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추수 1, 2 (外編)

작성자
다음엇지
작성일
2019-01-21 00:13
조회
142
井鼃로서의 河伯과 知道의 경지의 北海若의 대화를 통해서 莊子 철학 전체를 설명할 수도 있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삼국유사에 西海若으로도 나오는 北海若의 이름 '若'은 그래서 이름에 의도를 부여하는 莊子의 특성 상 자연을 따르는 '順'으로서의 '若'일 것입니다. 逍遙遊와 齊物論의 뜬금없는 난해한 內編의 구절들이 世俗的인 대화 속에서 해결되기도 합니다.



秋水時至,百川灌河,涇流之大,兩涘渚崖之間,不辯牛馬。於是焉河伯欣然自喜,以天下之美為盡在己。順流而東行,至於北海,東面而視,不見水端,於是焉河伯始旋其面目,望洋向若而歎,曰:「野語有之曰『聞道百,以為莫己若』者,我之謂也。且夫我嘗聞少仲尼之聞而輕伯夷之義者,始吾弗信,今我睹子之難窮也,吾非至於子之門則殆矣,吾長見笑於大方之家。」
가을 물이 때가 되어 이르게 되면, 온갖 지류의 물이 황하로 쏟아져 들어와, 넘실대는 물결의 광대함이, 양쪽 언덕 물가 사이에서, 소와 말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때가 되면 하백은 스스로 기뻐하면서,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다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했다. 물길을 따라서 동쪽으로 흘러가, 북해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니,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백이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돌려 (두리번거리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北海의 神인) 若을 보면서 탄식하며 말했다: "세상에서 하는 말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를 좀 듣고는, 나와 같은 자가 없다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니 내가 그런 사람이군요. 또, 내가 일찍이 중니의 식견이 별볼일 없고, 백이의 의로움이 같잖다는 평판을, 이전에는 내 믿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그대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보게 되니, 내가 그대의 세계(영역)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지요. 내가 오래도록 大方家들에게 비웃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 望洋: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 聞道百: 어느 정도 많이 들었지만 실지로는 많지 않다. 도에 대해 조금 안다
· 門: 영역, 세계
· 大方之家: 大道之家, 큰 도를 지닌 사람. 보통 뛰어나고 스케일이 큰 사람을 지칭

北海若曰:「井鼃不可以語於海者,拘於虛也;夏蟲不可以語於冰者,篤於時也;曲士不可以語於道者,束於教也。今爾出於崖涘,觀於大海,乃知爾醜,爾將可與語大理矣。天下之水,莫大於海,萬川歸之,不知何時止而不盈;尾閭泄之,不知何時已而不虛;春秋不變,水旱不知。此其過江河之流,不可為量數。而吾未嘗以此自多者,自以比形於天地而受氣於陰陽,吾在天地之間,猶小石小木之在大山也,方存乎見少,又奚以自多!計四海之在天地之間也,不似礨空之在大澤乎?計中國之在海內,不似稊米之在大倉乎?號物之數謂之萬,人處一焉;人卒九州,穀食之所生,舟車之所通,人處一焉。此其比萬物也,不似豪末之在於馬體乎?五帝之所連,三王之所爭,仁人之所憂,任士之所勞,盡此矣。伯夷辭之以為名,仲尼語之以為博,此其自多也,不似爾向之自多於水乎?」
북해악이 말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머무는 곳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오 ;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머물러 있는 시간대에 매여 있기 때문이며 ; 왜곡된 지식으로 가득 찬 편협한 지식인에게 대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대가 황하의 물줄기를 벗어나서 큰 바다를 보고, 이내 그대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와는 장차 같이 대방가의 이치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 천하의 물은 바다보다 넓은 것이 없소, 온갖 강물이 모두 바다로 오는데, 언제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넘치지도 않습니다 ; 미려로 그 물이 빠져나가지만, 언제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고갈되지 아니하며 ; 봄과 가을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홍수와 가뭄도 알지 못합니다. 이 바다는 강하의 흐름의 (차원을 뛰어 넘은) 다음 단계로, 양으로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물가 기슭의 물이 찬 높이로 알 수 있는 물이 불고 줄고 하는 양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찍이 내가 이 거대한 물로써 자랑해 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내 형체를 천지 사이에 기탁하고 음양으로부터 기를 받아, 내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작은 돌이나 나무 하나가 큰 산에 있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미미한 것으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인, 물이 많다고 스스로 자랑할 수 있겠소! 사해가 이 천지 사이에 있는 것도, 개미집이 큰 늪지대변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하겠습니까? 중국이 천하에 있는 것은, 쌀 한톨이 어마어마한 창고에 있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만물을 하나하나 세어 '萬' 이라 일컫지만, 사람은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고 ; 사람들이 구주에 모여 사는데, 곡식이 자라고, 배와 수레가 오고 가는데, 사람들은 그 중 하나이다. 구주에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 봤자 만물에 견준다면, 터럭 하나가 말 몸뚱이에 있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이제 인간의 역사를 보자) 오제가 서로 왕위를 물려 준것과, 삼왕이 서로 다툰 것과, 어진 사람이 근심하는 바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힘쓰는 것은, 모든 이런 꼴입니다. 백이가 사양해서 명성을 이루었고, 중니가 이를 드러내서 (역사에 대해 말해서) 해박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잘난 체 한 것으로, 좀 전에 그대가 물 중에서 내가 제일 대단하다고 했던 것과 같지 않겠소?"
· 北海: 萊州也 (라이저우, 산둥)
· 井鼃: 井中之蛙
· 虛: 處해 있는 곳이 井中이므로 虛로 썼다
· 篤於時: 固於時, 때에 고정되어 있다
· 尾閭: 泄海水之所也在碧海之東.
· 不盈不虛: 川海之別 (小知 vs. 大知 or 小行 vs. 大行)
· 礨空: 개미집
· 中國: 전국책이나 춘추에 이 용어가 나올 때는 제후나 군주가 다스리는 도성의 의미. 한나라 초반에 씌여진 글로 본다면 '天下', 즉 자기가 다스리는 영토로 봐도 무방하겠다
· 卒: 衆也
· 豪: 毫也
· 盡此矣: 不出乎一域

※ 중국은 보통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하며 강에 제사를 지내지 바다를 숭배하지 않는데, 秋水는 바다의 신이 등장하여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특한 문헌이다.

河伯曰:「然則吾大天地而小毫末可乎?」
하백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천지를 크다고 여기고 털 끄트머리를 작게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작고 큰 것은 모두 분명한 것이 아닙니까? 그럼 구분하여 큰 것을 추구하면 되겠습니까?)"

北海若曰:「否。夫物,量無窮,時無止,分無常,終始無故。是故大知觀於遠近,故小而不寡,大而不多,知量無窮;證曏今故,故遙而不悶,掇而不跂,知時無止;察乎盈虛,故得而不喜,失而不憂,知分之無常也;明乎坦塗,故生而不說,死而不禍,知終始之不可故也。計人之所知,不若其所不知;其生之時,不若未生之時。以其至小,求窮其至大之域,是故迷亂而不能自得也。由此觀之,又何以知毫末之足以定至細之倪!又何以知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북해악이 말했다: "아니되오. 대저 사물은, 양에 한계가 없고, 시간은 끝나지 않으며, 分은 정해진 것이 없고, (어느 것이) 끝나고 시작하는 것은 필연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위대한 인물들은 멀고 가까움을 볼 때, 하찮다고 해서 하찮게 여기지 않고, 위대한 것이라고 해서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니, 사물의 양을 다 파악할 수 없음을 압니다 ; (크게 지혜로운 이는) 현재와 과거를 (통괄해서 차이없이) 살펴 보기 때문에, 먼 미래에 닥칠(먼 과거에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곧 닥칠(저지른) 일이라고 해서 버둥대지 않으니, 시간은 멈추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 (큰 지혜를 가진 이는) 차고 비는 것을 잘 살피기 때문에,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고, 잃었다고 근심하지 않으니, 分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 (지혜가 큰 사람은) 누구나 가는 길을 알아, 살아있다고 기뻐하지 않고, 죽었다고 재앙으로 여기지도 않으니, 마침과 시작은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는 것을 따져 보는 것은 그 알지 못하는 것만 못합다; 내가 얼마나 살 것인지를 계산해 봤자, 아직 태어나기 전의 장구함과 같지 않습니다 ; 지극히 미미한 인식 능력으로, 지극히 큰 영역을 끝까지 알아내겠다고 추구하니, 이런 까닭에 길을 잃고 혼란에 빠져 自得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족히 가장 작다는 것을 어찌 알겠으며, 또 어찌 천지가 지극히 큰 세계의 끝이라고 하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 物: 이 세상의 개체 하나 하나
· 分無常: 得與失皆分. 所稟分命, 隨時變易. 얻고 잃음에 모두 分이 있다. 稟受받은 바 分命은 時에 따라서 바뀐다. 즉, 내가 현실에서 갖는 기회, 부귀와 빈천이다. 신분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分이 아니다.
· 故: 因也
· 知量無窮: 覽而觀之知遠近大小之物各有量: 전체를 통찰해서 보기 때문에, 각각 양이 있다는 것을 안다. 以大人之知知於物之器量 대인의 지로 물의 기량(각자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안다.
· 今故: 노자/장자의 시간을 말할 때의 방향성에 유의. 지금으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내가 중심이기 때문에 먼(遙) 것은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 證曏: 曏明也. 證明.
· 掇: 곧, 조만간 맞닥뜨릴 일. 시간적 거리가 짧다. 遙과 대조.
· 跂: ① 기: 발돋움하다, ② 지: 노력하다, 힘쓰다. 두 가지 발음 모두 뜻은 통한다.
· 坦塗: 坦,平也. 途,道也. 明乎坦然平等之大道者如此. 누구에게나 오는 가는 길을 안다.
· 自得: 處其所, 자기의 삶의 자리를 잡고 살아 가는 것
· 至細之倪 : 지극히 미세한 것의 구분 (정함)
· 至大之域 : 지극히 큰 세계

※ 하백의 작고 큰 것을 분별하여 작은 것은 제쳐두고 큰 것을 추구하면 큰 존재가 될 수 있냐는 물음에, 도대체 작고 큰 것을 어떻게 정해져 있느냐는 답변. (※ 惠施의 物十事와 관련 있음)

河伯曰:「世之議者皆曰:『至精無形,至大不可圍。』是信情乎?」
하백이 말했다. "세상의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惠施 또는 名家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극히 작은 것은 형체가 없고, 지극히 큰 것은 에워쌀 수 없다." 고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사실입니까?"

· 精: 小也
· 信: (副詞) 참으로
· 情: 확실한 것, 사실

北海若曰:「夫自細視大者不盡,自大視細者不明。夫精,小之微也,垺,大之殷也,故異便。此勢之有也。夫精粗者,期於有形者也;無形者,數之所不能分也;不可圍者,數之所不能窮也。可以言論者,物之粗也;可以意致者,物之精也;言之所不能論,意之所不能察致者,不期精粗焉。
북해약이 말했다: "무릇, 미세한 것으로부터 큰 것을 보면 다 볼 수 없고, 큰 것으로부터 미세한 것을 보면 분명히 볼 수 없습니다. 대저 '精' 이란 것은 작은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이고, '垺'는 큰 것들이 모여 거대하게 된 것이니, 본시 존재의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그렇게 있게 된 것입니다. 대저 작고 크다는 것도, 형체가 있는 대상이 있다는 뜻이지요 (예상해서 말했을 뿐이다) ; 형체가 없는 것은, 헤아려서 능히 나눌 수 없는 것이고 ; 에워쌀 수 없다는 것은, 수로서 헤아려서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로 논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눈에 띄는 수준의 크기의 것들입니다 ; 뜻으로만 닿을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작은 것들인데 ; 말로 능히 논할 수 없고, 우리 마음의 뜻으로 살펴서 다다를 수 없는 것들은,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 異便/勢之有: 大小既異宜便亦殊, 故知此勢未超於有之已 : 크고 작은 것이 이미 다르면, 의편(그때그때에 適應한 處置) 또한 서로 다르니, 이것은 勢(상황)가 존재(있다는 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형태로 있게 되었다는 뜻의 '有'
· 期: 기약한다, 예상한다
· 精粗: 인간의 인식으로 다다를 수 있는 수준의 형체가 있는 크기 (크던 작던)

是故大人之行,不出乎害人,不多仁恩;動不為利,不賤門隸;貨財弗爭,不多辭讓;事焉不惜人,不多食乎力,不賤貪污;行殊乎俗,不多辟異;為在從眾,不賤佞諂;世之爵祿不足以為勸,戮恥不足以為辱;知是非之不可為分,細大之不可為倪。聞曰:『道人不聞,至德不得,大人無己,約分之至也。」
그래서 대인이 움직일 때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많이 베풀지도 아니하며 (자애롭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 움직여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이익을 위해 쓰지 않으며), 낮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하지 않고) ; 재산 때문에 다투지 아니하며, (그렇다고) 사양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며 (겸양을 자랑하지 않고 주어지면 누리고) ; 일을 하는 데 다른 사람의 일을 빌리지 않고 (자기 일은 자기 힘으로 하고), (그렇다고)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을 내세우지도 않고, (또한)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들이 있어도 천하게 여지지 않으며 ; 행동이 세속의 가치관과는 다르며, (그렇다고) 자기의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을 내세우지 않고 ; 자기가 있는 자리가 (사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살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첨하며 사는 것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 (이런 사람 즉 대인은) 세상의 작록(벼슬)이 그를 더 부추기기에는(권면하기에는) 부족하며, 刑戮과 羞恥로 (그를) 욕되게 하기에는 부족하니 (욕되게 할 수 없으니) ; 이 세상은 옮고 그른 것을 나눌 수 없고, 작고 큰 것을 경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도인은 알려지지 않고 (명예를 누리지 않고), 지극한 덕은 덕으로 보이지 않으며, 대인은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니, 자기의 주어진 것에 따라 그것 대로 사는 것의 지극함이다""

· 大人: 大人者無意而在天行也. 대인은 의도가 없이 (저절로) 천행을 행한다. 노자의 성인이자 도에 따라 사는 사람
· 貨財弗爭: 各使分定. 각기 누리는 것이 정해지게 한다. · 3번의 不賤: 門隸, 貪污, 佞諂. 和光同塵.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런 사람들과 다 같이 산다. 어찌 보면 오만한 것. · 勸: 勸勉也
· 得: 德也 (老子38章, 上德不德, 是以有德)
· 約分: ① 依也, 限也, 자신의 주어진 한계 속에서 그것을 따라 사는 것. ② 守也, 命也, 주어진 命을 지킨다. 命을 개인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주어진 것, 分이 됨.
· 道人不聞至德不得大人無己約分之至也。(※ 逍遙遊: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 그간 평가되어 온 道家는 최 상층 귀족들의 사유라는 것 보다는 하층 지식인들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더 낮은 계층의 지식인들은 선택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도교사를 보면 대부분 평민 지식인들을 움직여 왔다. 착실히 공부하여 과거를 치루고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으나 수준이 되었던 사람들은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거나 도사가 되거나 했던 것으로 보인다.

河伯曰:「若物之外,若物之內,惡至而倪貴賤?惡至而倪小大?」
하백이 말했다: "혹시 사물의 안에서, (아니면) 혹시 사물의 밖에서, 어느 지점을 보아야 귀천에 이를 수 있는지요? 어떻게 생각해야 소대를 나눌 수 있는지요?"

※ 범인인 하백은 세상 이해를 위해 세상을 나누고 구분해서 보고 싶다. 분별이 있는 세상에 익숙하기 때문.

北海若曰:「以道觀之,物無貴賤;以物觀之,自貴而相賤;以俗觀之,貴賤不在己。以差觀之,因其所大而大之,則萬物莫不大;因其所小而小之,則萬物莫不小。知天地之為稊米也,知豪末之為丘山也,則差數覩矣。以功觀之,因其所有而有之,則萬物莫不有;因其所無而無之,則萬物莫不無。知東西之相反,而不可以相無,則功分定矣。以趣觀之,因其所然而然之,則萬物莫不然;因其所非而非之,則萬物莫不非。知堯、桀之自然而相非,則趣操睹矣。
북해악이 말했다: "도의 관점으로 보면, 사물 하나하나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습니다 ; (그런데) 개체 자신의 관점으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상대를 천시합니다 ; (또한) 세속의 관점으로 본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귀천은 부모에게 오거나 권력자에게서 오거나 주어지는 것) ; (또한) 차별적인 시선 (구별하겠다는 입장) 으로 본다면, 그 큰 것으로 인한다면(사람들이 제각기 크다고 여기는 것을 각자의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보면), 만물은 크지 않은 게 없게 되고 ; 그 작은 것으로 인하면(사람들이 또한 제각기 작다고 여기는 것을 각자의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보면), 만물은 작지 않은 게 없게 됩니다. 천지도 쌀 한 톨과 같다는 것을 알게되고, 터럭 끝이 언덕과 산처럼 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차별의 차수(致)를 보게될 것입니다 ; (또한) 그 유용한 바에 따란 세상을 보면, 만물이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되고, 유용하지 않은 바에 따라 세상을 보면; 만물이 모두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됩니다. (효용가치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동쪽과 서쪽이 (그 나누어짐이) 서로 상반되지만, 서로 없으면 안되는 것이니, 그 유용성이 나뉘어 정해짐입니다 (인간이 밖으로부터 가지고 온 상호 규정적인 대립 개념일 뿐 물자체에 효용성이 없었음) ; 각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세상을 본다면, 그럴듯한 것으로 인하면 이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바가 없어지고 (만물이 모두 그럴듯해지고) ; 잘못되었다는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잘못되지 않은 바가 없어집니다. (만물이 모두 잘못되었다) 요와 걸이 한 쪽이 옳다고 하면 상대방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취조로 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知天地之為稊米也知豪末之為丘山也 (※ 齊物論, 1章: 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太山爲小, 천하에 가을의 터럭 끝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타산은 가장 작습니다)· 因其所然而然之則萬物莫不然因其所非而非之則萬物莫不非 (※ 齊物論, 1章: 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惡乎然然於然。惡乎不然不然於不然。物固有所然物固有所可。無物不然無物不可。)

※ 以道觀之, 以物觀之, 以俗觀之, 以差觀之, 以功觀之, 以趣觀之의 6개를 제시하고 있으나, 보는 관점과 기준이 얼마나 많을 수 있는데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나누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으로, 궁극적인 도의 관점으로 보면 사물 하나하나에는 귀천이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음.
※ 齊物論의 是非는 여기서 以趣觀之의 관점으로 해결이 되는 부분. 현대에서도 계속되는 사람들의 오류가 개인적인 호불호를 판단의 잣대로 삼는 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사람은 구조적으로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뿐더러 장자를 쓴 사람들의 탁월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이념의 차이를 선악으로 생각하고, 취향의 차이를 우열롬 매김하는 사태를 얼마나 많이 목도하게 되는가.

昔者堯舜讓而帝,之噲讓而絕;湯武爭而王,白公爭而滅。由此觀之,爭讓之禮,堯桀之行,貴賤有時,未可以為常也。梁麗可以衝城,而不可以窒穴,言殊器也;騏驥驊騮,一日而馳千里,捕鼠不如狸狌,言殊技也;鴟鵂夜撮蚤,察毫末,晝出瞋目而不見丘山,言殊性也。故曰:蓋師是而無非,師治而無亂乎?是未明天地之理,萬物之情者也。是猶師天而無地,師陰而無陽,其不可行明矣。然且語而不舍,非愚則誣也。帝王殊禪,三代殊繼。差其時,逆其俗者,謂之篡夫;當其時,順其俗者,謂之義徒。默默乎河伯!女惡知貴賤之門,大小之家!」
옛날에 요순은 서로 선위를 해서 황제 노릇을 했고, 연의 자지와 자쾌는 (똑같이) 선위를 했는데 나라가 망했으며, 탕과 무는 방벌하여 왕이 되었는데, 초의 백공은 (똑같이) 싸웠으나 자멸하였으니, 이것으로 살펴 보건데, 방벌과 선양의 예와 요와 걸의 행동은 귀해지고 (성공하고) 천해지는 (실패하는) 것이 일정한 때가 있는 것으로 보이니 일정한 원칙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대들보나 마룻대로는 (큰 나무로는) 성문을 뚫는 충차로 쓸 수 있지만, 작은 구멍을 막지는 못하니, 씌이는 용도가 다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 기린과 화류같은 명마는 하루에 천리를 내달리지만, 쥐를 잡을 때는 고양이과 동물들만 못하니 이는 특기가 다름을 말한 것입니다 ; 올빼미나 수리부엉이는 밤에는 벼룩도 잡을 수 있고, 터럭 끝도 살펴 보지만, 낮에 나오면 눈을 부릅떠도 언덕과 산도 보르지 못하니, 이는 타고난 성이 다름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옳다고 여기는 것을 따른다고 해서 옳지 않은 것이 없어지고, 다스리는 것을 관철한다고 해서 난이 없어지느냐?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본모습에 밝지 못한 것이다." 하늘을 따른다고 하고 땅을 업신여기거나, 음을 따른다고 양을 무시하는 것은 명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자기 주장을 하면서(語) 그만 두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기꾼일 것입니다. 제가 된 사람, 왕이 된 사람이 선양하는 방법이 달라고, 삼대의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이 다 달랐습니다. 그 시대에 어긋나면서, 그 속을 거스르는 것을 나라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하며 ; 그 시대에 합당하면서 속을 따르는 것을, 의로운 무리라고 합니다. 하백께서는 잠자코 있으시오. 그대가 어찌 귀하고 천함이 어떻게 나뉘어지고 소와 대의 구분되어 짐을 알 수 있겠습니까."

· 誣: 핵심어. 다 사기꾼이 된 지식인들
· 篡夫: 나라를 뺴앗은 이들
· 義徒: 맹자의 天命을 받아 天理를 따른 이들.

※ 여기서 예로 든 "爭讓之禮堯桀之行貴賤有時未可以為常也。"의 논리는 儒家의 역사관을 뒤집는 것이 됨. 또한 王天下는 당대 지식인들의 통상 담론이었음을 장자에서도 알 수 있는 端初.

河伯曰:「然則我何為乎?何不為乎?吾辭受趣舍,吾終奈何?」
하백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또한)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됩니까? 제가 사양하고, 받아들이고, 내달리고, 그만두는 것을, 제가 결국 어찌 해야 할까요?

· 辭受趣舍: 세상과 맺는 관계를 의미

北海若曰:「以道觀之,何貴何賤,是謂反衍,無拘而志,與道大蹇。何少何多,是謂謝施,無一而行,與道參差。嚴乎若國之有君,其無私德;繇繇乎若祭之有社,其無私福;泛泛乎若四方之無窮,其無所畛域。兼懷萬物,其孰承翼?是謂無方。萬物一齊,孰短孰長?道無終始,物有死生,不恃其成;一虛一滿,不位乎其形。年不可舉,時不可止;消息盈虛,終則有始。是所以語大義之方,論萬物之理也。物之生也若驟若馳,無動而不變,無時而不移。何為乎?何不為乎?夫固將自化。」
북해악이 말했다: "도로서 본다면,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겠습니까, 이것을 일컬어 도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계속되는 돌아왔다 흩어짐의 반복, 반연이라고) 하니, 그대 나름의 생각에 구속되지 (그대의 귀천을 구분하겠다는 생각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만일 고집한다면) 도와 함께 걷지 못할 것입니다. (크게 다리 절다, 맞지 않다). 무엇이 적고 무엇이 많겠습니까, 이를 일컬어 도가 끊임없는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대의 행동을 (이런 변화를 무시하고) 그냥 하나로 하지 마십시오, 도와 어긋나게 됩니다. 엄숙하기를 나라에 군주가 있는 것처럼 해서 사사로운 덕이 없게 하고 ; 넉넉하기는 사직에서 제사를 지내듯이 (풍성하게) 하여, 개인의 복을 빌면 안되며 ; 공평무사하기는 사방에 끝이 없는 것처럼 하여, 경계짓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 만물을 모두 포용하는데, 무엇을 더 받들고 더 도와주겠습니까? 이를 일컬어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음이라고 합니다. 만물은 (존재라는 측면에서) 모두 다 같은 것이니, 누가 부족하고 누가 뛰어나다는 우열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도에는 끝과 시작이 없지만 (無限), 생물은 죽음과 탄생이 있으니 (有閑),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을 원래의 본체로 믿지 마십시오 ; 한 번 흩어지면 다시 한 번 모이기도 하여, 그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월은 조정할 수 없으며, 시간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 (기의 작용은) 줄어들고 자라나고 가득차고 비우면서, 끝까지 가면 다시 시작됩니다. 이것이 커다란 도를 말하는 이유이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이유입니다. (즉, 나는 변화 속에 있는 개체 하나하나를 말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개체들은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말달리듯이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여, 움직여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항상 변하지 않음이 없으니, 무엇을 하겠으며, 무엇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참으로 장차 스스로 변화할 뿐입니다.

· 反衍: 反覆相尋, 道의 왕복 운동. (※ 노자에서는 그래서 이런 의미로 道를 설명할 때 逝, 遠으로 설명한다. 도는 이 우주에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
· 謝施: 謝代也. 施用也. 끊임없이 움직임
· 私德: 公當而已. 공평하고 마땅할 따름
· 畛域: 와 마찬가지로 界를 따지는 것· 兼懷: 모두 두루 안고 감. 포용. (※ 노자의 버리는 것 없는 것과 墨家의 兼愛, 스펙트럼이 광대한 도가의 가치들)
· 無方: 특정한 방향이 없음. 편애하지 않고, 미리 예정해 두지 않는다. 모든 개체가 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일 뿐이다. 내 주체에 따라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된다.
· 不恃其成: 현상계도 成, 내가 가진 생각도 成, 우리 눈에 가시적인 이런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믿지 말라.
· 舉: 調整하다
· 大義之方: 大道之義方
· 萬物之理: 萬物之玄理
· 自化: 스스로 변해가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맞춰서 살 뿐. 수동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 反衍, 謝施: 도의 운동의 측면을 말함. 장자에 있어서 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이며, 변화는 또 시간. 변한다는 사실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노자가 상정해 두었던 궁극의 어느 형이상학적인 것과는 차이를 보임

河伯曰:「然則何貴於道邪?」
하백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 도가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라면, 왜 도가 귀하다고 하는것이냐?)

北海若曰:「知道者必達於理,達於理者必明於權,明於權者不以物害己。至德者,火弗能熱,水弗能溺,寒暑弗能害,禽獸弗能賊。非謂其薄之也,言察乎安危,寧於禍福,謹於去就,莫之能害也。故曰:天在內,人在外,德在乎天。知天人之行,本乎天,位乎得。蹢䠱而屈伸,反要而語極。」
북해악이 말했다: "도를 아는 사람은 필히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明) 상황을 조율(權)하게 되며, 상황을 잘 조율해야만 外物이 나를 해치지 않습니다.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은 불로 뜨겁게 할 수 없고, 물에 빠뜨릴 수 없고, 추위와 더위로 해치지 못하며, 짐승들로 해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것들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 아니요. 안위를 잘 살피고, 화복을 잘 살피는 것이고, 거취를 신중히하는 것이니, 능히 그를 해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성은 마음 속에 있으며, 인위는 몸 밖에 있으며, 덕은 천성을 따르는 데 있다고 합니다." 천(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과 인(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행함을 아는 것은, 그 근본을 천성에 두어야 하며, 덕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섬세하게 움직이며 어떨땐 굽히고 어떨땐 피면서, 가장 중요한 것(道)로 돌아가고, 항상 궁극의 것(道)를 이야기하십시오."

· 不以物害己: 장자에서의 全生의 추구.
· 得: 德也.
· 蹢䠱: 進退不定之貌也.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정해지지 않는 모양. 약간씩 주춤거리며 섬세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실수를 줄이면서 맞춰 감. 즉, 權.

※ 蹢䠱而屈伸, 反要而語極: 장자에서 권유하는 삶의 방식, 상황에 따라 조금씩 맞춰 가면서 유연하게 살아가라. 맹자의 權은 예를 정치에 있어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權謀術數 政治論)로. 장자에서는 개인의 차원에서 상황에 맞춰 사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明於權의 개념을 말한다.

曰:「何謂天?何謂人?」
화백이 말했다: "무엇이 천(天性)이고, 무엇이 인(人爲)입니까?"

北海若曰:「牛馬四足,是謂天;落馬首,穿牛鼻,是謂人。故曰:無以人滅天,無以故滅命,無以得殉名。謹守而勿失,是謂反其真。」
북해악이 말했다: "소와 말이 발이 네게 있는 것을 天性이라 하고 ; 말머리에 낙인을 찍고, 쇠코에 코뚜레를 뚫는 것을 人爲라 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인위적인 것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을 사라지게 하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만들어서 천명을 없애지 말고, 이권과 성취를 얻기 위해 자기다움을 죽이면 안됩니다. 가지고 태어난 덕을 삼가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을 일컬어 天眞의 본성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 꽉 막힌 하백에게 결과적으로 장자의 소박하고 천진한 면을 유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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