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29일 후기 및 12일 세미나 안내

작성자
현옥
작성일
2017-01-03 08:58
조회
311
12월 29일 후기 및 1월 12일 세미나 공지

<에티카> 5부의 제목은 ‘지성의 능력 혹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입니다. 4부의 제목인 ‘인간의 예속 혹은 감정의 힘에 대하여’와 사뭇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지요. 인간을 예속의 상태에 묶는 것은 감정의 힘이며, 그 감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내재적 원인과 발생의 질서를 적합하게 이해하는 능력(사유의 능력인 지성)이 곧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제목만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마지막 장인 5부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의 목적을 얘기하는데요, 우선 5부에서는 이성이 감정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겠다, 또 정신의 자유 또는 지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얘기하겠다고요. 이를 통해 현명한 사람이 무지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더 유능한지를 알게 될 거라고 장담하지요. 마치 망망한 바다에서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다닐 수밖에 없는 나무조각처럼 인간의 운명을 묘사하던 4부에 비하면 놀라운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희가 더듬어 왔던 1부에서 4부까지는 神에 의해서 인간이 펼쳐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神존재가 증명되고, 그 神의 본질(능력)인 연장속성과 사유속성에 의해 유한양태인 인간의 정신과 신체의 관계 및 작동방식이 설명되고,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펼치는 역량의 정도(코나투스)에 따른 결과의 표현인 감정이 드러나고, 그 감정이 다른 유한양태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예속하는지를 보여주지요. 그렇게 神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거쳐서, 기억하시겠지만 마침내 이성에 의해 합리화된 정서의 역량으로 인간은 한 고비를 넘어갑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동적 감정에 의해 결정되어 행하던 모든 활동을 그러한 감정이 없이 이성에 의한 결정만으로도 행할 수 있다.”(4-59)

이건 神을 이해한 인간의 역량에 대한 확신인 동시에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神이라는 내재적 원인과 나보다 강한 다른 외부적 존재(타동적 원인)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펼쳐지던 우리의 삶을 이제 자기원인이 되어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사유하는 자신의 역량인 지성에 의해서! 이 지성이야말로 神이 우리에게 부여한 내적 본성이 최대한도로 현실화된 상태, 즉 나의 역량으로 구체화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조건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자유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노예가 살아가는 세상과 여전히 동일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리 나보다 센 놈이 널렸고, 우리가 여전히 자연의 통상적 질서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자, 자신을 결정하는 내적 본질로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자는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5부는 이렇게 神을 이해한 자, 神을 통해 자신을 이해한 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도 같은 장이라는 느낌을 저는 받게 되네요!^^ 4부에서 스피노자가 ‘최고로 자신의 본성을 펼친 인간의 전형’을 욕망하라고 했던 얘기 기억하시죠? 바로 그런 인간의 전형이 자유인이며, 그 길을 따라 자유인이 된 어떤 사람-바로 스피노자 같은-이 들려주는 얘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만약 네들러의 텍스트만 읽고, <에티카>본문을 읽지 않으셨다면 한 주 쉬는 중간방학 동안 5부를 차근차근 읽으시면서 자유인이 들려주는 지혜를 만끽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막내 희동쌤처럼요! 지난 주 공통과제에서 우리를 감동시킨 희동쌤의 마지막 멘트를 첨부합니다!^^ (단지 ‘스피노자’라는 이름만 알고 들어와서 끝까지 열심히 따라와준 희동쌤과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가고 있는 성혜쌤 애많이 쓰셨어요!)

* 희동의 에필로그

그 동안 정념을 ‘억제하고 완화시킨다’는 것이 실제로 뭘까가 궁금했다. 나는 일상생활 속 무수한 감정의 변화가 부담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져서 애써 부정하고 무덤덤하게 살려는 노력을 할 때가 있었다. 신체의 변용과 감정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정념의 억제는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결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인식하지 않는다고 작용을 안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로 사건의 원인을 알고 적합한 인식을 하려면 일단 정념들을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지각하는 게 시작일 것이다.

내 몸과 커피에 대한 경험을 예로 들면, 나는 과거에 커피를 하루에 투샷으로 두세잔 마셨다. 커피의 향과 맛이 좋아서 마신다고 생각했지만, 커피가 없으면 큰일 나는 중독의 상태였다. 그러다 커피를 잠깐 동안 안 마시게 됐고, 그 이후 다시 커피가 몸에 들어갔을 때의 변화를 뚜렷이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커피중독에서 벗어났다. 몸이 수축하고 심장이 뛰고 긴장상태에 돌입하는 몸의 상태. 그리고 다음날까지도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전에도 그런 각성작용을 알고 있었지만 세세하게 포착하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커피향이 그리울 때나 비가 와서 몸이 무거울 때 내 몸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1/4잔 정도를 마시기도 하고 배고플 때 커피믹스를 마시기도 하지만, 커피에 의존하지 않는다. 난 오전에 내 몸이 은은하게 기분 좋은 상태일 때가 좋다. 그렇게 되기 위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데 그 중 하나가 커피고, 그래서 그것을 적당히만 즐기거나 이용하려고 한다. 이처럼 외부 물체 하나하나에 대한 자기만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념이 적합한 인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 여러 분들이 일정이 있으셔서 5일 세미나는 쉬기로 했습니다. 12일부터 <헤겔 또는 스피노자> 시작하는데요, 2월 말까지 6회에 나누어 읽겠습니다.(기간이 늘어난 관계로 담주에 세미나비 2만원씩 더 내주시어요!^^)

다음 세미나는 1부와 2부(p.126까지)이고요, 발제는 희동쌤입니다.

간식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짧은 방학 잘 즐기시고, 12일 6시반에 뵙겠습니다. 공통과제는 그대로 낮 12시까지 올려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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