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2 8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2-16 00:55
조회
181
시(詩)의 맛 시즌2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우쌤 덕분에 사령운과 도연명의 작품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지만 새삼 또 감사드리고 싶네요. ㅎㅎ 작품 자체도 기억에 남긴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 속에서 고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사령운보다 도연명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잘 나가는 사람의 삶은 딱히 와 닿지 않더군요. ㅋㅋ 도연명처럼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어떤 말 하나를 던질 때 큰 울림이 느껴집니다. 특히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질문하고, 실천하는 과정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삶은 질문과 실천의 연속이란 말을 질리도록 듣긴 했지만 정작 그렇게 산다는 게 뭔지도,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도연명을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우쌤이 도연명의 삶을 표방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도연명처럼 살았던 건 도연명뿐이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도연명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건 남들과 똑같이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망해버린 왕조를 버리고, 새로운 왕조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도연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도 평탄하지 않았죠. 많이 굶주렸고, 먹고 싶은 술도 원껏 마시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 삶을 떠나지 않았던 건 그 나름대로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덕이겠죠. 고민의 깊이가 삶의 크기라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도연명을 만나고도 문제의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도연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왕조 교체입니다. 사령운와 안연지가 새로운 왕조에 붙었다면, 도연명은 망해가는 왕조를 바라보고 자신이 속했던 지식인 사회와 관계를 끊었습니다. 위진남북조 때 세속을 벗어나 신선처럼 사는 삶을 유선(遊仙)이라 불렀습니다. 도연명의 삶도 일종의 ‘유선’처럼 그려졌었죠. 그러나 도연명은 왕조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있었죠. 그래서 세속을 벗어나 살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지평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를 영사시(詠史詩), 역사 속에서 자신을 읊는 시라고 합니다. 〈영삼량(詠三良)〉, 〈영형가(詠荊軻)〉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영삼량〉은 진목공의 충신 엄식, 중항, 겸호이 진목공을 따라서 죽은 것을 읊은 시입니다. 《시경》이나 《춘추》에서는 이들의 죽음을 순장으로 묘사하는데, 《사기》에서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라 죽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터운 은혜 진실로 잊기 어려우니, 군주의 명을 어찌 어길 수 있으랴 … 좋은 신하들을 대신할 수 없으니, 줄줄 흐르는 눈물이 내 옷을 적신다(厚恩固難忘 君命安可違…良人不可贖 泫然沾我衣)”는 말은 도연명 역시 이들의 죽음을 충의로부터 일어난 자발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영형가〉도 비슷한 분위기로 그려집니다. 형가가 연태자 단을 만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유가에서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이에게 보답을 하는 게 있죠. 형가는 연태자 단을 위해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납니다. 저는 도연명이 그 장면을 연태자 단의 무리가 흰 천리마, 흰 옷을 입고 형가를 전송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흰 옷을 입은 것은 형가에 대한 상례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쌤은 여기서 묘한 처연함이 느껴진다고 하셨고, 이후 형가를 그릴 때 그의 처연함이 그를 보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도연명의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유가입니다. 그가 살았던 곳 근처에 혜원스님의 절이 있었는데, 실제로 도연명에게 스카웃 제의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에도 부분적으로 불가, 도가의 개념과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속세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에서 같을지라도, 도연명에겐 신선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고, 근본적으로 속세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도연명은 혜원스님의 사상과 라이프 스타일에서 결정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죠.

도연명의 〈자제문(自祭文)〉에 특히 그만의 독특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제문이란 죽은 사람을 기리는 그의 자서전 같은 것입니다. 주로 뛰어난 문장가에게 부탁하는데, 도연명은 스스로 자신의 제문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스스로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그는 “나는 장차 나그네의 집을 떠나 본택으로 영원히 돌아가리라(陶子將辭, 逆旅之館, 永歸於本宅)”라고 말하며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정을 풀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시를 쓰고 두 달 뒤에 죽었으니, 그가 자신을 어떻게 여겼는지, 자신이 기억된다면 어떤 사람이고자 했는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쌤은 이 작품에서 도연명의 삶을 총괄해서 보여주는 구절로 “세상과 맞서서 굳건히 가난한 초가집에 살면서 술을 달게 마시고 시를 지었다(拙兀窮廬 酣飮賦詩)를 꼽아주셨습니다. 도연명은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달리 고독하게 속세를 벗어나 살았죠. 그런 삶이 쉽지만은 않았겠으나,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시와 술이었습니다. 그에게 시와 술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야 알 것 같네요. 확실한 건 속세를 떠나 농사를 짓는 와중에도 계속 책을 읽으며 고민하며 살았고, 그게 시와 술로 표현됐던 것입니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이 무엇일지 곱씹으며 다시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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