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2.10 소세키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2-06 01:35
조회
323
돌이켜보면 이치로는 <행인>을 읽기 전부터 계속 회자된 이름이었습니다. 대학교육을 받았고, 결혼했고, 신경쇠약에 걸렸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남자... 내면을 갖게 된 근대인을 보여주기에 이치로는 꽤 안성맞춤인 예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행인>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치로를 계속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노골적이거든요. 아내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울면서 말하다니. 그 장면만 긁어다가 이게 내면을 갖게 된 근대인이라고 박제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예시 같습니다.

그런데 <행인>을 다시 보니 이치로만 딱히 문제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도 다 이상했어요. 이번에 저는 지로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매우 답답했습니다만, 사실 형수, 어머니, 아버지 모두 이게 다 뭔가...싶을 정도로 쟤 마음을 알고 싶으니 네가 좀 알아보라며 서로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표가 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 이치로는 이 전기놀이 같은 질서에 덜 편입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수경조는 내면, 신경쇠약, 기차, 대학교육 등등을 두른 이치로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 바로 근대로 연결 짓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하는 얘기를 잠깐 했습니다. 아무래도 ‘근대’라고 하면 계속 그 말 앞에서 머뭇거리고 부끄러워지는데 막상 ‘근대’라는 말 말고는 따로 내놓을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치로 옆에 포진한 사람들을 보면 근대를 이치로 식(?)으로만 경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요.

사실 <행인>은 이치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화자를 비롯하여 이치로를 신경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미쳐가는 것을 안절부절 못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이요. 이치로의 가족은 이치로의 상태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될 정도로 심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치로를 보지 않을까요? 쟤는 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할까? 형은 왜 알 수 없는 영역을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등등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는 왜 이 가족은 이치로의 저 상태에 좌우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좀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넘길 수 없는 걸까. 지로는 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서술하면서도 이치로의 상태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을까. 이것도 이치로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쟤 마음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에 대한 형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는 지로. 여기서부터는 갑자기 이치로와 거리를 두며 관찰하는 화자는 간데없고 또 남의 마음을 모르는 1人이 추가됩니다. 이 빙글빙글 도는 마음의 굴레는 이치로를 여행지로 치워버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이미 내면이라는 아주 복잡한 마음이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 버렸으니까요.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저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의심과, 그 안쪽을 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계속해서 지로를 따라다니겠죠.

이번에는 <마음> 읽습니다.

간식은 락쿤쌤, 수경언니.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2

  • 2016-12-06 14:27
    마음... 어린 시절 다이제스트로 봐버리는 바람에 소세키를 아무 것도 아닌 작가로 간주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작품>.< 이제야 제대로 <마음>을 만나겠군아!

  • 2016-12-06 23:49
    <마음>에는 어떤 예민한 인물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ㅋㅋ 이번에는 어떤 발작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