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행인> 후기-란다조

작성자
란다
작성일
2016-12-06 01:59
조회
388
소세키는 '행인'이라는 제목 속에 어떤 의미를 넣어뒀을까? 한자 그대로 본다면, '길을 가는 사람' 쯤의 의미일텐데, 실제 <행인> 속 인물 중에 길을 가는 자는 있는가? 있다면 누굴까? 지로? 아니면, 이치로? 인생과 근대에 거대한 모순과 불안을 안고 사는 이치로를 주인공으로 치자면, 이치로가 행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치로가 길을 가는 모습은 희한하다. 그는 부인인 오나오의 속마음과 진실을 알고자 한발짝 나아가지만, 그녀를 향한 다리를 찾을 수 없다. 그렇게 그가 다가갈수록 그녀(그가 원하는 진실)는 멀어진다. 아니, 그는 길을 가지만 길을 가지 않고 있다. 타인을 향해 난 길, 세상을 향해 난 길은 갈수록 멀어지고 막다른 길이다.

그런데 실제 이치로의 마음이 걸은 길은 한 걸음도 진척되지 않았지만, 이치로 머리가 걸은 길은 저 멀리까지 내빼고 있다. 가도 너무 갔다. 마음과 머리 간에 간극이 심하게 일어난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목적이 되지 못할만큼 괴로운 건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어느 것 하나에 마음을 진득하니 붙이고 집중할 수 없다. 가령 함께 여행을 갔던 H가 지로에게 보내온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형님은 바둑을 두는 건 물론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뭔가 하지 않고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모순이 이미 형님에겐 고통이었습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될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도 견딜 수 없는 이치로는 바둑판 앞에 앉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바둑판 앞에 앉았으니, 바둑에 집중할 수 없다. 집중되지 않으니, 바둑두는 자신에게 그 시간에 충실할 수 없다. 괴로움이 가중될 뿐이다. 다시, 그렇게 하기 싫었으면 안 하면 될 것을, 이치로는 왜 했던가. 이치로는 그 이유를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저 불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겁니다. 형님은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난다고 합니다. 일어나면 그저 일어나 있을 수 없어 걷는다고 말합니다. 걸으면, 그저 걷고만 있을 수 없으니 달린다고 말합니다. 이미 달려나간 이상, 어디서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치로는 일어나고 걷고 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도 무섭지만, 그렇게 뛰어서 도달할 그 극단도 두려울 지경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가장 무서운 것은, 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하면 하는 과정이 그리고 한 이후의 결과가 무서운데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일 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주 빠른 속도로 가고 있는 배를 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서운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의미에서 이치로는 '가는 자'일지도 모른다.

<춘분>, <행인>, <마음>은 소세키 후기 삼부작이다. 이렇게 보면, <행인>은 <춘분>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이치로를 <문>의 소스케를 잇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이로 보자면, 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나 허락을 얻지 못해 문 밖에서 기다리도록 운명지어진 소스케처럼, 생각(머리)의 힘으로 이미 강을 건넌 이치로는 강 저편의 마음과 머리가 일치하는 삶을 유토피아 보듯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미 강을 건넜기에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향엄선사처럼 책을 불태워버려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미 책의 힘으로 사색의 힘으로 지성의 힘으로 자신을 구축한 이치로다. 그것을 버릴 수 없다. 그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강가에서 배회하고 방황하는 이치로?! 아마도 그에게서 배회하는 것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자면, 이치로의 불안은 그 혼자만의 과민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라고 말했다. 앞서 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은, 우리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가령 인력거, 마차, 기차,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앞으로는 우주선까지, 과학은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다. 그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다. 불안한데도, 계속 뺑뺑이 돌리듯 멈출 줄 모르고 달리게 만든다. 그게 근대다. 자본주의다. 소스케가 주중에는 출근하기 위해서 탔던 전차처럼, 주말에는 휴식을 위해 상점거리를 (아이)쇼핑하고 돌아다녀야 했던 것처럼, 시간은 물론이고 돈까지도 여유를 주지 않는 일상의 속도에, 머리도 영민하고 감성도 풍부한 '학자' 이치로는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다. 머리도 좋지 않고 감성도 풍부하지 않은, 둔한 우리는 이게 현실이네 라면서 그저 살아가는데 비해서 말이다.  

*이번주, 우리조는 공통과제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후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관심이 갔던 부분을 중심으로 써서 올리기로 했고, 그 중간중간에 토론하면서 논의됐던 것이 반영될 것입니다. 아, 이번주는 모두들 다 써오겠죠?! 써옵시다. 그럼, 토욜에 봐요.
전체 3

  • 2016-12-06 14:25
    ㅋㅋㅋㅋ 이제 주루룩 연달아 후기들이 올라오는 건가요오

  • 2016-12-06 23:54
    오..... <행인>이라는 제목과 연결지어서 이토록 매끄러운 후기를 쓰시다니..! 글이 나왔다면 매우 재밌을 것 같았는데 아쉽네요~~

  • 2016-12-07 07:49
    ㅋㅋㅋㅋㅋ벌금이 주르륵 쌓였던 날...다른 란다조원도 빨리 후기 올려주세요 ㅇ0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