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일상의 철학 6회차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8-03-30 21:34
조회
136
죽음 앞의 인간 8-9장 후기

 

낭만적인 죽음

 

지금까지 우리는 세 번의 죽음의 변화기를 거쳐 왔습니다. 중세초기 죽음을 공동체의 상실로 생각하던 공동체 안에서의 죽음 시기, 공동체가 해체되는 중세말기 개인이 사제에 의지해 구원받기를 요청하던 자신의 죽음 시기, 17-18세기 허무가 만연하고 인간은 더 개인화 된 시대에 죽음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보이던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제 시대는 낭만주의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대를 훑고 지나가는 두 개의 큰 사건이 있죠, 페스트이후와 대혁명입니다. 전 낭만주의 하면 이 두 획이 먼저 떠오르고 이것으로 시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아리에스는 시대적 조건을 먼저 상정하고 사료를 해석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쓴 편지, 일기 혹은 소설에서 치밀하게 변화의 흐름을 집어내지요.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그 자세에 놀라게 됩니다.

아리에스는 낭만주의 죽음을 ‘아름다운 죽음’의 시대로 명명했지요.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허무의 시대를 보내고 맞이하는 ‘화해와 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극단적 두려움 속에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바니타스 장르로 표현하고, 허무와 성을 연결하여 시체 성애와 해부학 열풍을 낳는 등 허무도 삶도 모두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때가 허무의 시기였지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삶의 욕망까지도 멈추게 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넘어설 답을 찾고 있었겠지요. 신을 향한 믿음과 교권은 권위를 잃었고,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두려웠으며 그것을 방어해야 하는 건 오로지 자신이었습니다. 그 방어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죽음을 낭만적으로 사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낭만주의시대 근대인들은 정념이나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표상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도 개인적으로 나누는 친밀감이 중요하게 되었고, 죽음이란 이 친밀감의 단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이런 정서를 가지고 죽음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죽기만 하면 하늘로 올라가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죽음은 내세에 집중되어 있고, 사랑의 감정과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래, 내 딸아, 언젠가 네 감미로운 꿈이 모든 축복 속에서 이루어질 그 날을 함께 기다리자....... 나는 그것에 대해 이 세상에서 사랑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무한한 행복으로 그렸다.”(737)

이 대목은 가히 줄초상의 기록이라 할 만한 프랑스 페로네가의 <누이이야기>라는 글에 나옵니다. 서신과 일기 모음인 이 책을 관통하는 정서는, 허무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방식이라기보다는 죽기만 하면 하늘로 올라가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대상화하여 생각하는 것이죠. 이 태도에는 무상성에 대한 욕구조차 보류되어 있습니다. 신도 없는 시대, 너와 나의 문제가 된 죽음에 대해 먼 곳에서 관조하는 그런 자세이죠. 언젠가 올 그날, 멀고 깊은 심연을 바라보는 태도이죠. 죽음이 죽음 자체로 의미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이 태도는 자신의 죽음을 대할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기서 ‘감미로운 꿈’이란 그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유언장을 쓰고, 부활을 기원하며 나의 죽음을 기다리던 그 때의 ‘나’의 죽음은 아닌 것이죠. 부활이란 죽는 자의 활동을 전제하지만, 내가 죽어 가서 만나는 죽음엔 어떤 준비나 활동도 필요치 않습니다. 감정만 남아 기다리는 감미로운 꿈이 자신의 죽음인 거죠. 나의 죽음조차 타자화 되어 타인의 죽음마냥 관조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나를 떠나 타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의미가 되고 타자화 되는 이 정서와 관련해 샘은, 이것이 ‘국가주의적 죽음’을 낳았다고 해석하셨어요. 죽음이 심연, 깊이의 이미지를 가지면서 자신의 영혼도 깊고 거대한 의미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죠. 대표적으로 이차대전 일본의 ‘가미가제’들이 그렇고 많은 열사들의 죽음 또한 그러하겠지요. 아주 원자화된 개인의 관계 속에, 개인화된 죽음과 거대한 의미가 부여되는 죽음이 심성 안에서 같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마음의 역설적 작용에 대해 계속 생각이 일어나네요.

세미나 하면서 나눴던 얘기중엔, 그래도 이 때는 죽음을 사유하고 있던 시기가 아닌가라는 의견들을 있었습니다. 그 저변엔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의료기술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보단 병이 오면 끝까지 고쳐보겠다거나 꼭 나을 수 있다는 태도는 없었다는 것이죠. 병에 걸렸고 이제 어떤 증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마음 아파하지 증세의 세세한 걸 고통스럽게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죽음은 아예 감추고 ‘病’만을 고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가치전도

 

죽음이 아름다움이라는 가면 속으로 은폐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악의 개념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리스도교의 교리나 일상생활에서 죽음은 악의 표출이었습니다. 악은 삶 속에 스며들어와 있었으며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천상과 악으로 표상되는 지옥의 대결과도 같은 양상을 띄었었죠. 죽음의 순간에 신 앞에 도덕적으로 회개함으로써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지옥을 거의 믿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니 그것이 어떻게 악으로 말해질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육신이 소멸되면 악도 저절로 소멸된다고 생각했지요. 해서 죽음은 오히려 강렬한 욕구의 대상이 됩니다.

 

그것은 위안을 주고, 아아! 생명을 가져다주는 죽음이다/ 그것은 삶의 목표이고, 유일한 희망이다/ 어떤 묘약처럼 우리를 들뜨게 하고 도취시키며/ ...... 그곳에서 우리는 먹고 잠자고 앉아서 쉴 수 있으리”(833)

 

보들레르는 이 시의 마지막에서, 악의 후퇴 과정의 처음이 지옥의 종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아리에스는 말합니다. 죽음이 오히려 희망이 되고, 묘약처럼 황홀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인간적 존재보다는 먹고 잠자고 쉴 수 있는 공간화 된 모습으로 내세가표현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어떤 자연으로, 더 나아가 무한한 우주와의 신비적 교감으로, 존재의 근원과도 같은 이미지를 획득합니다. 대지나 바다, 벌판, 언덕, 폭풍 같은 무한성으로 예술가들은 표현하고, 실제로 죽어가는 젊은 남녀들이 드넓은 평원으로 나아가 묵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종교나 신에 기대지 않고 인간이 적극적으로, 인간의 방식으로 죽음에 대응하던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묘지의 도시 밖 이동

 

18세기가 되면서 형성된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던 비위생적인 시체 관리가 문제화 되고 용인 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무덤에서 들리는 소리와 시체가 부패하면서 분출되는 가스가 패스트나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고가 생겨났습니다. 묘지는 악마의 영역이 됩니다. 묘지에는 두 가지의 사고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비위생과 악의 결합으로 묘지는 전염병의 온상지가 되었고, 또 신성성의 영역으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죠. 이런 사고에 기초해 묘지를 도시 밖으로 이전 하자는 청원이 일어났습니다. 의사들은 도시 공기의 오염을 막고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학적 이론으로 여론을 주도 했고, 사제들 역시 성당을 신성하게 유지하기 위해 산자와 죽은 자를 분리했던 과거의 전통을 가져오자고 발언하고 있었지요. 이 청원을 고등법원 판사들이 수용하면서 도시 외곽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조성됩니다. 19세기가 되면 드넓은 녹지공간으로 조성되고 이 곳을 찾아 눈물 흘릴 수 있는 곳으로 개방됩니다. 자본주의가 대두하면서 묘지는 일반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기에 이릅니다. 현재의 현충원이나 곳곳에 설치된 국립묘지들이 떠오르지요.

이제 죽은 자를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죽음 자체를 기억하던 것이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기념물이나 장식물의 변화로도 드러납니다. 메멘토 모리, (죽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라)의 시대엔 마카브르적 기념물이나 애도화로 무덤을 장식했지요. 이제 시대는 메멘토 일리우스 ([죽은] 저 이를 기억하라)의 시대가 되어 머리카락등 죽은 자의 신체 일부를 보존함으로써 기억을 고착화시키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인육을 용해시키고 인골을 태워 유리처럼 만들어 휴대용으로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 기괴함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이 묘지를 밀어내던 그 시기에 함께 공존하던 이중적 모습인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이토록 양가적인 태도들이 계속 드러나는 것은 죽음이 존재가 수용하기에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존재와 죽음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런 태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담주 발제는 11장 정옥, 12장 윤지샘, 간식도 윤지샘입니다.

화요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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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31 00:31
    죽음 자체를 기억하던 것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면서, '나의 죽음'은 '너의 죽음'이 되었지요. 죽음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떨어지려는 욕망의 한 가운데에는 삶을 연장하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