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 1 시경 8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8-12 18:19
조회
154
어느새 시경과 초사 강의가 끝났습니다. 공자가 논어에서 흥어시(興於詩)를 얘기하면서 시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는데,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시라고 해봤자 감정을 그냥 애둘러 표현한 거 아닌가? 읽으면 뭐 달라질까? 그런데 달라요. 제가 아는 시가 아니었어요. 사람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건가요..! 우쌤의 설명을 들으면 특히 더 그렇지만, 읽으면서 참... 말을 못하겠어요. ㅋㅋㅋ 굴원의 작품에 이입해서 읽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기대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시경의 작품과 굴원의 초사를 구별해서 읽었겠지만, 지금은 또 새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 시경을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게 아주 많군요~ ^_^

이렇게 한 시즌 또 끝이 났지만 수중전은 계속 됩니다. 그럼 남은 여름 무사히 보내시고 다음에 봬요!

 

1강에서 우쌤은 최근에 초사(楚辭)를 양자강 이남의 일대인 초(楚)나라 지역에서 제사의식에 관련된 형식의 노래(辭), 무가(巫歌)로 보는 해석이 있다고 하셨죠. 그렇다 해도 이소와 구장까지 포함해서 굴원의 모든 작품을 무가로 볼 수 있을지는 직접 읽으면서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이번에 본 구가(九歌)는 확실히 무가의 일종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 우 임금의 아들인 계(啓)가 하늘에서 훔쳐온 것이 구가라고 합니다. 팩트 체크를 하자면, 구가는 ⓵하나라 왕족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그러니까 낙양일대에 살던 하나라의 유민들이 양자강 일대로 남하하면서 그들의 문화가 초나라로 전해진 것이죠. ⓶당시 제사는 왕족의 담당이었습니다. 사실 이성을 합리성과 연결하면서 신(神)적인 요소를 정치를 비롯한 일상으로부터 분리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죠. 그 전에는 정치와 제사가 분리돼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시간에 ‘단군 왕검’에서 단군이 ‘단골’이라는 직책을 지칭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점에 더해서 무가는 강림한 신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합니다. 우쌤은 실제로 무당이 굿하는 과정을 보면 사람이 플러그가 꽂혔다가 뽑히는 것처럼 말이 횡설수설하고, 잡귀를 내쫓고 존귀한 신을 남기고, 신을 불러내기 위한 성적인 코드 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가를 읽을 때는 이소나 구장과 달리 초나라에 있던 여러 무속적인 상징성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굴원이 구가를 지었다는 건 또 뭘까요? 후한시대 왕일이란 사람이 《초사장구》를 지으면서 거기에 서문을 붙였는데, 거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초의 수도 영부의 원수와 상수 사이의 풍속에는 귀신을 믿고 제사지내는 것이 있었다. 제사 지낼 때는 반드시 노래와 춤으로 신을 즐겁게 했다. 굴원이 방축 당하자 이 지역에서 고통의 시간을 지냈다. 속인들의 제사의 예를 보고 가무의 음악이 그 가사가 비루한 것으로 인하여 구가의 곡을 지었다. 위로 귀신을 섬기는 공경심을 진수하고 아래로 자신의 원통함을 드러냈는데, 풍간에 의탁했다.” 전설을 참고하면, 구가는 하나라의 문화가 초나라 수도를 중심으로 퍼지고, 굴원은 그 노래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굴원의 구가를 새로 지은 구가라는 점에서 신구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첫 시간 때부터 강조된 점인데, 굴원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충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것은 주희입니다. 사실 굴원의 과잉감정은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을 주된 정조로 가져가는 주희와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신’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그 과잉을 합리화한 것이죠. 주희는 《초사집주》에서 “귀신을 섬기는 마음에 자신의 충국애군 권련불망(忠國愛君 眷戀不忘)의 뜻을 기탁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련(眷戀)은 계속 뒤를 돌아볼 정도로 너무 간절함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희가 보기에 굴원은 구가를 세련되게 고치는 동시에 유배 받고 떠나는 자신의 충절을 표현한 것이죠.

구가는 동황태일, 동군, 운중군, 상군, 상부인, 대사명, 소사명, 하백, 산귀, 국상, 예혼 총 11개의 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맨 앞에 나오는 동황태일을 프롤로그로, 예혼을 에필로그로 보고 나머지 아홉 개의 편을 가리켜서 구가라 보는 견해도 있고, 상군과 상부인, 대사명과 소사명을 각각 하나의 편으로 묶어서 아홉 개의 노래로 만들기도 합니다. 구가에서 구(九)가 노래 아홉 개를 가리키는 것인지 제사에 사용되는 노래의 형식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여전히 분분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소제목을 가진 노래가 총 11편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가를 어떻게 볼지는 또 언젠가 직접 초사를 읽으면서 생각해봐요~

강의 말미에는 초나라의 문체가 어떻게 계승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한서》 〈예문지〉에 시부략(詩賦略)이란 편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賦)는 주제가 정해진 노래인데, 초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시로서 초사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편이죠. 여기서는 초소체(楚騷體)를 굴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송옥, 가의, 한나라의 사마상여, 유안, 유향, 왕포로 이어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우쌤은 굴원의 모든 스타일이 아니라 이소 정도의 스타일만 계승됐다고 하셨습니다. 우쌤은 특히 사마상여에게 계승된 것에 주목하셨습니다. 사마상여는 사기열전에 나오기도 하는데, 글 잘 써서 발탁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사마상여는 자허부, 상림부, 대인부 등의 작품을 썼는데 문장이 아주 화려해서 제국의 위상을 꿈꿨던 무제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굴원처럼 천상에 다녀오고, 역사적 이야기가 들어간 광활하고 판타지적인 맛은 없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굴원의 초사는 순자의 글쓰기, 장자의 우언 등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매승, 사마상여, 양자운 같이 화려하게 글을 쓰는 기법만 발전했지, 이전 시대처럼 나라를 걱정하고 비유를 통해 간언을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초사라는 문체 하나만으로도 누구에게, 어떻게 전승됐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전체 2

  • 2018-08-12 22:02
    충신은 원래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다시 확인~~! ㅋ 글고, 예전에 이옥의 글을 읽으면서 '부'라는 양식을 처음 접한 듯한데, 그 하염없이 길고 긴 글의 기원이 굴원이었다는, 그 문학사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음^^. 언젠가 굴원의 글들을 제대로 읽을 기회가 오길 ~~ㅎ. 샘도 수고 많으셨지만 규창이도 성실하게 후기 올리느라 고생 많았네. 그러고, 저 위에 있는 '단골', 아마도 '당골'이 맞을 걸~~^^

    • 2018-08-13 11:30
      번역된 것만 봐서 '부'가 길다는 것 말고 어떤 감동을 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굴원의 문학사적 위상이 대단하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그리고 '단골'이 아니라 '당골'이었군요. ㅋㅋ
      중국의 문학을 보니, 반도에서는 어떤 문학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나중에 같이 읽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