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1월 25일 카프카 세미나 후기

작성자
한승희
작성일
2018-01-28 21:54
조회
123
이번 주 중심 작품은 장편 『실종자』였습니다.

카프카는 언어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다고 해요. 어떤 말도 매끄럽지 않게 쓴 카프카. 그래서 잘 읽히지 않고, 독자는 언어의 간극에 빠져 고통 받습니다. ^^; 매우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겪는 책이라고 하니 남은 기간 끝까지 겪어야겠지요...^^

*** 키워드: 공간

『실종자』는 카프카의 공간론에 있어서는 초기작이라고 합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 형체가 뚜렷하고, 지명이 분명한 공간들이 나타납니다. 미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등 국가명도 많이 나오지요. 이러한 고유명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공간들을 계속해서 이동하는 주인공 카알을 보며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카프카는 분명한 고유명을 가진 ‘위치’로부터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카알은 그런 미션을 부여받은 것일까?

각 장의 제목에도 공간이 제시됩니다. ‘뉴욕 교외의 별장’, ‘람제스로 가는 길’, ‘옥시덴탈 호텔에서’ 이런 식으로요. 카알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캐릭터가 바뀌고, 국적과 이름을 바꿉니다. 이미 정해진 자기 자신을 데리고, 이미 있는 공간을 확인하며 다니는 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카알의 실종 여행이지요. ^^

작품의 시작에서 카알은 하녀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쫓겨난 이민 소년입니다. 뉴욕 항구까지 타고 온 배에서 우연히 외삼촌을 만나면서 미국 상원 의원의 조카가 되어 높은 건물로 이동해 상류층의 삶을 삽니다. 그러다 어느 하루, 뉴욕 교외의 별장에 외출했다는 이유로 외삼촌에게 다시 쫓겨나고, 일자리를 구하러 무작정 길을 걷는 위기의 청소년이 되었다가, 옥시덴탈 호텔에서 엘리보이터 보이로 취직하면서 성실한 외국인 노동자가 됩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성실히 일해서 저축한 돈으로 못다한 공부를 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살았다… 이렇게 전개될 리가 없지요. ^^ 아주 잠깐, ‘2분’ 동안 자신의 위치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카알은 또다시 쫓겨납니다. 신분증명서를 잃어버리면서 그는 이름도 국적도 증명할 수 없는, 도주해야 하는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잠깐 “뛰어다니는 빠른 속도의 자유”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카프카에게 끝없이 앞으로만 펼쳐지는 자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붙잡힙니다. 경찰이 아닌, 친구(?) 들라마르쉬에게. 카알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여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이 됩니다. 하인이라니, 그렇게는 살기 싫다고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미완의 결말에서 주경야독하는 대학생과의 만남 이후 카알은 브루넬다의 집에서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는지 충실한 하인의 일상을 살아봅니다.

끊임없이 떠나는 카알을 통해 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다가, 막판에는 또 무작정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보게 하고… ㅎㅎ 하여튼 쉽지 않아요.

이어지는 단편들에서 카알은 갑자기 오클라하마의 대형 극장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봅니다. 이곳에서 그는 또 자신을 바꿉니다. 스스로를 “니그로, 유럽 실업학교 학생”이라는 참 불분명한 이름으로 위치 짓습니다. ‘카알 로스만’이라는 고유명사가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보통명사로 이동해가는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익명으로 가는 『성』의 K와 다른 지점입니다. 카알은 밀려나고 쫓겨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힘으로 달려 나가려 하다가, 사회적 지반에서 실종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어떻게 된다는거야? 하고 생각하게 돼요. 카프카를 읽는다는 건 그냥 이렇게, 카프카의 글과 내 생각의 거리 안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일까요? ^^ 막막하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합니다.

작품 속의 배,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도 이미 알고 있던 공간의 이미지와 다르게 연출됩니다. “골목”같은 장면으로 연출되는 것이지요. 선민 선생님의 골목에 대한 설명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카알은 배에서도, 초대받은 별장에서도 한없이 깊어지는 미로 같은 공간에서 길을 잃습니다. “카알은 자신이 계속 똑같은 복도를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솔 출판사 p.78) 카알은 이 곳에서 제자리에 무한히 갇히는 경험을 하는데요, 선민샘은 아무리 넓은 곳에 있어도 제자리에 있다면 갇힌 게 아닐까 하고 물으셨어요. 좁은 골목길에서 막다른 길을 만나도, 한 걸음만 돌아 숨을 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아주 큰 경험을 겪는 것이지만, 아무리 넓은 곳에 있어도 제자리에서 멈춰있다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지요. 공간이 어디이든, 내가 돌지 않으면 벽이라는 말이 마음 속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카프카의 골목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운동을 만드는, 그렇게만 펼쳐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제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죄(?)라는 막힌 골목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이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방식의 말, 새로운 언어로 고개 돌리기…라고 카프카가 말하고 있는 건가요? ^^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흠, 그런 시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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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9 15:09
    오 정말요. 아무리 넓어도 내가 멈춰 있으면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지만 벽이라고 생각했던 위 아래 사방을 기어다닌다면 그 모든 곳이 길이 된다는거! 맘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었어요. 고렇게 카프카의 미로 안에서 사방을 길로 만들어보는 시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