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세미나

9월 7일 <트러블과 함께하기> 세미나 후기

작성자
송송이
작성일
2021-09-07 21:43
조회
264
트러블과 함께하기 1, 2장 후기

 

 

반려종과 실뜨기는 무엇일까? 발제자 박규창 님은 세계는 실뜨기 놀이와 같다고 하였다. 어떤 개체도 절대적으로 세계의 향방을 주도할 수 없고, 각 개체들의 실뜨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세계라고 말이다. 이 실뜨기 과정에서 개체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반려종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세계도 함께 조직된다.

 

실뜨기를 통한 연결은 생태주의(혹은 자연주의)에서 흔히 말하는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는 인드라망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한번에 해결될 수 없고, 단지 부분적으로 해결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트러블과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채운 님은 p.23 “실뜨기는 패턴을 주고받는 것 / 문제가 되는 것을 연결하는 것”을 인용하며, 실은 문제들이고, 실뜨기는 그런 문제를 연결하여 해결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현재 코로나19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실을 던져준 것(실뜨기를 넘겨준 것)일 수도 있다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에 대응하여 다른 종에게 넘겨줄 것인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본 BBC의 자연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도시화에 가장 잘 적응한 야생동물을 순위별로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1위가 바로 비둘기였다. 그렇다면 비둘기는 인간이 넘겨준 실뜨기를 잘 받은 걸까? 그 실뜨기를 잘 받아서 패턴을 만든 비둘기가 다시 인간에게 넘겨준 실뜨기는 과연 무엇일까? 도시의 청소부이기도 하고 인간에게 질병을 퍼트리는 매개체이기도 한 걸까?

 

박규창 님은 발제에서 객관적 비둘기는 없다. 인간과 실뜨기를 통해 세계를 구성해온 비둘기만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인생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 <숲은 생각한다>의 주체성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 세계는 바로 주체성(혼)을 가진 자기들이 구성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주체성을 가진 생명체가 바로 반려종이 아닐까? 반려종 모두가 능동적으로 지구를 구성하고 있기에 인간은 트러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트러블에 놓이기도 한다. 해결은 인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구의 반려종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응답-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응답 가능하려면 관찰과 애정을 통해 반려종이 갖는 사회적 역할과 함의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환경문제, 기후위기 등의 배경으로 설명되는 인류세나 자본세 모두 이런 반려종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인간 중심적, 인간 영웅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저자는 쑬루세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땅에 촉수를 붙이고 지하세계의 다양한 생명체들을 살리는 부식토, 퇴비되기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퇴비이다. 우리뿐 아니라 지구의 반려종들이 모두 그렇다. 함께 퇴비되기를 통해 우리와 반려종들의 의미, 트러블과 함께하기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전체 2

  • 2021-09-08 16:29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기, 성가시고 문제거리인 '비둘기' 같은 반려종과 함께하기를 발명하기를 종용하는 것 같습니다.
    반려종과 실뜨기하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문제를 멋있게, 깔끔하게 해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 2021-09-09 13:41
    '실뜨기', 'SF' 등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읽기가 어려웠지만 그만큼 많은 아이디어들을 던져줘서 재밌었습니다. 우리는 실뜨기 패턴을 넘겨줬고, 비둘기는 그것을 이어받았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고요. 우리는 또 어떤 크리터들로부터 실뜨기 패턴을 받고 넘겨줄 것인지 고민하라는 해러웨이의 주장을 계속 곱씹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질문하신 것처럼 제목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어떤 식으로 소화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