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8월 6일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8-04 13:38
조회
136
“내가 천성적으로 반극장적 유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극장을, 이 대중예술 중의 대중예술을 싫어한다. 내 영혼의 심층에는 오늘날의 모든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깊은 조소가 놓여 있다. (…) 그런데 바그너는 정반대였다. (…) ‘드라마는 목적이고, 음악은 언제나 수단일 뿐이다’가 바그너의 이론이었다면―, 그에 반해 그의 실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진 포즈가 목적이고, 드라마와 음악은 언제나 그 수단일 뿐이다’였다.”(니체, 《니체 대 바그너》, 책세상, 522쪽)

경아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바그너의 경우》에서 니체가 음악가 바그너를 비판하며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냈다면, 이번에 읽은 《니체 대 바그너》에서는 한때 니체 자신이기도 했던 바그너를 비판함으로써 니체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용한 구절에서는 니체가 혐오하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니체는 어떤 예술이 무대 위에서 성공하게 되면 그 예술은 자신의 경의를 잃어버리게 되며 반대로 무대 위에서 실패하면 자신의 관심과 주의를 끌게 된다고 말합니다. 니체가 혐오하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극장예술’입니다. 다른 책에서 니체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하는 시대의 예술’. 노동에 시달리는 지친 대중들이 주말이나 저녁시간에 잠깐 정신을 놓고 한껏 도취될 수 있는 강한 자극제이자 마취제로서의 예술.

한역이형은 철학하는 월요일 강의에서 들은 것을 바탕으로, 니체가 비판하고 있는 종류의 예술을 클라이맥스 중심적인 예술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치 정점에 도달하여 도취나 마비를 선사한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예술적 기교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천만영화들이 그렇죠.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니체의 관점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예술들을 단지 ‘예술’의 관점이 아니라 ‘삶’의 관점에서 비판한다는 데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예술, 모든 철학은 성장하거나 하강하는 삶의 치유 수단이나 보조 수단으로 간주될 수”(529쪽)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예술이나 철학에서 발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삶’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서 삶에 대한 증오가 창조적이 되었는가? 아니면 삶의 충일이 창조적이 되었는가?”(531쪽)라고 질문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극장예술, 클라이맥스 중심적인 예술에서는 “삶의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529쪽)가 발언합니다. 삶에서 불가해하고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이상적인 상태’에 비추어 삶을 빈곤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고 그러한 자신의 해석 속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이러한 이상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안 될 거야 아마’라고 말하며 염세주의적 태도를 취하건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며 낙관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건 삶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죠. 클라이맥스 중심적 예술은 ‘결말’을 도달해야 할 목적지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상주의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것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었건 권선징악의 도덕적 결말이 되었건 등장인물들이 모두 다 죽는 비극적 결말이 되었건, 어떤 드라마틱한 결말을 꿈꾼다는 것은 ‘완결’이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고정된 의미 같은 것은 없으며 설명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찬 삶에 대한 부정을 함축합니다.

(당연히) 결말이 모호하면 삶을 긍정하는 예술이고 드라마틱하면 부정하는 예술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술이 삶의 불가해한 면들을 이해하거나 체험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부정하고 그 너머를 몽상하도록 하는가라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니체를 읽다보면 음악이나 영화, 소설 같은 것들을 볼 때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저는 많은 경우 마비(?)를 원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17년 초에 시작했으니 2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정말이지 까마득합니다. 하지만 아직 에세이가 남았죠...! 다음 주에는 이번 시즌에 읽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 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중 하나의 텍스트를 골라서 에세이를 써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각자 아주아주 조금씩만 준비해오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1

  • 2019-08-05 20:59
    거기서 삶의 충일이 창조되었는가? @.@!!
    결말주의가 또한 이상주의일 수가 있겠군요. 해피앤딩이야말로 삶에 대한 부정일 수 있다니. 허허.. 충격!
    지금 모두 에세이로 바쁘시겠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