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2월1일은 휴셈입니다~ 2월8일 공지

작성자
손지은
작성일
2018-01-29 16:59
조회
167

이번 세미나는 나영샘의 호소(?)로 시작되었지요^^ 왜 카프카는 이리도 안 읽히는 것인가! 나영샘만 아니라 카프카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느낄거예요. 앞 문장과 뒷 문장 사이에 인과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걸. 그래서 뭇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가 않지요. 헌데 술술 읽히는 소설이란 뭘까요. 우리는 익숙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의 언어를 의식하지는 않지요. 허나 말이 잘 안통하는거 같고, 말이 미끄러지는 곤란을 겪을 때 기존에 작동시키던 표상은 길을 잃고 그야말로 ‘말을 겪게’ 되곤 합니다.

카프카는 마치 표상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우리가 기존에 작동시키던 언어를 반문하게끔 하는거 같아요. 카프카의 일기만 보아도 그렇죠. 보통 일기를 쓰는 행위는 그날 그날의 나를 쌓아가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나는 오늘 그걸 했고, 누구를 만났고.. 하며 자기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여지지요. 그런데 카프카의 일기에는 누구를 만났는지, 내가 어땠는지 하는 이야긴 일절 나오지 않아요. 다만 [작품처럼 보이는] 묘사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쓴다던지, 약간의 변형을 가해 쓴다던지 하면서 일기가 ‘나’라는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것을 막지요. 그래서 카프카의 글은 바로 알아들을 수 없고, 그 말을 통해 카프카가 어떤 행위를(실험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카프카 작품에서 이야기의 물줄기가 흐르는 동안, 이전의 관심은 ‘실종’되고 다시 새로운 관심이 흐름을 타고 이어나가지요. 그런 점에서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펼치고 떠나는 장이지, 그를 통해 자기를 확인하는 장은 아니었던거 같아요.글쓰기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실종시키는 자! 이번 시간에 읽은 <실종자>는 카프카 글쓰기의 한 면을 지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카프카가 제도화된 관료사회를 끊임없이 소재로 다루는 것은 왜일까요? 제도화된다는 게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제도의 세계에서 그 위치값에 점지워진 사람들은 그저 맡은 일을 할 뿐, 윤리적인 책임에 있어선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황제의 칙령>에서 중요한건 황제 자신이 아니라, 황제라는 위치값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만이 중요하지요. 그 말은 언어적 실체성을 띠고 떠돌아다니며 암묵적 힘을 발휘합니다. 카프카는 <어떤 꿈>에서 그런 '명명'을 밟고 자기 묘비명 위로 떨어져 죽습니다. 이름, 명명, 언어란 카프카에게 자신을 매어놓는 무엇이 아니라 자신을 떠나는 발판이 됩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에 매이지 않는 언어 사용. 카프카를 읽는 동안 이 하나만 배워도 언어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와질 수 있을거 같아요.

다음 시간에 읽어올 텍스트는 <소송>을 다시 읽고, 단편 중 <사냥꾼 그라쿠스>, <시골의사>, <가장의 근심>을 함께 읽어오는 것입니다.

2월 1일은 휴강입니당~ 그치만 오셔서 공부하시는 것도 대환영 ^ㅇ^//

한 주간 카프카 단편집을 읽는 것도 숙제로 있었지요.

다음 간식과 후기는 나영샘~ 그럼 2월 8일 수업때 뵙겠습니다~~
전체 2

  • 2018-01-29 18:29
    아직 남아있는 호소하러 목요일에 갈게요!

    • 2018-01-29 19:01
      오~~~ 좋아욤 ㅋㅋ 머리 맞대고 카프카 읽고 차담이라도 나눕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