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들 숙제방

영화, 들 첫 번째 글

작성자
예슬
작성일
2018-01-30 00:22
조회
88
20180118/정예슬

<카메라를 든 사나이> 중 편집의 힘에 대하여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20세기 기술의 힘으로 촬영이 가능해진 어떠한 시각들을 1929년구현해낸 의미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시대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929년 당시만 하더라도 촬영 장비라는 것은 개인이 가지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였고, 개인용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모든 기계적 장비들은 노동을 위한 장비들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어떤 카메라에 마치 생명을 불어 넣어서 어디서든 우리를 보는 개념을 도입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당시 시대에서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해석된다. 그것은 관객을 의식한 시선도 아니며, 모든 것은 온전히 감독의 탐구적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카메라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들의 작용-반작용 편집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물체이면서도 마치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 감독이 버튼을 돌리자 시작되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나오는 부분은, 드디어 카메라에게 귀가 생겼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영화 장면 안에서 카메라가 빌딩 밖을 벗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부 요소들이 움직이는 장면은 카메라가 도시를 움직이는 중심처럼 보이게 하는 인상을 준다; 길거리의 나무가 흔들리고 점점 다가오는 기차의 움직임은 그 전의 고요함을 잠재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폭풍적으로 그 안의 여자와 거리의 잠자고 있던 노동자, 그리고 “Awakening of a Woman”이라는 포스터의 문구와 함께 거리와 기계, 그리고 사물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그 자체가 보고 있는 사물과도 같이 동적으로 움직이며 그들과 상황을 함께 하고 비춘다. 그것은 카메라가 한곳에만 정지하거나 한 장면을 포착하는 도구로써의 역할이 아니라, 동반자로써의 역할로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마치 로봇과 같은 삐삐빕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이 또한 카메라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편집된 표현 방식이다. 시선이 돌려지며 빠르게 카메라가 돌아가고, 사방으로 움직이는 모습들 또한 우리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과 유사하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말을 한다. 우리가 언어로 말을 하는 것처럼, 카메라는 움직이며 그 이야기를 말하고 전달한다. 그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은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픈이의 머리를 감싸는 응급대원의 모습처럼, 극박한 상황을 잡아내는 힘이며, 갑작스러운 출동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힘이며, 그것을 쫓아가는 것은 카메라의 할 일이다. 그 순간 함께 움직이며 같이 있는 것을 통해 사실적인 그들의 모습을 잡아낼 수 있게 된다.

베르토프는 카메라의 시선을 중점적으로 살리면서도 편집을 통해서 그 안의 사람들을 표현하기를 잊지 않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계적으로 발생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장면들을 포착하여 동적인 운동을 표현하면서도 사람들의 감정 표현들이 교차되어 보여진다. 여러 기계적인 동작들로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동작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거리에서 보면 빠르게 지나가 보이지만, 기차위에서 찍는 시선은 움직이는 그들의 감정까지 표현한다. 그 시각은 움직이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내부의 모습이며, 움직이는 그들의 표정과 주름 등 세부적인 감화적 요소들을 포착한다.

이렇게 화면에 운동을 부여하기 위한 카메라의 시선과 인간의 감정을 포착하여 잡은 시선을 교차편집하여 주인공은 없지만 스토리가 있는 하나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라는 영화가 탄생하였다. 즉, 주인공인 카메라와 베르토프 그 자신이 곧 영화의 주제인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자유로운 시선은 기본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벗어날 때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베르토프는 영화 안에서 이미 관객이 누구인지를 결정짓고, 그들의 리엑션까지도 편집하여 영화 안에 넣음으로써 그 외부의 관객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 그만의 탐험정신을 영화를 통해 발휘하고자 하였다. 질 들뢰즈는 그의 이런 실험들이 이미지 사이의 작용-반작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칭하며 운동-이미지의 책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고전의 매력은 이렇게 실험적인 작품과 그것을 알아주는 비평가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영화를 통해 카메라가 잡아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이고, 감독은 그것을 어떤 시선을 추가로 접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유첨. 스토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운동-이미지

이렇게 정해진 주인공이 없이 파편화된 인물들만 즐비한다면 스토리라는 것이 어떻게 전달 될 수 있을까? 베르토프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영상과 영상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그 스토리의 내용이 전달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Awakening of a Woman  :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던 거리에서 카메라맨이 차를 타고 거리로 나가자 거리에서 차량과 나무, 기차 등 점차 모든 사물들이 깨어나고 이제 요동을 치며 삶을 부여받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해준다. 카메라맨의 모습과 거리, 그리고 실내의 여자의 모습은 리듬을 통해 교차된다. 카메라맨은 다가오는 기차를 찍은후, 다시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실내에서 잠을 자고 있던 여자 또한 준비를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누워있던 노동자, 그리고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돌리자 그 사람은 카메라를 응시하기도 하고, 거리에 있는 사람은 거리를 쓸기도 하며, 어떤 이는 눈을 비비며 카메라를 잠시 보다가 자신의 일로 직행하기도 한다. 거리에 한두사람씩 보이기 시작하고, 여자는 세수를 하며, 거리는 청소를 위해 물을 뿌린다. 일종의 준비를 위한 세척의 시간이다. 빌딩을 닦는 여자, 얼굴을 닦는 여자의 모습, 그리고 창문의 블라인드가 젖혀지고, 여자의 눈이 깜빡거리면서, 카메라의 눈또한 깜빡거린다. 차량이 움직이며 거리를 잡고, 카메라 맨또한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고, 비행선을 타려고 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끌며, 열차들은 시리즈로 거리로 나서게 되며, 거리의 버스들 또한 한두대씩 그리고 연속으로 반복되어 나온다. 여자의 뒷모습, 다리, 그리고 “Awakening of a Woman”이라는 포스터와 함께 여자의 깨어나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노동자의 모습이 비춰진다. 위로 솟아오르는 공장의 공기, 그리고 그 위를 오르는 어떤 노동자? 카메라맨? 그리고 돌아가는 기계들의 줌인샷, 그것을 움직이는 노동자의 손, 더욱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의 움직임과 더욱 활발해 지는 기계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연상 시킨다. 그 기계는 이상하릴만치 원형을 그리며 작동되고 돌아간다. 위아래로 상승/하강을 반복하고, 앞/뒤로 움직이고, 위로 구름이 솟아올라진다. 그것은 차 위에서 본 그의 시선, 빌딩 위에서 거시적으로 본 노동자들의 일터로 직행하는 모습에 대한 시선, 그리고 거리의 철봉에서 본 시선, 의자에서 본 시선 등 다양하다.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

  • Movement : 베르토프는 중간중간의 메시지를 카메라에서 밟히는 포스터의 언어와 음악으로 표현한다. 두번째 모습에서는, 움직이는 모습에 맞추어 카메라를 같이 움직이는 시선이 등장한다. 기차위에서 타며 전경을 찍기도 하고, 거리에서 움직이는 기차들을 찍기도 한다. 그것은 거리에서 보면 빠르게 지나가 보이지만, 기차위에서 찍는 시선은 다르다. 달리고 있는 물체에 맞추어 같이 찍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금은 당연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동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상대방에게는 있어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가만히 있고, 배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베르토프는 이런 상대적으로 달라진 시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장면으로 담아 놓는다. 달리고 있고 움직이는 배경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피사체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포착해내지 못했던 어떤 미소와 주름, 표정을 우리는 본다. 그것을 베르토프는 중간중간에 작았다 커졌다 하는 사물의 은율과, 필름들 사이의 한컷을 통해 유추하게 한다. 중간에 나오는 필름 인화관에서의 모습과 카메라를 돌리는 모습은, 영상들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단면중의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돌아가는 회전문을 보여주는 것은,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동그란 테옆의 움직임과도 비슷하다.

  • Wedding-Divorce Registration : 그리고 방향이 반대로 바뀔쯤, 카메라의 시선은 또한번 아래를 향하고 다른 것을 보인다. 교차편집, 즉 서로 상반된 것을 먼 지각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보이기 위해서 서로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줌인된 각각의 얼굴을 통해 어떤 내용의 그림인지를 서로 유추하게 보여준다. “Wedding Registration’이라는 시선과, 다른 공간에서 포착되는 “Divorce Registration”의 교차 편집. 상반신만 나오는 한 공간에서의 시선은 그 한사람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데 도움을 준다. 부동적인 카메라이지만 동적인 이야기를 제공한다. 웨딩을 떠나기 전의 시선, 그리고 아픈이의 움직임은 카메라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움직인다. 도시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는 말이 어울리게 도시와 베르토프의 영화가 서로 겹쳐지는 모습이 나온다. 한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던 기차 사이에 다른 기차가 오가면서 삶의 복잡성이 보여진다. 시선이 돌려지며 빠르게 카메라가 돌아가고, 사방으로 움직이는 모습들은 우리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과 유사하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말을 한다. 우리가 언어로 말을 하는 것처럼, 카메라는 움직이며 그 이야기를 말하고 전달한다.

  • Regular Rhythm : 샷 안에서의 변화. 머리를 감고, 무엇인가를 던지는, 샷 안에서의 리듬과 변화와 감도, 그것은 우리의 촉각적, 감각적 본능을 건드리듯 하다. 그렇게 머리가 감겨지는 여인의 모습과 표정,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손동작 등이 클로즈업되어서 나타난다. 무엇인가를 뺐다가 넣는 동작, 어떤것을 완성해내가는 모습,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동작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 반복 사이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계적으로 발생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의 한장면들을 포착한것이다. 그것은 줌인된 싱글 이미지, 손동작으로 어우러진 무엇인가, 그리고 전체 샷의 모습, 등 우리가 하는 여러가지의 기계적인 동작들로 구성된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똑 같은 동작들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동작이 진행됨에 따라 똑 같은 행위여도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은 유동적이지만, 일은 부동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베르토프는 굴착기에서도 이런 일의 반복성을 찾고자 한다. 용광로가 뿌려지는 모습 또한 촬영한다. 음악또한 가장 빠른 리듬과 드럼으로 구성된다. 효과음 또한 다양한 일렉트릭음, 흘러가는 음, 필름의 지지직거리는 소리, 기계적인 소리 등. 이것은 우리의 반복적인 노동, 즉 행위가 이끌어 내는 기계적인 소리이다. 이러한 소리와 반복적인 이미지가 오버랩되며 그 반복 이미지의 역동성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베르토프가 찍은 장소는 채굴석광, 거리 안내원, 헤어드레서, 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원, 신문 프린터기, 옷을 만드는 기계 등 다양하다. 이러한 노동을 끝내고 난 모습은, 머리를 빗고 정돈하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음악이 점차 사그라든다 싶더니, 항구를 떠나는 배의 모습과 함께 “Defend the Soviet Union”이라는 문구가 함께 보인다.

  • Relaxing Rhythm : 그리고 해변에서 휴식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시한번 그들은 누워있지만, 조금씩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일정하게 반복적인 체조와 수영,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 바람이 흩날리는 것, 어떤 물결과,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마치 굴러오는 듯한 모습. 이미지의 모자이크. 신문지 및 Workers Wall Newspaper로 만드는 장면. 그것은 스포츠에서 던지는 모습, 뛰어넘는 모습, 스포츠 인들의 경기 모습들의 모자이크와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감화 이미지들은 이러한 샷들의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즐기는 경기의 모습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절대로 얼굴만을 담지 않으며, 전신이 함께 움직이는 샷이다. 스포츠 인들의 움직임은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느리게 담는다. 그러한 스포츠가 끝나자 관객들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재정비를 위한 은율이 시작된다. 이러한 재정비는, 움직임을 끝낸 후의 여성들의 모습이다. 단장하는 모습, 진흙으로 자신의 몸을 칠하는 모습 등, 그것을 담기 위해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 본인도 진흙으로 자신을 칠한 모습까지. 그리고 그들이 씻자, 본인도 씻는 모습까지,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과 함께 한다.

  • Movement Montage : 다시 드럼소리가 전개되며 뭔가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한 모든 운동 이미지가 보인다. 앞서 차고 있다면, 사람또한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과, 안장을 타서 위아래로 질주하는 모습. 앞으로 창을 던진다면, 그리고 앞으로 질주하는 농구선수의 모습이 다음으로 나타난다. 창대를 던지는 것을 축구의 공과 같은 개념으로 같이 본다면, 그것을 막는 다는 장면도 나오면서 서로 다른 이미지일지라도 같은 형상 안에서 들어나며 새로운 영상을 제공한다. 분명 축구이지만, 그것은 농구가 되기도 하며, 장대가 되기도 한다. 분명 레이싱 게임이지만, 그것은 놀이동산에서 빙빙도는 회전목마와 같은 동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장대를 뛰어넘는 소녀의 모습이기도 하며, 물결의 모습이기도 하고, 나무의 흔들리는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Perspective : 다시 영화관으로 베르토프는 돌아온다. 그리고 미니어쳐가 된 시티 위에서 본인의 영화 촬영 모습이 겹쳐지며, 다른 시선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 바퀴벌래가 보이고 나서, 보이는 모습들은 날아다니는 그들의 시선처럼 보이는 착각을 준다. 위아래로 흔들리고 빠르게 전환되는 모습은 마치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무엇인가, 자신의 표적을 노리는 이런 장면. 하나 하나씩 움직이며 게임을 하는 장면과, 서로 간의 신경전을 상징하는 움직임들. 어떤 것들 사이에서의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무엇을 사용하는가. 은율이 실행되는 모습과, 그 안에서 움직이고 감정을 들어내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것의 교차가 이루어지며 여러 은율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재즈의 은율과도 같다. 이렇게 카메라가 앉았다 일어나면서, 마치 로봇과 같은 삐삐빕 소리를 내며 움직일 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웃고 떠든다. 그 기계는 스스로 작동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웃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이 영화 안에서 필름의 눈으로 보이는 카메라와 그것을 보는 관객, 즉 영화와 관객의 모습이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댄스와 함께 음악이 같이 플레이 되는 모습이 겹쳐진다. 음악과 함께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사람의 모습은 영화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영화의 음악은 그것을 시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시각은 앞뒤의 샷 프레임에 따라 더 역동적으로 변할 수 도 있고, 같이 겹쳐지거나, 같이 평행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선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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