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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후기 및 27일 에세이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4-22 20:16
조회
172
드디어 삼국지 9, 10권을 다 읽었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10권은 어디로 갔을까요....... 각자 알아서 읽고 에세이에 녹여봅시다.

 

이번 시간에는 에세이와 관련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유주쌤의 에세이를 얘기했는데, 유주쌤은 사마의에 대해서 쓰기로 했습니다. 유주쌤이 사마의를 주목한 이유는 그가 천하에 둘도 없을 기재인 제갈량과 끝까지 맞섰기 때문입니다. 사마의는 싸우는 족족 제갈량에게 패배하지만 삼국지 후반부에서 사람들이 말하길, 제갈량은 사마의를 이길 수 없었다고 하죠. 사마의는 제갈량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제갈량도 사마의에게 막혀서 위나라 정벌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삼국지 후반부는 이 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는데, 혜원누나는 최고의 책사라 할 수 있는 이 둘이 펼치는 대결을 바둑에 비유했습니다.

언젠가는 사마의와 제갈량이 평지에서 진법으로 대결을 벌입니다. 진법대결은 무(武)가 아닌 전술로 싸우는 것입니다. 혜원누나는 이 장면을 통해서 중국인들이 전쟁을 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 단면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전략에 따라서 승패가 거의 결정됩니다. 따라서 그들의 전쟁은 ‘무’보다는 전술이 강조되는 것이죠.(여포나 항우처럼 무력이 지나치게 뛰어난 인물들은 이런 시대적 특징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사마의와 제갈량은 단연 최고의 지략가입니다. 그들은 마치 바둑을 두듯 전쟁을 합니다. 제갈량은 끊임없이 공세를 펼치고, 사마의는 그 공세를 전부 막아냅니다. 제갈량이 돌아갈 때쯤 사마의는 그 빈틈을 노려 추격하지만 번번이 혼쭐이 나고 맙니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죽고 철수를 할 때도, 제갈량은 죽어서도 사마의를 겁에 질리게 합니다. 혜원누나는 이런 제갈량의 모습을 두고 ‘바둑판을 떠나고서도 바둑을 두었다’고 표현했습니다.(멋지죠?) 하지만 끝까지 바둑판에 앉아있는 사람은 사마의였기 때문에 이 대결의 승자를 누구로 볼지는 의견이 분분할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제갈량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되지만, 사마의를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유주쌤은 그것을 ‘주제 파악’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마의는 누구보다 자기의 주제를 알았기 때문에 매순간마다 신중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갈량에게 끝까지 맞설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신중함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스로 의심을 키워서 공명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삼국지를 재밌게 읽는 방식을 여기서 알 수 있는데, 바로 인물들의 장점이 곧 그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 인물의 장점이 빛나기도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그 장점이 그 인물의 발목을 잡는 단점이 되기도 하죠. 이런저런 장면에서 유주쌤이 사마의를 어떻게 정리해오실지 기대됩니다. +_+

그 다음 저는 에세이 주제는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주제였던 천명(天命)을 공통과제로 써왔습니다. 8권부터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계속 깨지는데, 그것은 제갈량이 죽기 전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갈량이 모든 전투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왜 천하를 통일할 수 없었던 걸까요? 제갈량은 사마의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무산되자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완성시키는 것은 하늘이구나!”라고 탄식합니다. 그는 ‘천명’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수 없었던 걸까요? ‘천명’은 뭘까요?

동양에서는 ‘천명’을 얻는다고 얘기할 때의 ‘천명’은 명분 같은 것으로 얘기됩니다. 그런데 제가 삼국지를 읽으면서 느낀 ‘천명’은 우발성 같은 것이었습니다. 강대한 조조를 적벽대전이라는 하나의 전투로 패망하게 만든 것도 ‘천명’이고, 위나라 정벌을 눈앞에 둘 때마다 그것을 무산시킨 것도 ‘천명’입니다. 여기서의 ‘천명’은 역사는 인간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혜원누나는 명분으로서 얘기되는 ‘천명’을 이해할 때도 그것은 상대방에 무도함을 문제 삼아서 일어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명’을 또 다르게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고대 중국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건이 자기가 애쓰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그것을 두고 안타까워하지만 동시에 ‘천명’이라고 얘기하면서 받아들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인 ‘천명’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에세이에 녹여보겠습니다. ㅎㅎ;;

‘천명’과 별개로 저는 에세이 주제로 ‘여포의 솔직함’을 정했습니다. 여포를 볼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은 그에게는 어떤 야망도, 도덕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재물에 따라 정원을 죽이고, 여자를 위해 동탁을 죽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재물과 여자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삼국지에서 욕망이 없는 인물은 없습니다. 굴러들어온 서주와 형주를 거절할 만큼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한 유비의 모습은 욕망이 없음이 아니라 서주나 형주 이상의 거대한 욕망이 잠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여포는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좇습니다. 재물이 보이면 재물을 좇고, 여자가 보이면 여자를 좇고, 황제와 사돈이라는 관계가 보이면 그것을 좇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욕망하는 듯했지만 보이지 않으면 욕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천하를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욕망 같은 것은 그에게 없습니다. 주위에서 기회라고 부추길 때만 군사를 일으킬 뿐이었죠. 여포는 그 시대에 있는 인물들 중 하나 가장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야심이나 어떤 계획도 없이 눈앞에 이익을 좇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솔직하게 욕망을 좇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는데, 이때 욕망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봐야겠습니다.

혜원누나는 에세이 주제로 ‘동탁을 통해 보는 영웅성’을 정했습니다.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나오는데 그때 그들을 영웅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은 뭐가 될 수 있을까요? 혜원누나는 그 기준을 ‘자기를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갈량이 아무리 북벌을 시도해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그것을 ‘천명’이라고 하면서 받아들였듯이, 이 시대 영웅들은 기본적으로 일개 인간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 한계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천하를 도모하고자 하고 역사에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물을 두고 영웅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동탁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동탁을 기억하기로는 천하에 둘도 없을 탐관오리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는 헌제를 등에 업고 잠시나마 천하를 호령했습니다. 혜원누나는 그가 비록 포악하지만 강한 위세를 떨친 모습은 그가 영웅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동탁은 서량태수로 있을 때만 해도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는 이상적인 상관이며 강족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왜 포악한 정치를 일삼는 인물이 된 걸까요? 혜원누나는 이런 동탁의 극단적인 모습은 그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의 지속적인 힘의 발산이 각각의 조건들을 만나면서 다르게 표현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혜원누나는 이런 동탁을 통해서 영웅을 볼 때 선악과 미추의 기준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든 한정된 시공간에서 자기만의 결을 낸 것인지를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은남쌤은 요즘 바쁘시지만 그래도 에세이를 쓰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제는 조조였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의 리더쉽이었던 것 같네요. 정신없이 10권이 벌써 지나가고 에세이가 다가왔습니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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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3 18:32
    정리를 하니까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이제야 보이는거 같네 0ㅁ0
    벌써 삼국지를 더 읽었습니다ㅠㅠ 언제 다 읽나 샆었는데 금세 10주가 지나가버렸네요. 그동안 읽은 것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의 인물론을 재미나게 써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