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2, 7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12-07 20:37
조회
116
도연명을 정의하는 몇가지 말이 있습니다. 귀거래, 자발적 가난, 농사, 그리고 음주입니다. 이 네 가지가 도연명 자격을 갖추기 위한 요소였고 많은 선비들이 동경했지만 그래도 하나둘은 빠졌다고 전해지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는 꼭 지켰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음주! 하지만 흔히 술을 마시며 호방하게 자연을 감상하는 것과 도연명의 음주는 궤가 다릅니다. 가령 이백은 술을 마시더라도 아주 멋지게, 달과 술을 주고받는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도연명 같은 경우 그에게 술이란...노동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가난한데다 훈장노릇 대신 선택한 농사일이라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을테니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싶었을 테고요. 어쨌든 지금이야 술을 마시고 그 흥취를 못이겨 시를 짓는다! 이런 이미지가 정형화 되어 있지만,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것 자체가 주제가 된 것은 도연명 시기에 들어서 였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다고 할 때의 이미지는 역시 방일放逸과 임탄任誕입니다. 방일은 요즘말로 하면 '케세라세라', 좀 더 나가면 신선처럼 속세의 일은 다 놓고 하늘로 올라가는 마음가짐을 나타낸는 말이죠. 그리고 임탄은 거리낌 없는 데 자신을 맡긴다는, 일종의 반 예교주의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위진시대에는 모두 용납되던 행동들이고 당시 힙한(?) 사람들의 행태가 이랬다고 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하나같이 최상위 귀족들의 태도였다고 하지요. 이 시기의 시를 위나라 영제의 연호를 따서 '정시지음正始之音'이라고 합니다. 하안, 왕필, 유령, 완적과 혜강 모두 여기에 속하지요.

그리고 이런 귀족들의 시기가 끝날 무렵에 도연명이 있습니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고 약 스무 편의 음주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진시대 명사들의 음주시와는 완전히 다른 라인을 그리고 있지요. 이 단편적인 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도연명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역추적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가 음주시에 '외로이 사는 소나무因値孤生松'라고 쓴 것으로 인해, 도연명 하면 소나무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동쪽 담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을 쓰니, 도연명 하면 국화를 바로 연결시키게 된 것처럼요. 도연명이 국화나 소나무를 반복적으로 쓰긴 했지만 그의 뜰에 국화가 그렇게 많았는지, 실제로 그가 소나무를 외로운 것으로 보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하나의 화제로 굳어지면서 오랫동안 도연명이라는 인물에 대해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죠.

도연명의 음주시는 똑바로 음주시의 몇번째 시라고 명시된 것도 있지만 <고문진보>에는 대개 '잡시'라고 실렸다 합니다. 가령 술을 '근심을 잊게 하는 것忘憂物'으로 표현한 일곱번째 음주시는 <고문진보> 2권에 잡시라고 실려 있지요. '동쪽 담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로 더없이 유명한 시도 '잡시'로 수록되어 있지만 사실 다섯번째 음주시에 해당됩니다.

음주시는 굉장히 소박합니다만, 단지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쓴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박한 와중에 불쑥불쑥 세상 걱정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정서도 이따금 비추니까요. '유연悠然'이라는 말도 결국 자기 발 아래 국화에 집중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세상일에 관심을 두게 된다는 심정의 표출이고, 어떤 시에서는 술을 마시며 '그런대로聊'라는 표현을 쓰면서 세상 일에 신경을 쓰지만 못내 타협했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아홉 번째 음주시에서는 이례적으로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무려 '전부田父'입니다.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것이 분명한 이 시에서 농부는 '이럴 분이 아닌데 어쩌다가?'라고 도연명의 처지에 의아함을 내비칩니다. 이렇게 보면 사대부 뿐만 아니라 농민이 보기에도 도연명은 이상한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는 괴짜로 보이는 것이죠. 이런 것이 유일하게 반영된 시가 바로 아홉번째 음주시입니다. 도연명은 이 시에서 정치일은 '타고난 천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함께 이 술 자리를 즐깁시다. 나의 수레는 돌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귀거래 하여, 돌아가지 않겠다는 도연명의 마음이 느껴지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연명이 지은 시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도화원기桃花源記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도화원시桃花源詩의 서문입니다. 본 시보다 서문이 더 유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검토해보면 요즘 관광지로 뜨고 있는 장가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장가계를 가는 사람은 그곳이 무릉도원인지 모른다고 하네요. 크윽...

도화원기를 짓게 된 배경을 유추해보면, 아마 도원명이 살고 있는 곳에 소수민족의 이야기가 전해졌을 거라고 합니다. 소수민족의 삶이 도원명의 시작에 영향을 미친 것이죠. 그리고 이 도화원기는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치면서 동양적 이상향이 되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제가 됩니다.

그런데 도화원기를 보면, 이곳 사람들은 분명 농사를 짓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동양에서 이상향이란 자기 땅에서 농사짓고 그걸로 먹고 사는 것인 곳인 것이죠. 하지만 지금 도화원기를 모티프로 한 그림을 보면? 사람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거기 사는 사람들은 거의 신선 급입니다. 농사를 짓고 사는 분위기는 아예 없지요. 분명 도연명이 도화원기를 지었을 때는 주요 전장이었던 심양 일대에 숨어사는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썼을 가능성이 있고, 그들의 삶이란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었을 것이지만 후대로 갈수록 그 이상향에 살이 덧붙여지는 것입니다. 당나라의 문인 한유도 도화원기가 화제가 되는 맥락을 보고 '원래 신선이 아니라 농부가 있는 곳'이 무릉도원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무릉도원은 신선의 낙원으로 변해집니다.

도연명이 무릉도원을 그리는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잘못들었는데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 하나 나오더라, 그런데 거기는 복숭아 나무가 많고,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더라. 속세로 돌아와 다시 그곳을 찾아가려고 보니 못찾겠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서문에 해당되는 도화원기의 끝은 '마침내 길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끝납니다. 그리고 본 시(?)인 도화원시에서는 도연명이 한마디를 덧붙이죠. '나와 뜻 맞는 이들을 찾아가고 싶구나'라고요. 도연명은 도화원시를 쓰면서 남들은 다 잊은 소박한 삶에 대한 비전을 나만은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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