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미현
작성일
2021-01-02 16:34
조회
347
올 한해 우리는 푸코와 일리치를 공부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공부가 실천이라는 것. 그동안은 우리는 공부를 실천과 따로 떼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공부와 실천 간에 괴리감이 들게 되었죠. ‘공부 따로 실천 따로’는 공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가지게 했고, 일상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왜 공부를 하는지 묻게 되었답니다. 모든 일을 뒤로하고 공부만 하는 양, 그러나 제가 보아온 학인들은 공부와 일상의 삶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잘 산다는 건 뭘까요? 일리치는 [깨달음의 혁명]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세상과 인류를 위해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라 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공부가 세상에 대한 기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민호샘은 이번 에세이에서-‘스스로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스케시스다. 습관대로, 인도되는 대로 보고 판단하고 느끼지 않으려면 다른 습관이 필요하다. 다른 습관은 다른 생활, 즉 이미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 거슬러 낯설고 피곤한 것들을 주변에 두며 자신을 자극하게 하는 일에서 생긴다. 그것이 훈련이며, 푸코는 듣고 말하고 쓰는 행위가 대표적이라고 말한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낯선 것보다는 편안한 것이 좋습니다. 피곤한 것을 주변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좋아해 읽는 것에는 익숙한데 낯선 쓰기는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어찌 보면 책을 좋아한다는 건 이미 읽기와 쓰기도 좋아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쓰기를 좋아할 수도 듣는 것도 좋아할 수도 있는 조건을 우리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스스로의 마음을 낯설다, 피곤하다에 상정하면서요.

이번 학기 밤을 지새우며 낯설고 힘든 공부에 가장 집중하신 듯 보이는 청샘은 “문제의식에 집중해서 글을 읽고 쓰고 힘들면서도 놓지 못하는 게 내겐 공부다.” 경혜샘은 “해야 할 일이 이제 없어졌을 때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관계 안의 삶이 중요하구나를 느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영아샘은 “코로나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데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보은 샘은 “재취업을 해서 힘겨운 나날이어서 공부에 대한 갈등이 많았는데, 올해는 좀 안정된 듯하다.” 미영샘은 “책을 읽을 때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어떤 눈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의 눈을 가질 수 있나를 알게 됐다.” “지금부터 다시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분들과 다름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에세이 발표 후 채운 샘은 우리가 일리치와 푸코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들의 말과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고, 그건 옹알이를 하면서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며 어떤 언어가 어떤 맥락 속에서 쓰인다는 것을 아는 건 그들의 용법을 배우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표정과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하며 언어를 ‘깨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점에서 그들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슨 뜻인지를 알겠다고 하는 것은 허상일 것입니다. 일리치의 자기 삶에 대한 실험은 글에 대한 실험이며, 따라서 독자로서 우리에게는 그 실험이 내 삶과 어떻게 접속하는가를 시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 속에서 내가 해석한 일리치의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는 수련입니다. 채운샘은 그 수련이란 우리의 삶을 ‘변형’하는 일이며,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이 곧 세계를 바꾸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부단히 읽고 쓰면서도 왜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할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 관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놓아라!’ 이것이 채운샘의 솔루션(?)입니다. 채운샘은 공부는 열심히 노력하는 게 아니다, 공부가 위안이 되면 안 된다, 덜어내는 만큼 공부가 이루어진다, 어떤 부침을 겪든 담담하게, 신체에 새겨지지 않은 앎은 아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앎을 무의식화하는 것, 다시 말해 질문을 중단하지 않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부의 화두는 ‘어떻게 나와 내 주변의 삶에 젖어 들 수 있는 공부가 될 수 있을까?’가 되어야 겠네요.
전체 2

  • 2021-01-02 19:03
    저도 채운 샘 말씀 중 언어를 깨치는 아이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앎을 보증해줄 수 있는 건 실천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앎을 적용하는 실천이 아니라 앎을 구성하는 실천. 부단한 관찰과 실험과 실패의 과정으로서의 실천을 계속하고 있는 한에서 앎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지난 한 해 반장 역할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현샘. 올해도 잘 부탁드려욧

  • 2021-01-06 09:47
    길지 않았음에도 샘들의 차분하고 깊은 애정 혹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에세이 발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분한분에게 공부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으로 어떤 힘들을 얻고 계신지가 보여서, 읽으면서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분들과 다름없었다'고 생각하시는 미현샘에게서도 엄청난 진중함이 느껴졌구요.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