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2월 8일 카프카 세미나 후기

작성자
나영
작성일
2018-02-08 18:05
조회
297
카프카의 글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매우 낯설게 어렵습니다. 그래도 단편은 짧은 맛에 견딜 수 있는데 장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을 헤매는 기분이에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 큰 간극이 있어 계속 거기에 빠져 고통을 느낍니다. 다행히 이건 카프카가 의도한 장치이고 저는 매번 그 틈에 빠져주는 충실한 독자입니다. 그런데 글이 왜 이렇게 추워요?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카프카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오들오들 떨려요. 그래서 저는 헤세의 책을 곁에 두고 번갈아 읽고 있습니다. 저는 헤세의 글이 주는 따뜻함을 좋아해서요. 카프카 읽다 추우면 헤세의 아무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 온기가 좀 돌면 다시 카프카로 옮기며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고 있어요. 단.짠.단.짠.의 심정이 이러할까요?

평화롭던 저의 백수생활을 뒤흔든 카프카(+니체=규문)를 만난 뒤로 어렵다는 말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벗들에게 요즘 겪고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죠. 각자 어떻게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지 알려주며 이런저런 추천을 해주더군요. 다른 실력자들은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다루는지, 그러니까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자신만의 생각으로 나아가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벤야민이 말하는 카프카를 읽어보라는 조언을 들았죠. 또 하루키나 마루야마 겐지가 후배 작가들에게 글쓰기에 관해 조언하는 텍스트처럼 글쓰기 자체에 대한 유의미한 조언이 담긴 책도 추천받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저 벤야민은 초면이거든요. 벤야민이 뉘신지  찾아봐야 예의 아니겠어요? 또 글쓰기에 관해 조언하는 하루키나 마루야마 겐지가 과연 자기 글을 어떻게 완성했나 궁금해 그들의 책을 찾아 읽게 됩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끝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세미나가  '카프카와 함께 하는 우주여행'인데 저는 아직 출발도 못 했지 뭐예요. 우주선 탑승 전에 해야만 하는 준비운동이 제겐 너무 많아요. 후발대의 아쉬운 마음에 음악과 함께 하는 저만의 우주여행을 하고 있어요. 라흐마니노프 2번 교향곡 3악장을 들으면 가능하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나 다른 교향곡 말고 꼭 2번 교향곡, 그것도 3악장이어야만 해요. (https://youtu.be/QNRxHyZDU-Q) 이 곡을 들으며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하고 있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하는 우주여행'이라고 혼자 이름 붙여서요.

초조해진 저는 이렇게 후대 사람들이 쓴 글만 읽다 정작 카프카(+니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할머니 되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운동이 있다며 그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수가 야훼를 가리키면서 그와 닮기를 힘쓰라 제자들에게 말하는데 제자들이 보기엔 야훼는 고사하고 예수만 따라가기도 벅찬 거죠.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닮으라 말합니다. 근데 사람들이 보기엔 예수는커녕 예수의 제자들을 쫓아가기도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 제자들을 성인으로 추대하고 뒤쫓고... 또 공자가 요순을 가리킬 때 공자의 제자들은 요순은 도무지 모르겠고 공자만 봐도 너무 대단한 겁니다. 그래서 공자가 따르라는 요순은 제쳐두고 공자를 쫓으라 전하죠. 그런데 공자의 제자들이 보기엔 공자는 또 고사하고 자로 정도 되는 훌륭한 제자를 따라가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다음 세대는 요순도 공자도 아닌 자로를 가리키고, 뒤로 가면 또 자로의 제자를 따르고, 맹자를 따르고 주자를 따르고... 이런 하강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물론 이런 인물들이 단순히 선형적 위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다만 하강과 상승, 그리고 지향과 실천에 관해서라면 조급해하지 말고 배짱 좀 부려도 유쾌하지 않겠니? 하면서요. 카프카에게 있어 최악의 악덕이라는 이 초조함에서 벗어나 배짱 좀 부려야겠다 다짐했지요.

오늘 세미나에서는 시간론적 관점으로, 카프카의 작품에서 '시간'이 어떻게 작동하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승희샘은 시간이 '열린다'는 개념으로 발제를 하셨는데요. 체포되어 붙잡힘과 동시에 그에게 끝없이 지연되는 소송이라는 시간이 열린 게 아닐까 생각하셨던 점이 흥미로웠어요. 승희샘 강원도로 떠나기 전까지 제가 뭐라도 쓰긴 써야 할 텐데요! 보영샘이 던진 질문하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과연 답은 있는가, 아니 답이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한가, 질문한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싶었죠. 아~ 보영샘과 이야기 나누면 질문 폭발인데 왜때문에 세미나에서는 할 질문이 없을까요. 윤영샘은 말레이시아 여행 중 카프카 잠언집을 겟 해오셨어요. 댓글로 그 잠언집에 있는 한 구절을 적어주실 거예요. 윤영샘은 카프카와 함께 제대로 지구별 여행 중이시군요. 집에 가면 또 읽게 되는 지니샘의 글은 '육신'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육체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레고리 잠자가 생각나는 글이었습니다. 소송이 없었다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이야기했던 지은샘의 글도 있었죠. 지은샘은 언제나 제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는데 그 지점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질문만 듣고 있어도 재밌어요. (투명인간처럼 계속 듣고만 싶어요!) 강석샘과는 전철역까지 걸어가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함께 의문을 느꼈던 점이 있어 다음 시간에 질문하기로 하고 인사를 나눴죠.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나눠주시니 다들 어찌나 감사한지요.

카프카는 모든 언어를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이 곧 제도이기에 매끄럽게 이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제도나 현실을 의심할 수 없다면서요. 인간의 삶에서 보이는 다양한 제도권의 문제를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바꿔보자는 것이 카프카님의 빅픽처인 걸까요? 언어 관료제를 의심해 본 적이 없기에 매번 타성에 젖어있는 저를 깨부수고 고정 값을 바꿔야만 하더군요. 이것이 니체가 말한 사유의 망치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어려워요. 펜도 잡아야 하고 확실치는 않지만 망치 비슷한 것도 들어야 하고 말이에요.

에혀~ 과연 저는 음악과 함께 하는 나홀로 우주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요? 카프카 우주여행 우주선에 탑승할 수는 있을까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전체 6

  • 2018-02-08 19:48
    카프카는 '초조함'이 가장 큰 악덕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초조해 하는 혹은 초조해 했던 사람이 아닐까요? 카프카의 일기에는 끊임없이 '오늘도 쓰지 못했다. 써야만 한다' 는 말이 반복해서 쓰여 있어요. '쓰지 못했다'고 "쓰는 일", 그게 오늘 세미나에서 나눈 요제프k가 보여준 태도인거 같아요.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해볼 때만이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으니 ^^ 저는 나영샘이 쓸 수 없음을 고민하는게 무척 카프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문학이 가장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면, 그런 문학을 읽고 쓰는 행위 또한 말 되어진 것을 통해 그 말하기 어려움과 접속하는 일일테니.
    그나저나 이렇게 빠른 후기라니! 글이 안써진다고 투정하던 그분의 후기 맞나요?ㅋ 라흐마니노프와 함께하는 우주여행 좋네요. 그 여행을 규문에서 함께 하면 더더욱 좋을 듯. 자주 와요 ^^ 와웅

  • 2018-02-09 07:16
    초스피디한 후기군요. 카프카를 읽은데 동물이 등장하는 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시골의사에서 '돼지'우리, 말이라든가 굴에서 '쥐' 등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동물들로서 카프카가 상징해 놓은 것이 있다면 카프카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궁금해졌습니다. ~~~~~

    • 2018-02-09 11:12
      카프카는 많은 동물을 그렸습니다. 주로 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있는 존재들이지요. 대표적인 동물은 개, 원숭이, 두더지(?), 쥐입니다. 이들은 모두 학자들이예요. 또한 변신의 대가들입니다. 종족의 본성을 탐구하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대지에서 살그머니 사라집니다. 관찰과 배움, 인간의 본성과 무리의 삶! 그들에게는 공부 주제가 차고 넘친답니다. <시골 의사>에 나오는 돼지와 말은 무리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카프카의 대표적인 동물 주인공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돼지는 '가축'으로 나오고, 그 우리가 더럽고 낡았다는 점에서 스위트 홈이어야 할 '가정'을 비판하는 아이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말은 두 필이기 때문에, 동물들과 같은 계열에 있다기 보다는 늘 쌍으로 돌아다니는 '조수들'과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지요. 카프카의 조수들은 가족과, 회사, 사회와 민족 언저리에서 카프카의 K를 돕거나 방해하는 존재들입니다. 견고해보일 것 같은 삶의 제도들이 이들 조수의 형상 덕분에 우스꽝스럽게 나타납니다.

    • 2018-02-09 11:14
      나영 선생님도 강석 선생님도 카프카의 미로에서 뜨거워지시고 있군요! 카프카에게 '뜨거움'이란 형제를 살해하고, 종족의 피를 볼 때 느끼는 온도이지요. 자신이 출발한 땅, 자신이 속한 무리를 스스로 끊고 나오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뜨거움'! 시뻘겋게 데인 몸과 마음으로 다음 세미나 시간에 만나요!

  • 2018-02-09 13:52
    Ealier, I didn’t understand why I got no answer to my question, today I don’t understand how I presumed to ask a question. But then I didn’t presume, I only asked.
    일찍이, 나는 왜 내가 나의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 나는 내가 어떻게 감히 질문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 나는 뭘 하려고 했다기보단, 나는 그저 물을 뿐이었다.
    /
    영문판 카프카 아포리즘 중 36번째 글이었습니다. (번역은 제가 마음대로 한 것이라,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헤헷..) 저도 나영선생님 글 보구 이분이 정말 그렇게 글 쓰기 힘들어 하셨던 분 맞나,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정갈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쓰시는 분이라 더더욱 고민이 많으셨던가 보다, 생각이 드네요! 반면 저는 게을러서 참 글쓰기가 힘든데, 더욱 막 글못쓰기를쓰기를 선택해야겠어요!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다음 세미나 때 뵈어요 :D

  • 2018-02-10 09:38
    감사합니다. 주말에는 카프카를 읽겠습니다. k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