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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탁 서양 2학기 9주차 후기

작성자
연주
작성일
2021-07-29 16:59
조회
106
안녕하세요. 절탁 서양 2학기 9주차 후기입니다.

한 주 쉬었다가 만난다는걸 까먹고 갔다가 '왜이렇게 반갑지' 했습니다. 홍홍.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서양철학시간에도 거리두기 하면서 앉았더니 어색하더랍니다.

9주차에는 '스피노자의 동물우화' 13, 14, 15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다들 13장의 '논쟁이란 왜 일어나는가' 하는 파트에 주목해서 글을 써왔어요. 스피노자에 따르면,  논쟁은 순전히 '오해'에 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사유와 상대방의 사유가 충돌했을 때, 상대방의 사유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어느 사유에도 오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진리의 초안입니다. 1+1=3 이라고 말해도, 그것은 종이가 일으킨 왜곡이거나 사고의 맥락에 따른 진리입니다.

이러한 전제에서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기지요. '모든 말이 진리이고, 사고에 오류가 없다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하는 무수한 헛소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게 우리가 쉽게 오류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봤어요. 누군가 의도를 갖고 모순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 또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까? 불쾌한 일을 당했을 때, 상대방의 맥락을 다 고려하며 이해해야 할까? (그러기 싫을 땐 어떡하지..)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페미니즘 주제까지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여성혐오'라는 주제가 나에게 있어 자유로운 사고를 막게 하는 요소로 작동하여 어떻게 이를 해소해야 할 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모든 사고가 진리의 초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동등하게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유는 개인을 즐겁게 하고,  인간 본성을 더욱 완전하게 해주며 끝내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스피노자의 말대로 '어떠한 사유에도 오류가 없다'는 관점을 이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내 사고를 더 온전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논쟁을 거두고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태도로 '신중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사고에 오류가 있다고 성급하게 이야기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또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오류로 치부하여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로서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깝게 해주는 것이 참된 우정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우정을 맺는 방식이 어떠했나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었습니다.

 

 
전체 2

  • 2021-07-30 12:19
    어떤 사유에도 오류는 없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서로의 사유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사유를 포함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대전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것이나 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손쉽지만, 그 것들이 필연적이다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갖은 힘을 동원해 그것들을 이해하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연적인 그런 본성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끔찍함-필연적임-함께 살아가야함의 문제는 우리를 전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 2021-07-31 21:23
    스피노자는 끊임없이 현명함과 신중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쟁이 벌어질 때, 거기서 ‘누구의 말이 더 진리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어떻게 내 사유의 역량을 강화할 것인가’라는 태도로 접근을 하면 모순과 대립으로부터 진리의 초안들을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