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3월 15일 카프카 세미나 후기

작성자
나영
작성일
2018-03-15 21:43
조회
128
카프카가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하는 글만 나올 것 같고 후기를 굳이 둘이나 작성해야 하나 싶은데 아무거나 쓰라고들 하시니 본격 아무말 대잔치, ‘카프카는 정말 어려워 버전 2’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변신>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미나 전 유일하게 읽어본 카프카 작품이어서 친근했고 다시 읽어도 잘 읽혀서 이게 뭔 일이지, 어머 나 이제 카프카랑 쬐금 가까워졌나 싶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규문에 걸음 하였으나 제가 읽고 이해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깨달았고 오늘도 역시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통해 현대사회의 인간소외 현상을 꼬집는 이야기로구나, 아 이 밥벌이의 지겨움이여!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레고르는 완전히 벌레로 변신 ‘완료’한 상태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내뱉는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요. 언어를 잃어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곧 인간 조건의 상실인데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말을 다 알아듣고 심지어 바이올린 연주에도 반응합니다. 인간의 영혼과 벌레의 몸, 변신은 완료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문턱(경계) 위에 계속 존재하는 상태였어요. 그러니깐 변신 ‘완료’가 아니라 변해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보여준 거죠. 그리고 결국 어떠한 상태도 아닌 상태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럼 왜 굳이 벌레의 형태로 죽었는지, 그 죽어가는 과정을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죽음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발짝 더 나아간 질문이 필요했(는데 놓쳤)죠.

카프카의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황과 그의 전기를 함께 꿰어야만 합니다.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말했기에 완전한 체코인이 아니었어요. 유태인이기에 완전한 독일인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이면서 완전한 노동자 신분도 아니었고 작가였지만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지도 않았어요. 만나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경계에 있었고요. 그래서 자신을 어떠한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적응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나 봅니다. 그럼 사회부적응자임을 인정하고 다 포기하고 살았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에요. 계속 좌절하면서도 또다시 문턱 넘기를 시도해요. 카프카에겐 한계가 곧 새로운 출발선이었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계와 한계를 끊임없는 겪는 움직임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깔끔하게 규정할 수 없는 거죠.

선민 선생님은 문학 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한없이 게을러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죠. 줄거리가 있고 상황 묘사가 많아 밀도 있게 읽지 않아도 어떻게든 읽고 쓸 수는 있으니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에세이를 다시 읽어보니 제 글은 ‘직장을 그만둔 이유.hwp’정도로 읽혔습니다. 작품에 대한 긴장감도 전혀 없고 그저 과거의 문제를 진술하기에 그친 글이었어요. 사실 저는 진술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경찰서 가서 목격자 진술서 쓰고 경찰한테 칭찬을 받고, 회사에서는 경위서 첨삭도 해주고 그랬어요. 아무튼 어떤 상황에 대해 사실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아예 느낀 감정을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에세이처럼 논거를 대며 깊이 파고드는 글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눈만 뜨고 고개만 들면 찾을 수 있는 참조점들을 차고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데 체화하기가 생각보다 많이 어렵습니다. 다들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드세요? 직장을 관두고 누굴 많이 만나기도 했고 공부(비슷한 것)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맑스를 만나고, 아렌트를 읽고, 브레히트를 접하고, 푸코를 배우고, 니체와 카프카를 만났지만 이게 무슨 일기장 포도알 채우기인가, 나는 대체 뭘 배웠나 자문하니 전부 다 추상적이기만 했어요. 심지어 이런 활동을 통해 나름의 위로까지 받았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회사가 싫어 그만두는 것은 카프카식 해결법이 아니었어요. 이 회사 싫어 저 회사 가면 뭐 크게 다르겠습니까. 여행을 몇 달 다녀왔다고 삶이 크게 변하지도 않고요. 여기는 지옥이고 저기는 천국일 리 없겠지요. 카프카에게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경계에 서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꿈과 현실의 이분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지점의 문제를 바꾸는 것, 스스로 균열과 충돌을 끊임없이 일으켜 보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은 마치 허공에 대고 모두에게 전하는 듯 말씀하셨지만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강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성>의 k가 출구를 찾아가는 것처럼 출구는 방향이고 벽과 함께만 찾아진다는 이야기도요.

보영샘이 후기에 언급한 대로 다음 주에는 나는 카프카와 이렇게 만났다!는 글을 써오기로 했어요. 저는 아직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잠시 스치기만 한 상태라 막막하지만 지금 이 문턱이 어떤 한계로 구성되어 있는지 잘 살펴보고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모습을요. 막히면 방향을 바꿔보기도 하고요. 카프카를 이해하고 카프카의 글을 읽는 것은 정말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아요.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고 말겠지?” 파우스트가 물었더니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답하던데요?

“아니, 더 많은 수수께끼가 나올 거라네.”
전체 2

  • 2018-03-16 02:44
    나영 후기 읽는게 왜이리 잼나지? 쿄쿄 후기 쓰라고 압박 놓기를 잘했단 생각이 드네ㅋ 카프카는 수수께끼 맞고요~ 그래서 이리 모여 노는거 아니겠슴까ㅋ 포도알 채우기 하다 카프카까지 오게됐으니 뭔들 못하랴! 다른 셈나에서도 나영을 보고싶다는 프로포즈를 남기며 총총ㅎ

  • 2018-03-17 12:55
    더 많은 수수께끼와 만나려면, 자기를 얼마나 내어 놓아야 하는가! 카프카의 문턱이란 자기의 기억, 자기의 감정, 자기의 소유를 하나의 철창처럼 느끼는 자만이 발디딜 수 있는 지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