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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이방인과 폭력

작성자
보영
작성일
2017-11-02 22:57
조회
18
폭력은 이어진다

소설 <<이방인>>은 되풀이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흔히 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힘을 써서 신체에 가하는 상해를 떠올린다. <<이방인>>1부에서는 그러한 신체 폭력이 주 무대에 등장한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 있다. 바로 정신에 가하는 폭력이다. <<이방인>>2부부터는 신체적으로는 존중받지만 무차별한 비 신체적인 폭력에 노출된 뫼르소가 나온다. 그런데 신체적이든 비신체적이든, 이 두 폭력은 모두 확산된다. 이것이 폭력이 지닌 파괴적인 힘이다.

<<이방인>>1부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셀레마노 영감은 병에 걸린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개를 마구 때린다. 레몽은 정부를 때리고, 주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건을 조성하려고도 한다. 그런 레몽을 순경이 때린다. 뫼르소 일행은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때리고 뫼르소는 심지어 그 중 한 명을 죽인다. 그런데 이들이 행사하는 폭력에는 내 쪽의 힘이 우월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인 영감은 병든 개보다 힘이 세고, 레몽은 정부보다 힘이 세므로 그녀는 레몽에게 반격하지 못하고, 순경은 제도와 법이라는 권위를 함께 지녔기에 레몽은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뫼르소가 든 총은 아랍인이 들고 있던 칼보다 파괴력이 강한 무기이다. 이처럼 힘의 우월을 전제한 신체적 폭력은 공무원이든 하층민이든, 젊은이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이 거의 모든 이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폭력이 <<이방인>>1부에 드러나는 폭력의 특성이다.

그런가하면 <<이방인>>2부부터는 신체적 상해가 보이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개인을 내리누르는 폭력이 나타난다. 이 폭력은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발생한다. 뫼르소가 겪는 재판을 통해서 이 폭력을 조금씩 포착할 수 있다. 소설에서 뫼르소가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사형선고를 받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죽여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 이외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는 비난을 받는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은 기대 밖의 값을 보인자에게 가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곧 다른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결되는 폭력이다.

뫼르소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대한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어머니의 나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어머니가 죽었을 때 감정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죽음에는 슬픔으로 대답해야하고, 부모님에 대해서는 사적인 정보를 줄줄이 외고 있어야 한다는 등 모범 행동 양식이 정해진 세상은 그 양식을 따르지 않는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그는 파렴치한으로 몰린다. 또한 사회는 범죄자가 뚜렷한 이유에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 예상하고, 범죄 후에는 자신의 범행을 뉘우칠 것을 기대한다. 아랍인을 쏜 이유로 태양이나 우연을 말하는 뫼르소의 태도는 답안지에 없고 그렇기에 그의 논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판사나 검사는 어떻게든 그의 행동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섭하려 든다. 그래서 그들은 원한관계이자 계획범죄라는 이유를 찾아낸다. 범죄 후에도 그가 자신의 범죄에 대한 후회를 보이지 않자, 판사와 부속 사제는 그를 어떻게든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로 이끌려고 하는데, 뫼르소는 이에 끝까지 저항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사형이다. 세상은 답을 정해두었고, 사람의 행동은 그 답안에 맞춰져야하고, 답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자에게는 심판과 처벌이 정해진다.

이 폭력은 '나'와 '너'의 구분, 그리고 '나'의 우월함과 '너'의 무지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폭력과 유사하다. 다만 신체적 폭력은 힘의 우월감을 근거로 삼는다면 정신적 폭력은 판단의 우월감을 이유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판사는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어린애처럼 되어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한 자신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 뫼르소를 그는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자신의 신념에 동조할 것을 강요한다. 부속 사제 역시 뫼르소가 눈이 멀어서 자신의 선의를 모르는 것이라며 그에게 믿음을 강요한다.

법과 도덕, 혹은 관습이라는 이름을 쓴 이 폭력은 곧 지금 합의된 우리의 결론이 정의라는 확신,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꽉 닫힌 논리에서 비롯되는 폭력이다. 다양함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끼워 맞추려는 힘이 곧 이 억압의 실체이다. 뫼르소가 감옥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신체에 가해지는 제약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정신적인 폭력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오히려 기뻐한다. 정신적인 폭력에서 벗어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존재를 억압한다. 그것이 신체적인 폭력이든, 정신적인 폭력이든 마찬가지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고정된 위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때 피해자 입장에 있던 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신체 폭력의 목격자였던 뫼르소는 후에 스스로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아랍인을 쏘아 죽인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정신 폭력의 피해자로 위치가 바뀐다. 또한 폭력은 반복된다. 확신에 찬 태도가 불러오는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던 뫼르소는 마지막 순간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사제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뫼르소가 휘두르는 폭력은 특히 그가 당한 억압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다. 다만 후에 뫼르소는 폭력을 당하는 입장에서 가하는 입장으로 위치를 바꾸었을 뿐이다. 사법제도라는 권위가 뫼르소를 침묵하게 억눌렀다면, 뫼르소는 사제의 말을 막아버린다. 사제와 판사 둘 다 종교를 가지고 뫼르소에게 훈계를 하지만, 뫼르소는 판사에게는 하지 못했던 일을 사제에게 행한다. 그는 비교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제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낸다. 그는 사제를 비난하며 그는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으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133) 이라고 말한다.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고, 약한 자를 골라 그보다 자신을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올려놓는 뫼르소의 태도는 그래서 또 다른 폭력이다. 폭력은 이렇게 전염되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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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3 16:44
    폭력론! 좋습니다. 다만, 사제는 감옥 안에서 뫼르소보다 결코 약하고 힘없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신의 대리인, 법의 최종 원인을 대변하기 위해 뫼르소 앞에 섰지요. 그럼 뫼르소가 저지르는 폭력은 다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