정말 중요했던 유대인들의 ‘현재’는 수용소가 다가 아니라는 것. 둘째는 수용소를 현재적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 이것을 보여주는 네 번째 카메라가 나온다. 바로 기억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 포착할 수 없었고 알아듣지 못했던 말들이 다시 재구성되어 우리가 생각하는 䃲차 대전’이라는 거시적인 시간, 무대가 만들어진다. 페이지마다 적혀 있는 연대(年代)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을 흘러가 버렸다. 언제 전쟁이 끝났는지, 언제 그들에게 아이가 생겨났는지 게달리스트들은 알지 못했다. 기억해 낼 때만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억은 언어를 통역해주고 시계를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은 ‘지금’을 사는, 45년 8월 7일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생존자들의 것이다.

이제 이시도르가 난폭하게가 아니라 애원을 하며 물었다. 언어가 달라도 다 이해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의사가 안심하라고 손짓을 하며 자기 시계를 가리켰다. 두 시간 뒤, 한 시간 뒤. 비명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더니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들렸고 곧 조용해졌다. 마침내 한낮에 간호사가 조그맣게 둘둘 뭉친 꾸러미를 들고 밝은 얼굴로 분만실에서 나왔다. “아들이에요, 아들.”그녀가 웃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수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털복숭이 이추에게 다가가서 그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이 사람 같은 아들이라고요!”
모두 벌떡 일어났다. 멘델과 라인이 이시도르를 얼싸안았다. 밤을 새워서 충혈된 이시도르의 눈이 눈물로 반짝였다. 의사도 나와서 이시도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복도로 걸어갔다. 그러다 신문을 접어들고 걸어오던 동료와 마주쳐서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주위로 다른 의사들, 수녀와 간호사들이 모여들었다. 멘델도 가까이 가보았다. 그리고 단 한 장짜리 신문에 아주 크게 적힌 머리기사를 보았지만 그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 신문은 1945년 8월 7일 자였다.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뉴스가 실려 있었다.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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