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세미나

9월 7일, 8일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볼 공통 주제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9-03 18:30
조회
272


어느새 가을맞이 특별세미나, <트러블과 함께하기> "공생(共生)과 공-산(共-産), 팬데믹을 건너는 지혜" 세미나가 다음주로 다가왔습니다^^
다들 해러웨이와 함께 즐거운 실뜨기 중이신가요?^^ 풍성한 세미나를 위해 몇가지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다음은 세미나에서 함께 논의하고 싶은 공통주제입니다. 공통주제는 조별로 토론하고, 자유토론은 전체가 모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각자의 솔직한 질문을 가지고 세미나에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1장. 반려종과 실뜨기하기


“사물들과 살아 있는 존재자들은 응답-능력을 키우면서, 시간과 공간의 상이한 스케일 속에 인간과 인간 아닌 생물들 신체의 내부와 외부에 있을 수 있다. 이 플레이어들은 다 함께, 무엇과 누구의 존재를 유발하고, 촉발하고 야기한다. 서로 함께-되기와 유능하게-만들기는 n-차원의 틈새 공간과 그 주민들을 발명한다.”(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34)


해러웨이는 캘리포니아 경주용 비둘기 애호가들의 사례를 들어 반려종과의 협력을 제안합니다. 일명 '함께-되기'의 협력이지요. '반려종'이란 가차 없이 '함께-되기'이며, 서로를 감염시키고 서로를 연구하고 서로에게 연관된 다른 존재자들을 인식하게 합니다. 대체 우리는 왜 아 반려종들과의 ‘되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함께-되기’란 무엇이고, 이 되기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지금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상황(환경, 코로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되기’를 발명하고 ‘응답-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요?


2장. 촉수 사유 : 인류세, 자본세, 쑬루세

“인류세나 자본세와는 달리, 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은 불안정한 시대에, 이 쑬루세는 여전히 위태로운 시대 안에서 진행중인 복수종의 함께 되기 이야기와 실천들로 구성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하다. 인류세와 자본세 담론의 지배적인 각본들과 달리 인간은 쑬루세에서 단지 반응할 수 있을 뿐인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되는 유일하게 중요한 행위자가 아니다. 질서는 다시 만들어진다. 인간은 지구와 함께 있고 지구의 존재이며, 이 지구의 생물적이고 비생물적인 힘들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99)


‘어떤 이야기들이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 지가 중요하다!’ 아이히만의 후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게임 오버’ 식의 냉소가 가미된 비관주의 아니면 지구공학적 해법을 등에 업은 낙관주의였습니다. 허무주의와 낙관주의. 이것은 모두 전적으로 인간예외주의에 기반하고 있지요. 인류세와 자본세는 사태의 긴급성 속에서 오로지 인간만을 조명합니다. 그러나 헤러웨이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인간(human)이 아닌 부식토(humus)의 이야기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새로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애도하고 무엇과 함께-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 발밑에 우글거리고 있는 존재자들, 그동안 그 존재조차 몰랐던 캐리어백의 잡동사니들이 기어 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가 실뜨기를 시작해볼 수 있는 크리터들은 무엇일까요?


3장. 공-산 : 공생발생과 트러블과 함께하기라는 활기찬 예술

"공생은 '상호 이득이 되는'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생물학자들이 설명을 위한 도구로서 소유욕 강한 개인주의와 제로섬 게임의 명령을 위한 도구로서 소유욕 강한 개인주의와 제로섬 게임의 명령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이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생자/홀로바이온트와 관련해, 특정 상황에 놓인 역동적 딜레마들의 이질적인 그물망 패턴과 과정 및 이점을 가리킬 이름들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109)


해러웨이는 존재들간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친밀하게 되는" 공생 관계를 제안합니다. 이를 위해 '공-산의, 복수 플레이어의, 복수종의 사고와 행동을 위한 모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련의 예술 프로젝트를 소개하지요. 네 가지 예술 프로젝트들은 공생 관계가 상호 이득을 노리는 관계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이름과 이득을 포기하고 새로운 패턴과 이름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공생 관계, '공-산'은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요? 우리는 어떤 '단위unit'를 포기하고 '홀로언트holoent'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4장. 친척 만들기 : 인류세, 자본세, 플랜테이션세, 쑬루세

친척 만들기와 종류 만들기는 상상을 늘리고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친척의 확대와 재구성은 지구에 사는 모든 것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척이라는 사실에 의해 가능해지고, 우리는 진작 집합체인 '종류'들을 더 잘 돌보았어야 했다. 친척은 집합이라는 종류에 해당하는 말이다. 모든 크리터들은 수평적으로, 기호적으로, 계보상으로 공통의 '육신'을 공유한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178)


친척 만들기는 우리의 상상을 늘리고 이야기를 바꾸게 헤줍니다. 해러웨이는 '친척'이 된다는 것은 수평적으로, 기호적으로, 계보상으로 공통의 '육신'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만물이 '친척 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개념을 통해 어떻게 기존의 생식과 성의 질서를 넘어갈 수 있을까요? 이 책의 부제인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기'라는 말에 내포된, 새로운 성과 생식의 자유에 이르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5장. 카밀 이야기 : 퇴비의 아이들

"퇴비 공동체들은 모든 장소와 통로에 스며들어 층층이 쌓여 있는 살기와 죽기를 계승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놀았다. 이 퇴비의 아이들은 지구 역사에 나타난 많은 유토피아운동과 이야기, 혹은 문헌 속 거주자들과 달리 맨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기만할 수 없음을 알았다. 정반대의 통찰이 그들을 움직였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 혼과 살아 있는 자들이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이 폐허 속에 사는 방법에 대해 묻고 응답했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188)


5장의 카밀 이야기는 '포스트 휴먼'이 아닌 '퇴비'가 되기로 결의한 사람들의 다섯 세대에 걸친 '공생발생적 결합'을 전합니다. 해러웨이는 이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긴급상황으로 인식한다면, 정말 죽음을 불사하며 다른 감각을 가진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맨 처음 시작' 같은 것은 없고, 있는 것은 카밀이 있기까지 존재해왔던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들의 공생만 있을 뿐입니다. '퇴비'가 된다는 것과 '공생'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 최종 논의 주제


* "우리의 과제는 거친 파도를 잠재우고 고요한 장소를 다시 구축할 뿐만 아니라 , 트러블을 만들고, 파괴적인 사건들에 강력한 응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진실로 현재에 임하는 것을 배우기를 요구한다. 끔찍한 과거 혹은 에덴동산 같은 과거와 종말론적 미래 혹은 구원을 약속하는 미래 사이에서 사라져버리는 회전축으로서가 아니라 수많은 장소와 시간, 수많은 문제와 의미의 무한연쇄에 얽혀 있는, 죽을 운명의 크리터로서 말이다."(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8)

* "우리는 각자의 전문 지식과 경험에 갇혀 너무 많이 알 뿐만 아니라 너무 적게 안다. 그래서 절망이나 희망에 굴복하는데, 어느 쪽도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절망도 희망도 감각에, 알아차리는 일에, 물질적 기호론에, 지구에서 두텁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필멸의 존재들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희망도 절망도, 이 책의 첫 장 제목인 '반려종과 실뜨기하기'를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최유미 옮김, p.14)




우리의 삶이야말로 여기도 문제, 저기도 문제, 그야말로 트러블 월드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트러블' 자체가 아니라, 그 트러블들을 다르게 사유할 수 없음에 있는 게 아닐까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극대화된 모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배제, 통제와 자유, 평화와 전쟁, 애착과 증오, 가까움과 멂... 꾹꾹 눌러두었던 문제들이 폭발하고 두려움은 증식되는 이때,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롭고 자유롭게 사는 걸까요? 해러웨이가 말한 '현재에 임하기'란 무엇이며, '절망에도 희망에도 굴복하지 않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늘 그렇듯이, 출발점은 질문을 잘 던지는 것입니다.각자의 질문을 가지고 세미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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