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니나노 일본어 9.5일 후기 및 9.25일 공지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9-09-06 22:59
조회
100
니나노 일본어 9.5일 후기 및 9.25일 공지

니나노 일본어는 지난 시간에 이어 가라타니 고진의 <사카구치 안고론坂口安居論>을 나누어 번역한 5편의 원고 중 <역사가로서의 안고> <역사의 탐정=정신 분석> 두 편을 읽었습니다. 안고의 글과 그것을 해석하는 고진의 시선에 함께 감동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은 문학가가 아닌 역사가 안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고가 본 역사적 시선, 그 논조는 현재도 그렇지만, 당대에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무척 담대하고, 솔직하고 중요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1. 역사가로서의 안고


가라타니 고진은 안고가 전쟁 전에 16세기 일본사에 대해 몇 가지 획기적인 시점을 가져왔다고 포착합니다. 안고는 키리시탄(기독교) 연구과정에 일본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됩니다.  키리스탄을 이용해 일본을 보려고 한 것이죠. 키리스탄은 선교를 위해 일본의 아주 시시한 것까지 분석하고 자료로 모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본사를 연구하고 그 일단으로서 키리시탄을 취급할 뿐 키리시탄 그 자체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이것은 [일본]이라는 것이 자율적인 실체로서 있고 외적인 관계는 2차적으로 있다,라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 생각에 이의를 외쳤던 것이 안고였던 것이다. 16세기 일본을 키리시탄이 기록했던 사료로부터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안고는 [일본]을 밖으로부터, 바꿔 말한다면, 16세기 이후의 [근대 세계 시스템]으로부터 보았던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보기 위해 외부로 시선을 돌려 선교사들이 남겼던 기록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고는 발견했습니다. 그 말은 세계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일본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선교사들이 왔고, 이는 당대의 식민주의적 침략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죠. 일본 역시 16세기 전국시대를 통과하면서 동시에 세계 시장과 국제정치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죠. 일본 역시 대항해 시대라는 세계적  조류를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도 보는데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욕망도 있었지만 부차적인 것이고, 국제적 흐름 안에서 대륙 정벌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이지요.  그 결과가 조선 침략으로 나타난 것이고요.  그럼 19세기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 건설은 어떻게 이해해 볼수 있을까요?
히데요시 뒤에 등장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하자면 히데요시가 일으켰던 전쟁의 [전후처리]를 했다. 국내에선 모든 다이묘의 무장을 금지하고 국제적으로는 조선과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서양과의 교통을 제한했다. 즉 이에야스는 [근대세계 시스템]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도쿠가와의 일본이 어떻든,  그 바깥인 근대 자본주의 세계는 존속하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일본도 조선도 그 가운데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국민국가를 형성했던 일본이 스스로 제국주의 국가로서 조선반도, 중국대륙으로 향했는데 그것이 16세기의 반복이었던 것은 세계사적으로 명백하다.

히데요시 뒤에 등장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은 물론, 근대국가 발생시점에서 쇄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식민지 개척에 나선 것은 세계의 흐름이 제국주의화 되고 있었고, 16세기에 선교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오는 사람들이 내재하고 있던 침략성, 16세기 세계사의 흐름이 다시 터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고의 시선이 당대 획기적이었던 것은 당시 역사학계에서 조선 침략은 대륙 진출을 위해 발판 삼을 작은 나라로 취급하는 일반적 역사관을 비켜나 있었기 때문이죠. 안고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도 세계사의 흐름 안에서 힘관계로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고대 일본사 역시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일본의 토착민, 호족의 형성에 일본해로부터의 루트를 수용했다는 점입니다. 일본 내에서 형성된 호족 세력만이 아니라 일본 북쪽 산민(山民)이나 해민(海民)까지를 포함해,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씨족별 남하가 일본 호족 세력의 주요구성원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는 일본의 호족을 일본 열도와 전혀 관계없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2.역사의 탐정=정신분석

안고의 진면목은 역사 속에서 천황제를 분석하는데 있습니다. 안고는 <속 타락론>에서 일본의 천황제가 후지와라씨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이고, 천황은 일본역사에서 민중지배와 위기 수습용으로 이용당하는 존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논리를 뒷받침할 역사적 근거들을 일본의 고대역사서 고사기와 일본기(기기)를 분석한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안고의 이 글이 가진 독특함을 고진이 다시 분석하는 것이 이 장입니다. 고진은 안고의 기기 분석에 추리소설과 정신분석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신분석과 탐정소설은 19세기에 함께 등장한 분야들입니다. 둘의 공통점은 표면을 믿지 말라는 것이죠. 드러난 것은 왜곡된 현상일 뿐이고, 진실의 열쇠는 은폐되어 있으니 관건은 무엇을 숨기려 했나를 찾는 것이겠죠. 일본 상고사에는 많은 토호세력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천황가와 관련된 히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당시 히다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고 운을 떼지요. 그러던 것이 기기에서는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고사기의 게이코 천황기라고 하는 것은 大確/小確(오오우스노미코토/오우스노미코토) 쌍생아뿐만 아니라 주요한 등장인물이 반드시 2, 분신적인 형제자매가 있는데, 일본 야마토타케루(武尊)가 퇴치했던 쿠마소의 형제(일본 중남부에 살았던 종족, 또는 그 지방의 이름), 오오우스노미코토(大確命)이 사랑했던 딸도 자매였다. 그래서 일본 신화에는 형제, 자매, 이조씩의 설화는 매우 많지만, 특히 그 유형이 심한 것은 진무 천황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역으로 상이한 두 명이 있는 것은 두 명이 합해져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소설 작법으로부터 말해지는 분신의 하나가 진실의 해결을 암시하고 있고, 암시의 역할을 하는 쪽은 단역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일방은 아마도, 암시의 열쇠에서 이해되는 인물 쪽은 표면상의 주역이고, 이것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어서 그 분신이 암시하는 것이 열쇠로 해명하는 것이 진실인 것 같습니다. <안고의 신일본지리> 

상고시대의 역사서에는 쌍생아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나 봅니다. 안고는 이 쌍생아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 인물이 아니라 복합적인 인물의 집합체가 표면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고의 <분석>은 물론 천황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기기는 천황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된 기록이고,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역사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고사기나 일본기는 하나의 책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일본의 고대사의 중요한 기록인 기기가 천황가의 집안史를 기록한 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진은 안고가 일본사 분석을 통해 <일본 정신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역사적 <계략>을 명확히 하는 것에 있다고도 합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천황제가 성립하키고 이용하는 과정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천황제라고 하는 것은 일본 역사를 관통해 하나의 제도라고는 하더라도, 천황의 존엄이라고 하는 것은 항시 이용자의 도구에 불과해 진실로 실제 했던 예는 없다후지와라씨나 장군가에 있어서 무엇을 위해 천황제가 필요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들 자신이 최고의 주권을 붙잡지 않았던가? 이것은 그들이 직접 주권을 쥐는 것보다 천황제의 경우가 낫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천하에서 호령하는 것보다도 천황에 의해 호령되어, 자신이 가장 먼저 복종해 보이는 것으로써 호령이 더 잘 시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이것은 먼 역사의 후지와라씨나 장군가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이 전쟁이 그렇지 아니한가? (<속 타락론> )

견디기 힘든 것을 참고, 참기 힘든 것을 참으며, 짐의 명령에 따라 달라고 천황은 말한다. 그러자 국민은 엎드려 울며 다름 아닌 폐하의 명령이니까, 참기 힘들지만 억지로 참으며 미군에게 지겠노라고 말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리들 국민은 전쟁을 그만 두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는가. 죽창을 들고 흔들며, 미군의 전차에 대항하다 찰흙인형처럼 불쑥불쑥 죽어갈 것이 너무도 싫어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는가. 전쟁이 끝날 것을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 주제에 그걸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책)

안고는 후지와라씨가의 권력의 필요에 의해 천황제가 도입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후지와라씨의 역할을 전쟁이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천황제의 기원을 살피는 장에서, 단 한 문장을 통해 훌쩍 뛰어 이차대전이 한창인 자신의 현장으로 문제를 끌고 옵니다. 전쟁에 어떻게 천황제가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았던 것이죠. 전쟁의 많은 것이 천황의 이름으로 치러졌습니다. 천황의 이름으로 젊은이들이 죽어 갔고, 천황의 이름으로 일본 민중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그리고 이제 <짐의 명령>으로 전쟁은 종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천황의 이름으로 했을 뿐입니다.

고진은 이러한 천황제가 천황과 군부와 민중, 삼각편대의 <밀실 범죄>로 공고히 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치 탐정 소설의 한 대목처럼 말이죠.
천황제라는 것은 천황, 제 권력, 민중이 이리저리 암묵적으로 만나, 무책임이 되도록 한 시스템이다. 이렇게 유효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있는 한, 일본인은 <유년기 탈출>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안고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 내셔럴리즘은 천황을 괄호에 넣어 <일본 민족>의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천황제의 부활> 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고진은 전쟁이 끝나고 전후의 책임이 물어졌을 때, 천황과 국민은 면책되었다고 말합니다. 천황을 이용한 군부세력만이 가해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밀실 범죄>가 성립됩니다. 드러난 게 다가 아니죠. 민중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랐던 만큼, 전쟁초기 더 싸워 영토를 확장하고자 갈망했었죠. 그럼에도 천황의 전쟁종식의 선언에 감동해 보이며 명령에 따르겠노라고 말합니다. 전후의 태도는 전쟁초기의 열망을 감추어 버립니다. 천황역시 미군정과 밀실거래를 합니다. 천황의 생존과, 미군정이 천황제를 활용해 일본 통치를 유용하게 하도록 맞바꿉니다. 이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진은 정치권력의 욕망을 추인한, 그 국민들의 욕망도 보아야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밀실은 어떤 곳일까요? 모두가 피해자라고 누워 있는 곳, 모두를 피해자로 면책시켜 버리는 곳, 가해자는 전쟁밖에 없고 모두를 무책임으로 만들어 버리는 밀실 말입니다. 그 밀실이 천황제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욕망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은폐할 수 있는 곳에 천황제가 있습니다.

고진은 안고가 일본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안고는 피해자라 칭하는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일본인의 그 비겁함, 무책임성을 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진은 안고를, 일본을 <정신 분석>하려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안고는 어떻게 그 시선이 가능했을까요? 언급했듯, 그가 외부인의 시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안에 갇혀서는 자신을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외부인의 시선을 유지할  때 자신을 절대화 하지 않고, 주체로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게 됩니다. 일본의 정신성, 상태를 보기 위해 안고 그 자신은 외부인이 되었고 탐정이고자 했다고, 고진은 평합니다. 옳고 그름을 전제하지 않고 오로지 진단만을 하려고 한 안고였다고 말입니다.

다음 세미나는 2주 뒤인 9.25일에 합니다.

과제는 <부모를 버리는 것에 대하여>와  <남의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  해당 파트를 번역해 오는 것입니다.

첨부파일 참조해 주시고요. 고진의 책을 번역한 후 모두 근육이 좀 붙은 느낌이 드시는가요?

즐겁게 번역해서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추석연휴 건강하게 보내세요.
전체 1

  • 2019-09-09 11:39
    저는 안고의 역사 의식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안고는 역사를 하나의 '외부'로 사유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카리시탄들의 일본 연구를 통해서 안고는, 폐쇄적이고 공상적인 '일본'이라는 상상력에 구멍을 뚫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안고가 보여주는 깊이와 넓이.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