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리 내어 읽는 니체” 세미나 시즌1 마감후기

작성자
경아
작성일
2019-08-27 17:03
조회
232
내가 소니(소리 내어 읽는 니체)를 신청한 건 정말 뜬금없었다. 그 전에 규문을 가봤다거나 철학에 관심이 있었다거나 니체를 간접적으로라도 접했던 적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2017년 2월6일에 시작하는 소니 세미나에 신청 댓글을 달았다. 돌아보니 여러 가지들이 얽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쁘다는 초등학교 1학년 엄마가 된다는 부담감에 종일 프로그램들은 힘들 것 같았고, 이것저것 해보느니 하나라도 파보자는 金기운이 발동했을 수도 있고, 모집 글에서 ‘온 신체를 동원한 읽기’에 눈이 꽂혔던 것 같기도 하다.

 

http://qmun.org/?pageid=13&page_id=4248&uid=2244&mod=document
이처럼 '온 신체를 동원하는 읽기'의 방식으로 니체를 읽어보면 어떨까요? ‘소리 내어 니체읽기’ 세미나는 《비극의 탄생》부터 《안티크리스트》까지,
니체의 주옥같은 텍스트들을 12세기의 수사들처럼 입 안에 넣고 음미하며 소리 내어 강독하려고 합니다.니체의 전저작을 수사처럼 새김질하며 맛보고자 하시는 분들, 지금 신청하세요!


개인적으로 비밀 아닌 비밀 중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글을 떼었다. 교탁에서 시작한 책상들이 뒷벽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70명을 웃도는 아이들 속에서 나의 문맹은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부모님도 넷이나 되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느라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딱히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다. 출석번호대로 국어책을 읽어야 할 경우 더듬거리기만 하다 꾸중을 듣다보니 소리 내어 읽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4학년 어느 날 국어책이 달력만큼 커지고 환해지면서 내용이 이해되는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다는 믿거나말거나~ 이후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을 즐겼지만 소리 내어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 두려움을 파보자는 무의식적 도전이 바로 소니였을 듯싶다. 따지고 보니 소니를 시작한 이유가 그리 뜬금없지는 않았다.

2월초 입춘 지나고 찾아간 대학로 끄트머리에서 겨우 찾아낸 규문은 바닥에 보일러가 안 들어왔다. 뼈 속까지 시려서 집에서는 보일러를 틀어놓고도 담요를 싸매고 있는 나이기에 책을 읽을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은 참 낯선 규문의 첫인상이었다. 그곳에서 20대에서 60대까지 낯모르는 사람들과 무릎을 맞대고 생소한 니체의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욕심낸 것은 읽기였는데 거기서 듣기의 매력에 빠졌다. 누군가 내 앞에서 무엇인가를 직접 읽어주는 것을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던 나로서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 사람 전체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톤과 강약, 호흡에 따라 눈으로 읽을 때 흘려보냈던 것들이 새롭게 귀로 들어왔다.

논문조의 『비극의 탄생』이나 『반시대적 고찰』은 그런 맛이 덜하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으로 시작되는 아포리즘 형식에서는 읽는 사람의 목소리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지고 눈으로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에 같이 낄낄거렸다. 니체는 자신을 최초의 심리학자라고도 칭한다. 꼭꼭 숨기고 싶었던 찌질한 내 마음이나, 명징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기가 막히게 콕 집어내는 텍스트를 읽을 때면 멋쩍음과 통쾌함에 서로 낄낄거릴 수밖에 없다. 책의 제목처럼 따스함이 전해지는 『아침놀』과 경쾌하고 명료한 『즐거운 학문』을 읽을 때는 리듬을 타면서 매끄럽게 읽혀지며 호흡도 자연스러워진다. 아마도 내용과 형식이 일체를 이룬 글에 소니의 재미가 배가 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텍스트 중 가장 극적劇的이다. 그래서 마치 연극 대본을 연습하는 것 같았다. 차라투스트라의 고독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한 독백도 많고, 인간을 넘어서는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도 많아서 이 책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2D라며, 소리 내어 읽는 것은 3D와 같은 생생함을 살려준다. 그 와중에 거놔 반장님은 미국의 캐년들에 가서 영기靈氣를 받아오고 드디어  『청년, 니체를 만나다』(정건화, 북드라망)를 완간하는 기묘한 타이밍의 일치를 보여주었다.

생로병사, 올라가면 내려오는 시기가 있듯 소니의 운명도 차라투스트라 이후 가을로 접어든다. 차라투스트라의 큰 여운에 매몰 되었던지, 불교팀의 쪽수에 밀렸던지 소니는 장장 6개월의 휴지기에 들어선다. 연말에 휴강 중인 불교수업의 빈 시간과 공간을 틈타 소니는 소생을 노렸고, 불교팀의 자비로운 단체 동참으로 『선악의 저편』을 시작할 수 있었다. 스페셜 땡쓰 투 불교팀~ 그리고 그분들이 썰물처럼 싸악 빠져나가신 후 소니는 규문 연구원들의 수혈로 마지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외 말기 저작(『바그너의 경우』 · 『안티크리스트』 · 『이 사람을 보라』 · 『디오니소스 송가』 · 『니체 대 바그너』)을 공통의 신체로 읽어냈다.

20명 넘짓에서 시작하여 적게는 3명이 목 터져라 읽었던 적도 있었다. 원없이 소리 내어 읽어봤다. 소니를 거쳐 간 누구 한 사람이라도 같이 하지 않았다면 마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세미나의 향방이 어찌될지 몰라하며 ‘끝내겠어...’라며 보내는 의심어린 눈빛들^^ 속에서 소니의 모토는 뒤로 갈수록 “끝까지 간다~”가 된 것 같기도 하다. 2년 반동안 매주 후기와 공지를 올리고 니체에 관한 책을 쓰고 미국, 페르시아까지 다녀온 거놔 반장님은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한 시절을 넘겼다. 주고받은 문자 중 90%는 “경아샘 오고 계세요?”이다. 오는 길 매번 챙겨줘서 소니 시즌1 졸업생이 된 듯하다. 소니 시작할 때 초1 입학하면서 글씨를 몰랐던 아들은 그해 가을 책상 위의 빨간 책을 보고 “아하 나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구나”라고 잘난 척해서 엄마를 흐믓하게 했다. 아들아~ 나보다 글자를 일찍 떼었구나.

*** 소니의 전체적인 후기를 써야하는데 니체의 텍스트는 한 줄도 없습니다. 그런 멋진 텍스트들은 소니 시즌2에서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8월초 땡볕에 끝난 소니 마지막 에세이 이후 처서處暑도 지나 올리는 늦은 후기라 낯 뜨겁습니다.  반장님 빼고 어쩌다 소니 시즌1 유일한 졸업생이 되어 세미나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감사했습니다.
전체 5

  • 2019-08-27 17:16
    우와 경아샘~ 저는 마지막 시즌에 참여해 얼떨결에 마지막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6개월의 휴지기, 밀물 썰물 등 듣던 것보다 엄청난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네요!!
    경아샘이 니체를 떼는 동안 글자를 뗀 아들이라니, 뭔가 멋지네요 ㅎㅎ 유일한 졸업생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 2019-08-28 10:35
    제가 미국여행 때문에 빠졌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저보다도 더 오래 소니를 지켜주신 우리의 공식 개근 졸업생 경아샘~ 멋진 후기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저는 살짝 얹혀가보겠습니다^^). 정말 돌이켜보니 삶의 한 시기를 함께한 세미나였네요. 감개무량ㅠㅠ! 샘 다른 세미나에서 계속 공부 같이해요~ 니체 마이너스라던가 니체 마이너스라던가 니체 마이너스... 아무튼 졸업 축하드려요 :)

  • 2019-08-28 11:16
    저도 얼떨결에 참여했던 소니 세미나였습니다. 2년 넘도록 개근했던 경아샘에 비하면 고작 몇 달 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니체의 글을 떠듬떠듬 읽으면서 뜻을 어떻게든 음미해보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경아샘 졸업 축하합니다.

  • 2019-08-29 16:37
    "나를 잘 읽는 것을 배우라"(<아침놀>) 경아샘의 소리내어 읽기와 듣기를 통해 저도 배웁니다.
    선생님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저도 경아 샘과 함께 소리내어 읽고 싶어집니다.

  • 2019-08-31 08:49
    니체의 텍스트가 한 줄도 없지만 니체가 기뻐했을 후기같습니다. 소리내어 읽기가 두려웠던 어린 시절에서 소니를 통해 듣기의 매력까지 경험하신 이야기가 뭉클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니체를 소리내어 읽고 싶어집니다. (밀물 썰물의 부끄러운 1인... ^^;;)
    늦었지만 졸업 축하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