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 3 역사강의 5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4-15 21:50
조회
96
언제부터 귀신이 우리에게 으스스한 존재로 인식됐을까요? 얼마 전 1987년 개봉한 《강시선생》을 봤는데, 《전설의 고향》도 그렇고 90년대의 귀신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대개 귀신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해로운 존재로 등장하죠. 《전설의 고향》에서 이광기가 “내 다리 내놔~”라며 쫓아오던 게 기억나는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다리를 자르고, 끓여먹는다는 얘기가 섬뜩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보니 그냥 웃기더군요? ㅋㅋ 어쨌든, 요즘의 귀신은 또 90년대의 귀신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푸른 바다의 전설》, 《별에서 나온 그대》, 《도깨비》 등등 판타지 드라마를 보면, 대부분의 귀신은 공포의 대상보다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초능력을 사용해서 여자와 데이트를 하거나, 자신의 원수에게 복수를 하거나 돈을 더 많이 버는 등등.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과 매우 분리된 존재로 취급된다는 점에서는 90년대의 귀신과 지금의 귀신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고대 동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귀신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 동양에서 귀신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려졌습니다. 《좌전》을 보면, 태자 신생이 자신의 죽음이 원통해서 원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죽을 때는 분명 순 임금 버금가는 효(孝)의 대명사였는데 죽는 그 순간에 원망이 확 든 걸까요? 혹은 이야기의 여러 버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귀신이란 혼만 있는 것이며 사람들의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귀신은 오직 무당의 접신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었죠. 그런데 후한 이후로 넘어가면서 귀신은 좀 더 친숙하게 그려집니다. 오래된 물건이나 짐승의 변신, 죽은 사람의 환생(혹은 원령인 채로 사람들과 만난다거나) 등등 전반적으로 일상생활과 더욱 밀접해지고, 친숙해지면서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로 그려집니다. 이번 시간에 우쌤이 소개해주신 《열이전》, 《수신기》, 《유명록》은 약 100년의 시간을 두고 저술된 책들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이야기는 당대의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이 돼있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시대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책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열이전(列異傳)》은 삼국지의 영웅 중 한 명인 조조의 아들 조비의 주도 아래 편집된 책입니다. 열(列)은 시리즈(series), 이(異)는 ‘기이하다’라는 뜻으로 위진 시대 최초의 ‘기이한 이야기 모음집(志怪集)’입니다. 물론 실제 주도한 인물은 《박물지》의 찬자인 장화라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조비의 이상한 것에 대한 관심 덕분에 소문으로 떠돌던 것들이 이야기로 편집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조조는 방사와 신선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아들인 조비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좋아했습니다. 역시 부전자전이네요. 이렇게 조조가 방사를 모으고, 조비가 지괴집을 편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쏠렸는지를 보여줍니다. 권력자가 장생불사에 관심이 많으면 방사와 신선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기이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면 소문으로 떠돌던 것들이 책으로 편집되는 것이죠. 가령, “남양군 송정백이 밤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다.”는 것만 봐도 지역에서 떠돌던 소문들이 구체적 지명과 등장인물로 이야기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대에 기이한 이야기가 성행했을까요? 우쌤은 한나라-유학의 합리성이 깨지는 시대적 충격과 연결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子不語 怪力亂神 - 〈술이〉 20장)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이야기들은 주로 신(神)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이 당시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하나만 소개해보겠습니다. ㅎ

이번 강의에서 가장 깬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앞서 얘기한 남양군 송정백입니다. 송정백이 어느 날 밤길을 걷다가 귀신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도 귀신이라고 속여서 어찌어찌 귀신과 동행하게 됐는데, 귀신과 달리 무게도 있고 개울을 건너서는 첨벙첨벙 소리도 났다고 합니다. 귀신이 왜 무겁고, 첨범첨범 소리가 나냐고 물어보면 아직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라고 둘러댑니다. ㅋㅋ 그렇게 귀신과 대화하다가 사람의 침을 맞으면 힘을 못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침을 뱉고 귀신을 납치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내꺼 찜할 때 침 퉤퉤퉤 뱉는 게 유래한 걸까요? ㅋㅋㅋ 어쨌든 나중에 귀신을 팔려고 내려보니 정체는 오랜 양이었고, 1,500냥에 무사히 팔았다고 하네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귀신의 정체가 보이지 않는 혼 덩어리가 아니라 오래된 동물, 물건 같은 것으로 귀신이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나이 마흔이 넘도록 부인 없이 공부만 하던 사람에게 절대 미녀(귀신)가 와서 같이 부부 생활하는 것도 있고, 죽은 부인을 그리워해서 무덤으로 들어가서(그런데 “무덤”이나 “관”이 아니라 “문”으로 들어가고, 나왔다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사랑을 나눴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금오신화나 주몽과 유리의 칼 조각 맞추기 같은 이야기들은 이런 기묘한 이야기들을 원형으로 파생됐다고 합니다.

《수신기(搜神記)》는 동진 시대 간보(干寶)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신선전》을 짓고 침구학의 대가인 갈홍을 관직에 추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수(搜)는 ‘수색하다’는 뜻이고, 신(神)은 ‘신기하다’, ‘신이하다’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신기한 이야기를 찾아가는 기록집인 것이죠. 《수신후기(搜神記後)》라는 속편도 있는데, 여기에 간보 집안의 이야기도 포함돼있습니다. 황보밀 본인이 나중에 고사(高士)로 분류된 것과 비슷한 경우인데 느낌은 많이 다르네요. ㅋㅋ

《수신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별도로 묵였다는 것입니다. 《열이전》에는 사실 귀신에 대한 별도의 정리된 챕터가 없었습니다. 다만 기묘한 이야기들 덩어리였는데, 《수신기》는 네 개의 챕터(권15(死而復生) 권16(人鬼交遊) 권17(인간을 속이고 도와주는 귀신) 권18(귀신 시리즈))가 귀신에 대한 이야기로 묶여있습니다. 그리고 《열이전》 보다 서사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작품의 양이 많아집니다.

여기도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쌤은 위진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도굴범이 많았다는 것이었고 그 흔적이 《수신기》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승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부부 환생’에서 ‘이뤄지지 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으로 주제가 옮겨갔으며. 공자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유명록(幽明錄)》은 송나라의 왕족인 유의경이 당대의 문인과 학자들을 모아서 편집한 책입니다. 유의경은 다음 시간에 볼 《세설신어(世說新語)》를 집필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명록》에서 유(幽)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세계’, 명(明)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뜻합니다. 후한 이후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많아지더니 책으로 조금씩 섞여 들어가고(《열이전》), 별도의 챕터로 정리가 되다가(《수신기》), 송대에 이르러서는 별도의 책(《유명록》)으로 정리가 됩니다. 앞선 두 개의 책보다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으나 재미도 그만큼 있다고 하니, 나중에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수신기》에서 간략한 저승이 나왔다면, 《유명록》에는 보다 구체적인 저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에 따르면, 저승에 대한 묘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소승불교의 유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유명록》의 이야기를 살펴봐도 집에서 불상을 세우고 공양을 드리는 당대 재가신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와 토착종교와의 갈등도 나오는데, 대개 무속을 따르면 지옥으로 가고 불교를 믿으면 좋은 곳으로 가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그밖에도 종이를 만들기 위해 닥나무 껍질을 채집한다거나 호분(胡粉)과 같은 서역의 화장품이 등장해서 서역과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루쉰은 《중국소설사략》에서 진한 시대 이래 신선류의 이야기(동시에 고사의 이야기)가 성행했고, 한말에 이르러서는 귀신에 대한 신앙이 치열해졌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루쉰이 보기에, 당시 사람들은 사람과 귀신이 존재하는 방식은 다를 뿐 모두 실재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에 대한 구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슬슬 중국 고대의 판타지도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아직도 감이 잘 잡히지 않네요. 지금 우리가 보기에 기묘하고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당대 사람들에게는 어떤 앎을 구성했는지, 그들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해지네요!

다음 시간은 유의경의 《세설신어(世說新語)》입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재밌는 이야기에 빠져봐요~ Q^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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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7 10:52
    우쌤의 재미진 강의를 또 이렇게 멋진 후기를 통해 확인하는 기쁨이라니~~!!
    역시 중국은 이쪽 세계도 무궁무진한듯... 그 시대의 공기와 술렁거림을 자기 시대의 문제로 꿀어온 루쉰이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대단한 세계였던 건지가 새삼~~~~! 그래, 마지막 시간까지, 아쉬움없이~~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