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숙제방

동화에세이

작성자
현정
작성일
2017-11-26 12:04
조회
114
현정 …..길을 나서다. 삐딱선,탈영토화,도주선.

                                  

나는 왜 어떠한 욕망을 따라 여기 규문에 와 접속하는가? 월,화,수,목요일을 나름 바쁘게 보내고, 유일하게 여유있는 금요일에 집에서 뒹굴뒹굴 쉬지 못하고 여기에 있는가?

‘동화’세미나를 하면서 주인공들이 처한 곤경을 등한시 한채 씩씩하게 집을 떠나 길을 나섬이, 덥석덥석 사람과 사건과 만남이 부러웠고, 그러면서 내 아이들을 생각했고 나랑은 연관 짓지 않았다. 주로 주인공들이 어렸거나 젊었으므로. 그리고 길을 떠나지 못했던 나를 생각했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되면서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이미 많이 길을 떠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제까지 난 사회로부터 받고 또 내가 거기에 첨가하여 온 ‘가족 결핍 story’로 불행해왔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1.사랑받지 못했다. 2.이해받지 못했다. 3.오빠,언니 만큼 못했다. 바쁘게 일하셨던 엄마와 살림을 도와주셨던 외할머니 손에 자라 엄마의 사랑이 결핍되어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소원한 관계로 인해 대인 관계 역시 깊지 못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다. 또 나보다 월등히 크게 느껴졌던 언니, 오빠에 대한 내 자신의 비교로 자신감이 없고 작아졌다. 그러나 나의 생명 에너지는 집과 가족이 아닌 밖으로 향할 때 펼쳐진다. 그래서 기억 속 저 깊이 먼지 앉아있던, 가족 결핍 story’에 갇혀 내가 미쳐 눈길도 안 주었던 나의 ‘길 떠남 story’를 여기 꺼내보려 한다.

 

되돌아보면 막내인 나는 동화속 주인공들처럼 오빠,언니에 비해 엄마와 집을 떠날 기회가 많았다. 최초의 떠남은 외할머니 댁으로이다. 엄마는 초등 교사였다. 어린 셋을 돌보며 버거울 때는 가끔 난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해질 무렵 외할머니댁 대문 앞에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안쓰럽게 외할머니는 회상하셨지만, 아마도 난 거기서 엄마만이 아닌 외할머니, 이모들, 삼촌과 접속하였으리라. 몇 년이 지나서는 외할머니께서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난 6세 때 유치원에 맡겨졌고 7세때는 오히려 집에서 놀았다. 청강생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엄마의 반에서 생활했던 언니, 오빠와는 다른 경험이다. 유치원에서 사귄 동네 친구들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또 길 위에서 많이도 놀았다.

초등 2학년 때 서울로 이사 온 동네는 변두리여서 아직 시골의 정취와 생활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하교 후 책가방을 던져놓고 골목길에서 뒷산에서 논밭에서 껌껌해질 때까지 뛰어 놀았다. 병원은 당연히 혼자 가고,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은 비를 쫄딱 맞고, 먼 거리를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씩씩하게 다녔다.

유아기와 초등기는 비교적 결여에 대한 인식 없이 존재의 능동성 속에서 역량을 많이 발휘한듯하다. 집과는 꽤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중등 생활은 관계와 경제적인 비교에 많은 결핍과 위축이 만들어진다. 보는 것을 그림으로나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나를 화실로 이끌었다. 연필과 물감으로 표현되는 세계는 즐거웠다. 그러나 계속 공부를 잘하고픈 욕망이 잠깐 지망했던 예고를 포기하게 만든다. 고등 이후는 공부만 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불안하고 힘들었다. 참공부를 찾아 데미안 등을 읽고 교회를 찾았다. 역시 입시공부로 돌아왔다.

대학 진학 후 기쁨도 잠시, 더 큰 공부에 대한 부담(창의적 작품 과제)과 풀리지 않는 존재의 불안함으로 우울해져 갔다. 그나마 과선배들, 동기들과 함께 작업하고 놀며 함께한 많은 시간은 그 후 어떻게 재미있게 다양하게 놀 것인가의 기본이 된 듯하다. 4학년을 앞두고 드디어 휴학한다. 난 이대로 졸업작품을 할 수 없다며 전공과 삶을 더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1년은 덧없이 지나갔고 용감하게 떠난 유럽배낭여행은 ‘지금 이곳’이 아닌 딴 곳에 있을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달여의 낯선 길 위에서의 여행은 그야말로 ‘덥석’을 보여주는 삶의 최대 길떠남이었는데, 잊고 있었고 작게 여기고 있었다. 마지막 날 파리의 어느 유스호스텔 방에서 남긴 메모는 인상적이다. - 유럽에도 나랑 똑같은 아니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 그러니 그 많은 사람중의 나, 남과 어떻게든 달라보이려고 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지 않아도 난 남과 다른 나이고 그러한 개성들이 평범한 우리속에 묻혀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나의 가치와 내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대로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10년 여의 사회 생활은 학교 생활의 침체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지금 이대로’의 역량이 발휘된 시기이다. 일도 모임도 바쁘게 즐거웠다.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나 연애도 결혼생활도 즐거웠다. 놀 줄 모르는 남편을 많이 키워주었다. 큰아이 출산후 육아와 직장은 다람쥐 쳇바퀴가 되어 나를 압박했다. 이것은 아니라며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두아이 육아 기간은 길었고 또 다른 암흑기였다. 큰아이 초등 입학과 함께 오전에 드디어 집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영어 공부는 뜻밖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놓는 기회가 되었고, 요가는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해지는데 도움을 받았고 명상을 알게 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삶과 책과 수행을 통해 ‘가족 결핍 story’를 많이 지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남아 있었다. 엄마 때문에 난 불행했다고….그리고 엄마인 난 내 아이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강의를 통해 더 한결 가벼워진다. 난 내 욕망을 따라 많은 길을 나섰고, 접속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즐겨보는 예능프로 ‘알쓸신잡’에서 인상적인 얘기가 나왔다. 식탁에 놓인 냅킨 상자를 보며 우리는 직육면체의 최대 3면만을 볼 수 있다고….난 3면도 아닌 1면을 뚫어져라 크게 왜곡해서보며 난 불행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물론 어린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은 가족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나에게 각인된 것과 또 다른 접속들이 가족과 펼쳐졌으리라. 그리고 다른 보이지 않는 많은 면들에선 지금의 ‘나’로 결과된 여러 사람들, 사건들의 욕망하는 기계들과 접속하였으리라.

마지막으로 의문이 남았다. 나와 동화속 주인공들의 길 떠남이 어떻게 다른지….왜 그들은 덥석덥석 사건과 사람과 만나는데 나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위축되어 있었는지….강의 노트와 몇몇 동화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문제는 ‘결여, 완전하지 않음’에 대한 인식이다. 삶이 그냥 거기 있는거고 삶이 그냥 나를 통해 구현되므로 준비가 필요없었다. 결여나 완전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지금 이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매 국면 주어진 역량에 따라 접속한다. 바리데기와 구렁덩덩 신선비의 막내딸은 마주치는 사건마다 그냥 있는 힘껏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상태는 너무 모르고 준비가 덜 되었다며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거나 다른 곳을 찾아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타인이 아닌 내 욕망에 따라 맘껏 접속하여 그 자체로 좋음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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