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본색

5월 28일 후기 및 6월 4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01 14:36
조회
164
안녕하세요. 서사본색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바뀐 것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공지사항에는 오후 1시에 세미나를 시작한다고 돼있는데, 일요일 일정을 고려해서 1시 30분으로 옮겼습니다. 이 점 유의해서 오시면 되겠습니다~ ^^

이번에는 마스타니 후미오가 쓴 <불교개론>을 읽으면서 불교에 대해 약간의 느낌을 맛봤습니다. 이 책은 일단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밌었습니다. 지금이야 불교가 하나의 종교로 자리 잡았지만 그 시작은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구도자 집단이었습니다. 가끔 불교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 그 성격이 기독교와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자기 삶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불교에서는 괴로움에 허덕이는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뿐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감동적인 구절을 몇 개 읽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붓다가 자신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말하는 구절이었습니다. 붓다는 죽기 직전까지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평소처럼 자신이 아니라 법을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카리여, 이 나의 늙은 몸을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너는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법을 보는 이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이는 법을 본다고.

붓다는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일 뿐 그들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붓다는 자신의 제자들을 부를 때 ‘벗이여’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가 제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은 자로서 간혹 제자들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말 약간일 뿐이지 문제 자체를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즉 구도의 길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신뿐인 것입니다. 붓다가 조금의 권위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은 ‘고타마’라는 인격체에게 기대는 순간 제자들은 자기 삶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와 법에 귀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붓다는 좋은 벗을 가지고 좋은 둥지 속에 있다는 것이 도의 전부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떠나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동시에 좋은 타인과 관계하는 것이 깨달음의 전부라고 얘기합니다.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런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붓다가 얘기하는 깨달음은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유는 자기 삶에서 괴로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 삶과 분리된 것으로 보고 깨달음을 목적으로 여기게 되면 이것은 원인과 목적이 전도된 것이죠. 그러므로 깨달음의 과정은, 내가 괴롭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근본적인 원인, 살아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타자와의 만남을 괴롭지 않은 방식으로 구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이란 삶에서 모든 괴로움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내고 함께 제거할 수 있는 벗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완수쌤의 공통과제를 참고하자면, 어쩌면 <서유기>에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모습보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과정을 주목한 이유는 인간의 욕망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그 과정이 깨달음의 전부라고 말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읽지 않아서 자신감은 없지만요. ㅎㅎ;;

다음 시간에는 <서유기> 1권을 읽고 각자가 느낀 재밌는 점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점 등등을 부담 없이 공통과제로 써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혜원누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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