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전자방 3~4, 6~8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03-19 16:45
조회
92
주윤발 주연의 영화 《공자》를 보면, 공자가 생각에 빠졌을 때 소박하지만 단정한 차림을 한 백발의 노인을 만나죠. 아마도 노자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노자에 대한 이미지는 어디서 생겼을까요? 우쌤은 노자에 대한 이미지가 《장자》에서 생겨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전자방〉을 비롯해서 가끔씩 심심찮게 가르치는 노자와 배우는 공자의 구도가 반복됩니다. 그런 반복된 이야기들을 통해서 노자의 차림새가 조금씩 묘사됩니다. 즉, 장자만의 뛰어난 상황묘사가 노자의 이미지들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이죠. 혹은 장자 이전에 이미 노자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다고 해도, 《장자》에서 노자를 사진처럼 묘사함으로써 좀 더 이미지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한문의 글쓰기는 지금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자》를 보면, 그의 섬세한 묘사는 단지 수사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어떤 사고에 대한 비판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용히 하라!’와 같은 극단적인 대사를 비롯하여 멍한 표정 등의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습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단서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다른 텍스트들도 그렇지만 《장자》는 어째 읽으면 읽을수록 무궁무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3.

顔淵問於仲尼曰.. 夫子步亦步, 夫子趨亦趨, 夫子馳亦馳., 夫子奔逸絶塵, 而回瞠若乎後矣!

仲尼曰.. , 何謂邪?

.. 夫子步, 亦步也., 夫子言, 亦言也., 夫子趨, 亦趨也., 夫子辯, 亦辯也., 夫子馳, 亦馳也., 夫子言道, 回亦言道也., 及奔逸絶塵而回矘若乎後者, 夫子不言而信, 不比而周, 无器而民滔乎前, 而不知所以然而已矣.

안연이 중니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걸어가면 [] 또한 걸어가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 또한 달리고, 선생님께서 뛰어가시면 [] 또한 뛰어가는데, 선생님께서 먼지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달리시니, 제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안회야,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안연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걸어가면, [] 또한 걸어간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 또한 달린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논변하시면 [저도] 논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뛰어가시면 [] 또한 뛰어간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도()에 대해 말씀하시면 저도 또한 에 대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먼지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달려서 제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데 이른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도 믿음을 받고, 어울리려 하지 않고도 두루 친하며, 벼슬자리를 가지지 않고도 백성들이 앞에 모여드는데도 그렇게 되는 까닭을 모른다는 것뿐입니다.”

 

이 구절은 《논어》 〈자한〉편 10장 “안연위연탄왈(顔淵喟然歎曰)”의 《장자》 버전입니다. 생각해야 할 고리는 많겠지만, 이를 도가에서 바라본 공자에 대한 평가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인트는 보(步), 추(趨), 치(馳)와 같은 속도를 나타내는 글자로 인식의 수준을 표현한 것입니다.

분일절진(奔逸絶塵)은 직역하면 ‘먼지를 끊어내며 달리다’인데, 곧 먼지가 쫓아가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쌤은 이를 형(形)이 없는 것, 자유자재함으로도 풀어주셨습니다.

당(瞠)은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입니다.

언(言)은 ‘가르침’입니다.

기(器)는 ‘벼슬자리’입니다.

 

仲尼曰.. ! 可不察與! 夫哀莫大於心死, 而人死亦次之. 日出東方而入於西極, 萬物莫不比方, 有首有趾者, 待是而後成功, 是出則存,是入則亡. 萬物亦然, 有待也而死, 有待也而生. 吾一受其成形, 而不化以待盡, 效物而動, 日夜无隙, 而不知其所終., 薰然其成形, 知命不能規乎其前, 丘以是日徂.

중니가 말했다. “!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슬픔은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게 없으며, 사람이 죽는 것은 또한 그 다음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 끝으로 들어가는데, 만물이 나란히 변하지 않는 게 없으니, 감각기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시간에 의지한 이후에 공이 이루어지니, 이것이 나오면 [만물이] 존재하고, 이것이 들어가면 [만물이] 없어진다. 만물이 또한 그러하니, 의지한 것이 있어서 사라지고, 의지한 것이 있어서 생겨난다. 나는 어쩌다 한 번 형체를 이룸을 받았으니, ()하지 않으면 소진하길 기다리고, 만물의 변화를 따라서 살아간다. 낮과 밤[의 운행에는] 조그마한 틈도 없고, 끝나는 바를 알지 못하며, 모락모락한 가운데 형체가 이루어졌고, ()을 알았는데도 [존재] 이전을 엿볼 수 없으니, 내가 이 형체가 이뤄지는 것으로 매일 걸어가는 것이다.”

 

이 구절은 크게 보면 건곤(乾坤)을 설명하는 구절인데, 우쌤은 이것이 동양의 시간관과 연관된다고 하셨습니다.

대(待)는 ‘기다리다’인데, 여기서는 만물이 변화에 의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지하다’로 해석했습니다.

일(一)은 ‘어쩌다’, ‘우연히’를 뜻합니다.

교물(交物)은 만물의 변화에 함께 하는 것이고, 동(動)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훈연(薰然)은 형태가 어렴풋하게 형성되는 것을 묘사한 글자인데, 이런 사유는 《회남자》로 이어집니다.

 

吾終身與汝交一臂而失之, 可不哀與! 女殆著乎吾所以著也. 彼已盡矣, 而女求之以爲有, 是求馬於唐肆也. 吾服女也甚忘, 女服吾也亦甚忘. 雖然,女奚患焉! 雖忘乎故吾, 吾有不忘者存.

내가 몸이 사라질 때까지 너와 함께하는데, 너는 잠시 팔뚝이 스치는 사이에 [나를] 놓쳐버리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는 아마도 나의 부각된 모습만을 보았을 것이다. 저 모습이 이미 다하였는데도 너는 그것을 좇아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말이 지나간 자리에서 말을 좇는 것이다. 내가 너를 생각한 것을 이미 잊었듯이, 너도 나를 생각한 것을 또한 금방 잊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너는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비록 이전의 나를 잊었다 해도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나를 가지고 존재한다.

 

일비(一臂)는 아주 짧은 순간을 말합니다.

당사(唐肆)는 ‘말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심망(甚忘)은 매우 빠르게 바뀐다는 뜻으로 속(速)과 같습니다.

고오(故吾)는 ‘이전의 나’이고, 불망자(不忘者)는 ‘아직 오지 않은 나’입니다.

 

4.

孔子見老聃, 老聃新沐, 方將被髮而乾, 慹然似非人. 孔子便而待之, 少焉見,.. 丘也眩與, 其信然與? 向者先生形體掘若槁木, 似遺物離人而立於獨也.

老聃曰.. 吾遊心於物之初.

공자가 노담을 보았는데, 노담이 새로 머리를 감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말리고 있었는데,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공자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얼마 안 되어 노담을 찾아가 말했다. “제가 현기증이 났는데, 정말로 그러한가요? 일전에 선생님의 형체가 솟아있는 모습이 마치 고목나무와 같았으니, 몸을 버리고 인간세계를 떠나 홀로 계신 것 같았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나는 사물의 근원에서 노닐고 있다.”

 

건(乾)은 ‘말리다’라는 뜻입니다.

집연(慹然)은 ‘움직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굴(掘)은 ‘우뚝 솟다’라는 뜻입니다.

 

孔子曰.. 何謂邪?

.. 心困焉而不能知, 口辟焉而不能言, 嘗爲汝議乎其將. 至陰肅肅, 至陽赫赫., 肅肅出乎天, 赫赫發乎地., 兩者交通成和而物生焉, 或爲之紀而莫見其形. 消息滿虛, 一晦一明, 日改月化, 日有所爲, 而莫見其功. 生有所乎萌, 死有所乎歸, 始終相反乎无端而莫知乎其所窮. 非是也, 且孰爲之宗!

공자가 말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노담이 말했다. “마음은 아무리 곤란한 일을 당해도 알 수 없고, 입은 [억지로] 벌려도 말하게 할 수 없으나, 시험 삼아 너를 위해 장차 나올 것들을 의논해보겠다. 지극한 음()은 고요하고 차가우며, 지극한 양()은 빛나고 뜨거우니, 고요하고 차가운 것에 하늘에서 내려오고, 빛나고 뜨거운 것은 땅에서 피어난다. 두 가지는 서로 통하며 섞임을 이루니 만물이 거기에 생겨나니, 한 번 만들어지는 규칙이 있어도 그 형체를 볼 수 없다. 줄어들고 불어나고 채워지고 비워지며, 한 번 어두웠다가 한 번 밝아지고, 해가 뜨고, 달이 변하며, 날마다 무슨일이 있으나 그 공을 볼 수 없다. 생성은 싹트는 바가 있고, 사멸은 돌아가는 바가 있으니, 처음과 끝은 서로 그 끝없음으로 돌아가지만 다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 생명의 근원이 되겠는가!”

 

벽(辟)은 개(開)의 뜻입니다.

숙숙(肅肅)은 음기(陰氣)이고, 차가운 성질입니다. 혁혁(赫赫)은 양기(陽氣)이고, 뜨거운 성질입니다.

화(和)는 음양이 섞이는 것을 말합니다.

기(紀)는 도(道)로, 결합하는 원칙입니다.

맹(萌)은 생(生)의 이미지화한 글자이고, 귀(歸)는 신체가 소멸하는 운동성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종(宗)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孔子曰:「請問遊是。」

老聃曰:「夫得是至美至樂也得至美而遊乎至樂謂之至人。」

孔子曰.. 願聞其方.

.. 草食之獸不疾易藪, 水生之蟲不疾易水, 行小變而不失其大常也, 喜怒哀樂不入於胸次. 夫天下也者, 萬物之所一也. 得其所一而同焉, 則四肢百體將爲塵垢, 而死生終始將爲晝夜而莫之能滑, 而況得喪禍福之所介乎! 棄隸者若棄泥塗, 知身貴於隸也, 貴在於我而不失於變. 且萬化而未始有極也, 夫孰足以患心! 已爲道者解乎此.

공자가 말했다. “청컨대 이것에 노닌다는 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이것을 얻으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겁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체득하고 지극한 즐거움에서 노니는 것, 그것을 일러 지인(至人)이라고 한다.”

공자가 말했다. “그 방법을 듣고 싶습니다.”

노담이 말했다. “풀을 먹는 짐승은 수풀 바꾸기를 싫어하지 않고, 물에 사는 곤충은 살고 있는 물을 바꾸어도 싫어하지 않고, 행위가 조금만 변해도 도()를 잃지 않으니,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이 마음에 들어가지 못한다. 무릇 천하라는 것은 만물에게 동일한 세계다. 이 동일한 세계에 살면 같아지게 되니, 사지와 온몸이 장차 먼지가 될 것이니, 소멸과 생성, 끝과 시작은 장차 낮밤이 되어 어지럽힐 수 없는데, 하물며 얻고, 잃고, (), ()이 장애가 되겠는가! 노예를 버리는 것은 길에 진흙을 던지는 것과 같고, 몸이 노예보다 귀한 것을 아는 것은 귀함이 나에게 있지 변화로 잃지 않다는 것이다.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니 애초에 끝이 있지 않고선 시작도 있을 수 없다. 누가 충분히 마음을 걱정했겠는가! 이미 를 행하고 있는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대상(大常)은 도(道)입니다.

소일(所一)은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동(同)은 그것과 같은 원리로 존재함을 말합니다.

개(介)는 ‘장애가 되다’, ‘개입하다’의 뜻입니다.

만화(萬化)는 모든 사물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존재함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孔子曰.. 夫子德配天地, 而猶假至言以修心, 古之君子, 孰能脫焉?

老聃曰.. 不然. 夫水之於汋也, 无爲而才自然矣. 至人之於德也, 不修而物不能離焉, 若天地自高, 地之自厚, 日月之自明, 夫何修焉!

孔子出, 以告顔回曰.. 丘之於道也, 其猶醯鷄與! 微夫子之發吾覆也, 吾不知天地之大全也.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천지에 순응하시는데도 오히려 지언(至言)을 빌려서 마음을 수양하시니, 옛날의 군자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났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무릇 물이 샘물로부터 자연스럽게 솟아나오는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하지 않고도 본래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지인(至人)이 덕()을 체득함에 있어서 수양하지 않고도 사물과 떨어지지 않으니, 하늘이 저절로 높고, 땅이 저절로 두텁고, 해와 달이 저절로 밝은 것이 어떤 수양 때문이겠는가!”

공자가 나가서 안회에게 말했다. “내가 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초파리와 같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내가 막혀있는 것을 열어주지 않으셨더라면, 나는 천지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혜계(醯鷄)는 ‘초파리’입니다.

부(覆)는 인식을 편향적으로 하게 만드는 방해물, 일종의 뚜껑입니다.

 

6.

百里奚爵祿不入於心, 故飯牛而牛肥, 使秦穆公忘其賤, 與之政也. 有虞氏死生不入於心, 故足以動人.

백리해는 벼슬과 작록이 마음에 침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에게 먹이를 주면 소가 살졌다. 이에 진목공은 백리해의 천한 신분을 잊고 그에게 정치를 맡겼다. 순 임금은 신체의 해체와 소멸이 마음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천(踐)은 천한 신분입니다.

 

7.

宋元君將畵圖, 衆史皆至, 受揖而立., 舐筆和墨, 在外者半. 有一史後至者, 儃儃然不趨, 受揖不立, 因之舍. 公使人視之, 則解衣槃般礡. 君曰.. 可矣, 是眞畵者也.

송원군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여러 화공들이 모두 이르자, [송원군의] ()을 받고 서있었는데, 붓을 핥고 먹을 갈며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절반이었다. 어떤 화공이 뒤에 이르러서는 느긋하게 뛰지 않았으며, [송원군의] 읍을 받고도 밖에 서있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송원군이 사람을 시켜서 지켜보게 했더니,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앉아있었다. 송원군이 말했다. “좋다. 이 사람이 진정한 화공이다.”

 

지필화묵(舐筆和墨)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단단연(儃儃然)은 ‘느긋한 모양’입니다.

 

8.

文王觀於臧, 見一丈人釣, 而其釣莫釣., 非持其釣有釣者也, 常釣也.

文王欲擧而授之政, 而恐大臣父兄之弗安也., 欲終而釋之, 而不忍百姓之无天也. 於是旦而屬地大夫曰.. 昔者寡人夢見良人, 黑色而髯, 乘駁馬而偏朱蹄, 號曰.. 寓而政於臧丈人, 庶幾乎民有!

諸大夫蹴然曰.. 先君王也.

諸大夫曰.. 先君之命, 王其无它, 又何卜焉!

문왕이 장()땅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한 장부가 낚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낚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낚시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낚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낚시대를 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항상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문왕이 그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고자 했으나, 대신들과 부형께서 불안해할까봐 걱정했다. 마침내 포기하려고 했을 때, 백성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듯한 정치를 행하는 사람이 없음을 차마 참지 못하였다. 이에 아침이 되자 대부들을 불러서 말했다. “어제 과인의 꿈속에 훌륭한 사람이 나왔는데 얼굴은 검고 구렛나룻이 있었고, 한쪽 발굽이 빨간 얼룩말을 타고 호령하기를 그대의 정치를 장()땅의 사내에게 맡겨라. 그러면 백성들의 생활이 거의 안정될 것이다!’라고 했다.

여러 대부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전 군왕이십니다.”

문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점을 쳐보시오.”

여러 대부들이 말했다. “선군의 명이니, 왕께서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찌 또 점을 치려하십니까!”

 

조(釣)는 ‘낚시’입니다. 그런데 맥락에 따라서 ‘낚을 의도’로 번역했습니다.

박마(駁馬)는 ‘잡종’, ‘얼룩말’입니다.

추(瘳)는 ‘병이 낫다’인데, 여기서는 민생이 안정됨을 뜻합니다.

축연(蹴然)은 당(瞠)과 같이 ‘놀란 표정’을 뜻합니다.

 

遂迎臧丈人而授之政. 典法无出, 偏令无出. 三年, 文王觀於國, 則列士壞植散群, 長官者不成德, 斔斛不敢入於四竟. 列士壞植散群, 則尙同也., 長官者不成德, 則同務也., 斔斛不敢入於四竟, 則諸侯无二心也.

文王於是焉以爲大師, 北面而問曰. 政可以及天下乎?臧丈人昧然而不應, 泛然而辭, 朝令而夜遁, 終身无聞.

顔淵問於仲尼曰.. 文王其猶未邪? 又何以夢爲乎?

仲尼曰.. , 汝无言! 夫文王盡之也, 而又何論刺焉! 彼直以循斯須也.

마침내 장()땅의 사내를 찾아서 그에게 정치를 맡겼다. [그는] 관습적인 법을 고치지 않고, 특이한 법령을 시행하지 않았다. 삼년이 되자, 문왕이 나라를 꼼꼼히 살펴보니, 지식인 집단은 빗장을 부수고 파벌을 흩어지게 했으며, 책임자들은 자신의 덕을 드러내지 않았고, 도량형들이 국경 안으로 감히 들어오질 않았다. 지식인 집단이 빗장을 부수고 파벌을 흩어지게 한 것은, 뜻을 모으는 것을 숭상한 일이다. 책임자들이 자신의 덕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업무를 함께 한 것이다. 도량형들이 국경 안으로 감히 들어오지 못한 것은, 제후들이 두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이다.

문왕은 이에 그를 태사로 삼았고, [제자 혹은 신하의 입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정치가 천하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땅의 사내는 멍한 채로 대답하지 않았고,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대꾸했더니, 아침에 명령을 받고 저녁에 도망친 뒤로, 끝내 어떤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

안회가 중니에게 물었다. “문왕은 여전히 성인이 아닙니까? 또 어찌 꿈을 얘기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조용히 해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무릇 문왕은 [직무를] 다하였으니, 또 어떻게 허물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는 다만 임시방편을 따랐던 것이다.”

 

사수(斯須)는 수유(須臾)와 같이 ‘잠깐’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편법’, ‘일시적인 방편’으로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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