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몽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복습시간] 대학 3장까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04-01 11:35
조회
686
康誥曰 克明德

강고에서 말했다. “명을 밝게 할 수 있다.”

康誥周書 克能也

강고는 <주서>이다. 극(克)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태갑에서 말했다. “하늘의 그 밝은 명을 돌아보라.”

太甲商書 顧謂常目在之也 諟猶此也 或曰審也 天之明命 卽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爲德者也 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

태갑은 <상서>이다. 고(顧)는 항상 눈을 그곳에 둠을 이른다. 시(諟)는 ‘그것(此)’이라는 뜻이고, 혹자는 살핀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늘의 밝은 명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하여 내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항상 눈이 거기에 있으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帝典曰 克明峻德

상전에서 말했다. “큰 덕을 밝힐 수 있다.”

帝典堯典 虞書 峻大也

상전은 <요전> <우서>이다. 준(峻)은 크다는 뜻이다.

 

皆自明也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 ○ 右傳之首章 釋明明德 ○ 此通下三章至止於信 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

결국 인용한 글은 모두 스스로 자신의 덕을 밝히는 뜻을 말한 것이다. 오른쪽은 전의 첫장이고, ‘밝은 덕을 밝힘(明明德)’을 해석한 것이다. 이는 아래의 3장 ‘지어신(止於信)’까지 통한다. 옛 판본에는 ‘몰세불망(沒世不忘)’ 아래에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又日新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귀. “진실로 하루 새로워지면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

盤沐浴之盤也 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 苟誠也 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 如沐浴其身以去垢 故 銘其盤 言誠能一日 有以滌其舊染之汚而自新 則當因其已新者 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不可略有間斷也

반(盤)은 목욕통이다. 명(銘)은 그릇에 새겨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이다. 구(苟)는 진실로(誠)라는 뜻이다. 탕은 사람이 마음을 닦아 악을 제거하는 것이 목욕하며 그 몸의 때를 없애는 것과 닮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목욕통에 새겨 진실로 하루 새로워질 수 있으면, 그 오래된 더러움을 닦아내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즉 이미 그 새로워진 것을 토대로 나날이 그것을 새롭게 하고 또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하면서 순간이라도 생략하거나 그만둠이 있어서는 안 된다.

 

康誥曰 作新民

강고에서 말했다. “새로워진 백성을 진작시킨다.”

鼓之舞之之謂作 言振起其自新之民也

고무시키는 것을 일컬어 진작시킨다(作)고 한다.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시에서 말했다. “주나라는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은 새롭다.”

詩大雅文王之篇 言周國雖舊 至於文王 能新其德以及於民 而始受天命也

시는 <대아> 문왕편이다. 주나라가 비록 오래되었으나 문왕에 이르러 그 덕을 새롭게 해서 백성들에게 미칠 수 있게 되어 비로소 천명을 받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是故 君子無所不用其極

그러므로 군자는 그 덕을 쓰지 않음이 없다.

自新新民 皆欲止於至善也 ○ 右傳之二章 釋新民

새로운 백성을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은 모두 지극한 선에 이르고자 함이다. 오른쪽은 전 2장이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을 해석한 것이다.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시에서 말했다. “나라의 직할지 천리는 백성들이 머무는 곳이다.”

詩商頌玄鳥之篇 邦畿王者之都也 止居也 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

시는 <상송> 현오편이다. 방기(邦畿)는 왕이 사는 도읍이다. 지(止)는 사는 것이다. 사물이 각각 머물러야 하는 곳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시에서 말했다. “지저귀는 황조 언덕 모퉁이에 머무는구나.” 공자가 말했다. “머무는 데, 그 머물 바를 아는구나. 사람이고서 새만도 못할쏘냐.”

詩小雅緡蠻之篇 緡蠻鳥聲 丘隅岑蔚之處 子曰以下孔子說詩之辭 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

시는 <소아> 면만편이다. 면만(緡蠻)은 새소리다. 언덕 모퉁이는 수풀이 울창한 곳이다. 자왈(子曰) 이하는 공자가 시의 말을 강설하여 사람이라면 머물러야 할 바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시에서 말했다. “훌륭한 문왕이여 계속해서 밝으면서도 삼가 머무는도다. 군주가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孝)에 머물고,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로움에 머물며 나라 사람들과 사귀면서는 신(信)에 머무는구나.”

詩文王之篇 穆穆深遠之意 於歎美辭 緝繼續也 熙光明也 敬止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 引此而言聖人之止 無非至善 五者乃其目之大者也 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 而又推類以盡其餘 則於天下之事 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

시는 문왕편이다. 목목(穆穆)은 심원하다는 뜻이다. 오(於)는 감탄사다. 집(緝)은 계속이라는 뜻이다. 희(熙)는 빛이 나 밝다는 의미다. 삼가 머문다는 것(敬止)은 머무는 데 있어 삼가지 않음이 없이 편안함을 말한다. 이를 인용하여 성인의 머무름이 지극한 선이 아님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조목의 큰 것이다. 배우는 자는 이것의 정밀하고 미세한 부분의 숨겨진 뜻을 연구하고 또한 미루어 유추하여 그 나머지를 다한다면, 천하의 모든 사물이 머물 바를 알고 의심이 없을 것이다.

 

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시에서 말했다. “저 기수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울창하구나. 문채 나는 군자여, 자른 듯 갈아놓은 듯 쪼아놓은 듯 다듬은 듯하구나.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의젓하니,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가 없구나.” ‘자른 듯 갈아놓은 듯’하다는 것은 배움을 말한다. ‘쪼아놓은 듯 다듬은 듯’하다는 것은 스스로 닦음을 말한다. ‘엄밀하고 굳세다’라는 것은 두려움이다. ‘빛나고 의젓하다’라는 것은 위엄 있는 것이다.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가 없구나.’ 라는 것은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가 없음을 말한다.

詩衛風淇澳之篇 淇水名 澳隈也 猗猗美盛貌 興也 斐文貌切以刀鋸琢以椎鑿 皆裁物使成形質也 磋以鑢鐋 磨以沙石 皆治物使其滑澤也 治骨角者旣切而復磋之 治玉石者旣琢而復磨之 皆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 瑟嚴密之貌 僩武毅之貌 赫喧宣著盛大之貌 諠忘也 道言也 學謂講習討論之事 自修者省察克治之功 恂慓戰懼也 威可畏也 儀可象也 引詩而釋之 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 道學自修 言其所以得之之由 恂慓威儀 言其德容表裏之盛 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

시는 <위풍> 기수편이다. 기(淇)는 물가 이름이다. 욱(澳)은 모퉁이다. 의의(猗猗)는 아름답고 성대한 모양이니 흥(興)이다. 비(斐)는 문채나는 모양이다. 절(切)은 칼이나 톱으로 하는 것이다. 탁(琢)은 끌이나 정으로 하는 것이다. 모두 사물을 가다듬어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차(磋)는 줄로써 하는 것이다. 마(磨)는 사포로 하는 것이다. 모두 사물을 가다듬어 그것을 매끄럽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것은 자르고 또 그것을 가는 것이고 옥석을 다루는 것은 쪼고 그것을 또 다듬는 것이다. 모두 그 다스림에 실마리가 있어 더욱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함을 말한다. 슬(瑟)은 엄밀한 모양이요, 한(僩)은 무사의 굳센 모양이다. 혁(赫)과 훤(喧)은 드러남이 성대한 모양이다. 훤(諠)은 잊는 것이다. 도(道)는 말하는 것이다. 위(威)는 경외할 만한 것이다, 의(儀)는 본받을 만한 것이다. <시경>을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밝은 명을 밝히고자(明明德)' 하는 자는 지극한 선에 머물러야함을 밝힌 것이다. 배움을 말하고 스스로 닦는 것은 이것을 얻는 방법이 연유한 것을 말한 것이다. 두려워하고 위엄 있는 것은 그 능력과 용모의 겉과 속이 성대함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그 실체를 가리켜 탄식하며 찬미한 것이다.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시에서 말했다. “오, 전왕을 잊지 못하겠구나.” 군자는 그 어짊은 어질다 하고 그 친함을 친하다 여기며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겁다 하고 이로움을 이롭다 여긴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가 없어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詩周頌烈文篇 於戲歎辭 前王謂文武也 君子謂其後賢後王 小人謂後民也 此言前王所以新民者 止於至善 能使天下後世 無一物不得其所 所以旣沒世而人思慕之 愈久而不忘也 此兩節咏歎淫泆 其味深長 當熟玩之 ○ 右傳之三章 釋止於至善 ○ 此章內 自引淇澳詩以下 舊本 誤在誠意章下

시는 <주송> 열문편이다. 오희(於戲)는 감탄사다. 전왕은 문왕과 무왕을 일컫는다. 군자는 그 후의 현인과 왕을 말한다. 소인은 후대의 백성들을 말한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전왕이 백성을 새롭게 하여 지극한 선에 이르게 하여 천하와 후대로 하여금 사물 하나라도 그 자리를 갖지 못함이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며 더욱 오랫동안 잊지 못함이다. 이 두 구절은 탄식함이 넘쳐나므로 그 맛이 깊고 오래 남으니 오랫동안 감상함해야 한다. 오른쪽은 3장이며, ‘지극한 선에 머묾(止於至善)’을 해석한 것이다. 이 장 안에서 '기욱(淇澳)' 시를 인용한 것에서부터 이하는 옛 판본에는 잘못되어 '성의장(誠意章)' 아래에 있었다.

 

헉 늦어서 죄송해요 ㅇㅁㅇ 일주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네요ㅠㅠ 분명 몇번 봤다고 생각하는데 글자 하나하나를 다시 보니까 어쩜 이렇게 새로운지ㅠ0ㅠ

다음주는 공포의 보망장이 예정되어 있네요. 또 한글자씩 더듬거리며 읽어보아요~
전체 2

  • 2016-04-01 12:58
    긴 거 쓰느라 고생했음! 근데 뒤에까지는 잘 안읽게 된다는 슬픈 소식ㅠㅠ 꼭... 마저 읽으마!ㅎㅎ
    苟日新 日日新又日新 - 요거... 진실로 매일이 새롭다면 하루를 새롭게 또 하루를 새롭게... 어쨌든 그 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뉘앙스가 약간 못사는 것 같아 아쉬움~.~

  • 2016-04-01 14:30
    다음번엔 쫌 더 친절한 스토리로 풀어주면 안 되겠느냐. 까막눈도 귀동냥 좀 하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