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세미나

[팬데믹 시대에 읽는 이반 일리치] 첫 시간 후기들!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1-13 18:50
조회
190
야심차게 급조된(?) '팬데믹 시대에 일리치 읽기'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이희경 선생님의 <이반 일리치 강의>를 읽고 세미나를 했는데요, 이른 시간에도 함께하신 샘들의 지적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저는 일리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도구들이 일리치의 텍스트 안에 가득 담겨있고, 일리치의 그러한 생생한 문장들과 접속할 수 있는 길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이희경샘은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말을 받아서 '배움은 둥근 원과 같아서 어디에서도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은 끝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의 이번 세미나도 둥근 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자 다른 고민을 가지고 다른 지점에서 이반 일리치와 접속하여 함께 원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요, 세미나에 참여하신 샘들의 후기들을 만나보시죠 ^^




"저는 이번 시간에 나눈 이야기 가운데, ‘자기 돌봄’을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일리치는 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기를 돌보는 기술을 고안할 것을 제안하지요. 그런데 이런 ‘자기 돌봄’은 자기가 자기를 돌보며 잘 살아가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생의 문제’라는 것, 나아가 '관료화된 의료 제도로부터 자신의 몸에 대한 권력을 되찾아오는'(128쪽)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요.

또 책에서 언급되었던 ‘우리(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는 우리에게 가장 적정한 기술이 뭔지 알 수 있고, 그것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낼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부분(54쪽)에 대해 나눈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알 수 있다’는 말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커져서 오히려 반생산적이 되어버린 도구에서 멀어지는 것에서 시작해서, 각자 자기 삶의 ‘맥락’ 속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는 것이죠. 세미나에서 한 샘이 들려주신 경험에서, 냉장고 없이 살다보니 냉장고가 딱히 샘에게 필요한 도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대신 내가 먹는 음식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게 된 경우처럼요."

- 오정아샘


"이전에 혼자 이반 일리치 책을 읽으며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신선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반 일리치 강의>를 통해 그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실천하며 살았는지 이희경 선생님의 말로 쉽게 정리돼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러한 소규모 스터디 모임 방식의 세미나 경험이 거의 없는데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일리치가 말하는 공생을 위한 도구처럼 우리가 지금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자기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 같았다고나 할까요. 귀한 시간과 자리 마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 신영은샘


"그동안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져서 미뤄 왔습니다. 규문을 알게 되면서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전에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규문과 비슷하게 인상 깊었던 문단을 뽑고 느낀 점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첫 세미나를 참여하며 이전 모임과 다른 점을 느꼈다면 규문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독서모임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는데 대부분 자신의 삶이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습니다.


규문에서는 이반 일리치라는 한 인물을 계속해서 공부하신 분도 계시는 것 같았고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가서 제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던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선생님들께서 공부를 많이 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늦게 세미나 정보를 알게 되어 짧은 시간 내에 이반 일리치에 대해 파악할 수 없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분명히 고민해 봐야 하는 부분이고 현재 두 번째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병원에서 근무할 예정인 저에게는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배움은 전문가들이 정해 놓은 단계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탈학교 사회’에서의 공부는 연령도 배경지식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 순간부터 공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늦게 학교에 다니며 모르는 것이 나오면 채워 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생활을 해왔는데 성적을 위해 공부를 더 해야 하나 혼란이 찾아오고 있던 시기라서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좀 더 진득하게 읽으면서 이반 일리치에 대해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김소정샘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질문하기 혹은 낯설게 보기 일 겁니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상식과 진리에 질문을 던지라는 건데요, 이를 자신의 삶에서 실시간으로 실천한 분 중 하나가 일리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이반 일리치 강의>를 읽고 토론 한 내용 중, 전통적으로 생산수단으로 여겨질 뿐이었던 도구에 대해 일리치가 문제 제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리치가 말하는 도구는 작게는 망치와 드라이버 같은 것에서부터 기계나 건물 같은 것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기술, 하이테크놀로지나 제도가 여기에 다 포함된다고 합니다. 학교나 병원, 고속도로, 결혼 등도 다 도구이지요. 일리치는 이런 도구를 누구나 소유해야 한다거나 더 개발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도구 자체의 성격에 주목합니다. 그는 도구가 우리 삶의 편의를 증대시키는 것은 맞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오히려 삶을 억압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도구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고요. 가령 잘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가 언제부턴가 주차장이 되어 버린 것처럼요. 우리가 문제 삼을 것은 도구를 누구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맥락에서 이것이 나의 삶에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질문하고 탐구하는 태도라는 것을 일리치와 이번 토론에서 배운 내용이었습니다.

문탁샘의 책이 너무 재미있고 쉽게 읽히면서도 묵직하게 파고 들어오면서, 그동안 따로 놀던 개념들이 좀 더 이해되었고 함께 낭송하고 이야기 나누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절제의 사회>도 기대됩니다~!"

- 강지영샘


"제도 혹은 서비스는 사람들과 관계할 필요성을 없애는 속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제와 갈등을 겪는데, 그것을 물어보고 조언 듣고 해결할 창구는 무척 협소하다. 병이 나면 병원에, 물건이 고장 나면 서비스 센터에, 마음이 괴로우면 상담사나 힐링 프로그램에 찾아간다. 그래서 다양한 트러블들을 점점 더 혼자서 맞이하고 해소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은연중에 나는 이런 해결법이 깔끔하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 안 지고 지저분한 꼴 안 보이는 독립적이고 세련된 도시인 같은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독립적인가 하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 옆 사람들에게만 점잔 뺄 뿐이지, 다른 전문지식이나 전문 기술, 첨단 기기들, 서비스들에는 완벽하게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의존 중에서 가장 수동적인 형태의 의존이다. 세미나 시간에, 제도는 우리가 그것에 기대면 기댈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확장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불편함이나 삐걱거림을 겪지 않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세련되어 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무능해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런 도구들이 없으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도, 자기 활동을 유지할 수도 없게 되고, 나아가서는 그 도구들에 의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느라 자신을 소진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러한 제도에 의문을 갖는 게 혼자서 짊어지고 고립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편리함을 넘어서고 시대와 세대의 미풍양속을 넘어서는 일은 너무 외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미풍양속과 새로운 ‘멋짐’을 공유하고 만들어갈 동료들이 있다면 어떨까? 이희경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하신다. '그래서 저는 편리함을 넘어서는 문제를 개인의 고독하고 윤리적인 결단으로 만들지 말고 다 함께 하는 즐거운 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뭘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뭔가를 해보는 거죠. 그리고 그걸 힙한 걸로 만드는 거에요. <우리 동네에서는 명품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업사이클링한 옷을 입는 게 힙한 거야>, 뭐 이렇게요. 이건 대안적 문화를 창조하는 거예요.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하면 가능합니다.'(58쪽) 우리 동네에서만 통하는 고유한 힙함을 만드는 일과 그 일에 참여하기. 이런 이야기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 성민호샘


"첫 번째 강의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먼저 ‘도구’의 개념. '일리치가 말하는 ‘도구’는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아주 간단한 도구부터 드라이버 같은 아주 간단한 도구부터, 방적기나 공장과 같은 기계, 건물 같은 것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이다. 우리가 흔히 기술이나 테크놀로지라고 하는 것들, 혹은 장치나 제도라고 하는 것들까지 다 포함 하는 것이다. 학교도, 병원도, 고속도로도, 사랑을 하기 위한 근대적 도구 일부일처제의 결혼도 도구다' (38P)


첫 번째 강의의 이 대목에서 일리치가 말하는 도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어쩌면 이미 내 신체성의 일부가 된 것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느꼈다. 일리치적 의미의 도구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성을 변화시킨다. <학교 없는 사회>를 강의한 두 번째 강의에서 일리치가 학교 교육을 기우제에 비유하면서 ‘의례’라고 표현한 대목이 신체성을 변화시킨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편리와 효율성을 기대하면서 선택하는 도구는 그 도구의 속성상 특정한 주체를 생산해낸다. 나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개인이 있고 그 개인이 가치중립적인 도구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뒤이어 든 생각,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 내가 쓰는 각종 도구들은 우리의 신체성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편리와 효율은 어떤 뒷면을 감추고 있을까? 일리치적 의미에서 그것을 ‘도구의 반생산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우리를 능동적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라면 그것은 생산적인 도구, 공생적인 도구가 될 것이고 우리를 점점 더 의존적이게 만드는 도구라면 그것은 반생산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여기서 도구 자체의 중립적인 성격을 논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 아닐까. 예컨대 원자력은 그 자체로 중립이다,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것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는 논의는 일리치적 관점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어떤 도구는 그 도구 자체의 성격이 반생산적이기 때문에 애초에 논의할 가치가 없다.

토론을 하면서 뭔가 짚이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정작 정리를 하려니 가닥이 잘 잡히지 않는다. ‘가치의 제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리치가 짚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일리치가 평생의 길이 우정의 길이었다는 대목을 발췌했는데, 그 부분에서 나는 가치를 제도화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회자되는 ‘돌봄’, 막연히 ‘돌봄’을 단순히 무력한 누군가에게 쾌한 상태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런 이미지의 돌봄에 따라오는 것은 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거나 그런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다. 불편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서로 존재의 변형을 이뤄가는 과정, ‘서로 돌봄’이 나는 자기 돌봄 즉 자기배려가 아닌가 싶다. 자기배려의 길은 일리치의 말로 우정의 길이기도 하고 그것은 제도화로 묶이지 않는 길이 아닌가 싶다. ‘자기돌봄의 테크네 = 공생의 도구’라는 메모가 눈에 띈다."

- 최난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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