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행인>후기, 수경조

작성자
락쿤
작성일
2016-12-05 10:34
조회
271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나와 반갑고! 놀랍고!! 그리고... 정리하다 보니 고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세미나 내용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가, 결국 하나로 정리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느 순간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지고,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가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행인>은 갑자기 사람들의 ‘내면’에 주목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각각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들은 왜 갑자기 ‘알고 싶어’하는 걸까요?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지 않아서 일까요. 이치로는 아내인 나오의 마음을, 지로는 자신의 형인 이치로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들여다보는 우리들도 이를 궁금해 합니다. 특히 이치로와 지로 사이에 있는 나오의 마음을 알고 싶죠. 나오는 지로를 또 이치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로 또한 형수의 마음이 궁금하겠죠. 그러나 알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끝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냥 그들이 이상하다. 나오의 행동이 제일 이상하다 정도로 끝나게 됩니다. 말이 나와 하는 얘기이지만, 나오의 행동은 정말 의심투성이입니다. 잠시 이치로가 되어 의심해 보고 싶어집니다. 나오와 지로는 폭풍 속 정전 사태에서 하룻밤을 보내죠. 나오는 어둠 속에서 엷은 화장으로 요염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둠 속에서 스르르 소리를 내며 옷을 벗기도 하고요. 나오의 행동은 무엇일까? 나오의 마음은 뭘까? 이런 식으로 나오를 판단하고 싶은거죠.

수경쌤에 따르면 늘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한 저 사람의 행동이 궁금하고, 그것에 따라 스스로 내 본심은 아닌 채로 행동하지만 그게 또 본심이 아닌 것도 아니고. 행동을 하다보면 그 행동에 마음이 물들고 그런 채로 살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고 또 본심과 내면이 있다고 생각하면 점점 알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것을 해결될 기미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알 수 없는 존재여서 그 만큼 더 매혹되고 이끌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사람의 관계는 머리로 계산해서 그 사람의 의중을 따지는 것보다 마음의 이끌림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요.

수경쌤은 마지막 편지 부분이 H의 판본 같다고 했습니다. H시선으로 이치로와 지로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거죠. <행인>은 지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H시선으로 전환됩니다. 그러니까 이치로와 지로가 관찰대상이 되어버리는 거죠. 나오의 안경(나오의 시선)도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흐흐;) 상상만 해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행인>은 중심인물들 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수경쌤에 따르면 그 다른 사람들 각각의 시선이 있고, 그것으로 우리는 이치로는 이렇다 지로는 저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각각의 시선만이 있을 뿐 어느 쪽도 이들을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싶고 또 그것을 알 수 없기에 그들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행인>은 하나의 본질, 진실이란 없고 인물들 각각의 진실이라 믿고 있는 다른 메타적 시선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에 대한 다른 해석, 다른 판본이 있다면(여러개의 시선, 창문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의 해석을 믿고 따라가야 할까요? 작중 화자였던 지로의 해석? H시선? 믿고 따라갈 만한 화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이들을 다 믿고가야만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행인>은 마치 툇마루에 앉아 여러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이 필요할텐데요, 이 부분에서는 자꾸 작아지지만.. 그래도 <마음>은 시원하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 3

  • 2016-12-05 16:33
    나에게 보여지는 것 말고 다른 본심, 내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지금의 저와도 겹쳐보이네요. 알고 싶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보여지는 것이 전부일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본심을 알면 내 행동도 말끔하게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망상! 인간관계는 그렇게 단면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것도 단순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겠죠. 그럼에도 남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욕심을 쉽게 멈출 수가 없네요... 하하

    • 2016-12-05 16:42
      ㅋㅋㅋ 남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규창이의 마음이 궁금하다... (이치로 빙의 글)

  • 2016-12-05 17:35
    이렇게 해서 저의 소세키 베스트가 또 하나 늘었네요. 행인... 멋집니다!! 오싹오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