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일상의 철학 5회차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8-03-27 07:06
조회
137
죽음 앞의 죽음 7-9장 후기

 

두려움의 그림자가 만든 허무

 

삶과 죽음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심성사라고 말해지는 아리에스의 고찰은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기에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6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생기면서 침상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의 순간은 그 중요성을 점점 잃어갑니다. 죽음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단순히 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집니다. 시작은 그리스도적 겸허를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저변엔 삶의 덧없음과 육신의 부패,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도 어쩌지 못했던 허무에 대한 불안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삶과 사물과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의 한가운데를 죽음이 비집고 들어와 삶을 앗아가 버린다고 본 것입니다. 이 빈 공간, 허무의 개념은 16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일반적인 감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죽은 자들에 대한 무관심에 이르게 했고,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이나 애도는 사회적이고 의무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죽음 앞에서 애도를 통해 충분히 감정을 방출하던 과거와 달리 개인과 슬픔이라는 감정 사이에도 거리가 생겨난 것이지요.

이제 죽는 순간에 위치하던 죽음은 삶 전체로 들어오게 됩니다. 죽음이 가지는 부정적인 영역이 삶과 세상을 차지해 버린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서로의 역할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교회나 무덤들에 머물던 마카브르 이미지들도 일반가정으로 들어옵니다. 바니타스라고 하는 허무를 상징하는 정물화나 초상화, 장식물이 등장하는데, 정갈하고 윤이 나는 해골 모형이 대표적입니다. 해골을 가정의 장식물로 사용하고 초상화와 정물화에도 함께 등장합니다. 이 두개골은 나이듦이나 허무, 죽음, 체념의 이미지를 상징합니다. 삶의 애착하던 것들을 정물화로 그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사물들을 경외하던 것에 비하면 정물화의 이미지가 완전히 변화된 것이죠.

또 당시 죽음과 관련해 삶의 변화 중 중요한 것은 아주 금욕적인 생활이 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한순간에 집약되어 있으며 그 순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삶 역시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멈춘 것이지요. 역설적인 이 대목은 참 놀라웠습니다. 죽음 그 자체를 죽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필멸의 삶’ 즉, 삶의 종말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통해 영원히 살겠다는 생각은 사라졌고, 부도 쾌락도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야기하게 된 것입니다. 아리에스가 이 부분을 더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쉬운데요, 유언장이나 장례의식등에 비추어 볼 때 잘 죽겠다는 의지는 영원히 잘 살겠다는 의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죽음이 삶으로 엄습한 이후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 아니고, 타락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쾌락으로 즐길 곳이 아니라 늘 죽음에 비추면서 대비하는 곳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지요. 쭉 살다가 죽는 순간에 심판 받던 삶은, 유년시절에 결혼생활에 노년에... 등으로 매 시기 시작과 끝으로 정리하고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공포가 만들어낸 된 죽음의 두 얼굴

 

17,18세기 죽음은 개인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잃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커다란 공포를 느끼게 되었지요. 하지만 동시에 묘하게도 죽음에 대한 이상한 애정이 생겨났습니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이지요. 대학에서는 연일 해부학 공개 강의가 열렸으며, 연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이 끔찍한 장면을 구경하러 다녔고, 해부를 위해 무덤에서 종종 싱싱한 시체를 도난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또 웬만한 교양인의 집에는 해부학 실험실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지요. 더욱이 교회의 벽에 걸린 잔혹한 순교의 그림은 표면적으로는 종교적 메시지를 드러내지만, 도상들은 신체나 동작을 관능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드적 욕망을 나타내는 변화도 생겨났습니다. 죽음과 성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이 모순적인 태도는, 죽음이 삶과 분리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역설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팽배한 죽음의 공포가 있었는데, 아리에스는 단언하여 말합니다. 역사 속에서 어느시대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죽음이 공포스러워진 것은 의사와 교회가 비정상적인 형태로 발견한 죽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과 죽음의 기묘한 결합과 아울러 의사들은 가사 상태의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었습니다. 죽은 후에도 아직 감각 능력이 살아있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아직 남아 있는 생명의 흔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의사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죽은 육신이 부패하게 되면 그 때를 죽은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조장했던 성직자와 의사들은 실제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기 시작했을 땐 정작 입을 닫습니다. 이는 더 심각한 상황을 만드는데,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 교회의 묵시록적 담론에 의사들의 설명이 더해져 증폭된 것입니다. 죽음은 이제 말하지 못할 정도의 공포로 자리 잡았습니다. 죽음에 대해 가지는 양가적인 태도는 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중세인들의 방편이었던 것이지요.

 

죽음에 대한 사유는 확실히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새삼 느끼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 또는 곧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기대나 실패의 두려움 어떤 추구나 목적 등은 죽음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요.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서 오직 중요한 핵심만을 남길 테지요. 죽음이 뭘까라고 뭉퉁그려 생각했던 것을 육체, 정신, 생활의 모습, 문화등으로 세분화하여 생각할 볼 수 있어 죽음을 나의 문제로 사유하는데 더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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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7 09:04
    죽음과 함께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사유하고, 필멸 속에서 생에 대한 애착을 물었던 중세인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늘 내 안에서, 삶 안에서 마주하던 일상이란 어떠했을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