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 1 7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8-07 22:35
조회
132
굴원이 남긴 초사를 다 읽어도 그것의 합을 굴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존인물이긴 하지만 우리가 아는 굴원은 사실상 사마천이 남긴 굴원에 대한 글과 주자가 만든 굴원의 이미지지요. 분에 차서 글을 쓰는 사람과 충신의 이미지. 하지만 초사를 통해 굴원을 보자면 그는 우선 주변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자신의 울분을 쏟아내는 데 주력할 뿐이죠. 충신이라고 하면 왕에 대한 캐릭터가 분명해야 하는데 사실 굴원이 쓴 글에서 왕은 그저 훌륭한 사람일 뿐이거든요. 굴원을 忠으로 읽느냐 아니면 슬픔으로 읽느냐 이에 따라 굴원이 어떤 사람인지가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굴원은 어떤 사람일까요. 초사를 통해 본 굴원은 마치 벌써 죽은 사람 같습니다. 죽은 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굴원의 초사는 후대의 초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초대는 나름 '삶의 현장'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굴원의 작품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거 같지 않는 느낌을 줍니다.


오늘 할 작품은 천문(天問), '하늘에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이 시를 충신의 코드로 읽으면 기계적으로 하늘=군주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완전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잘 읽으면 하늘을 군주라고 바로 볼 수가 없고, '땅에 발을 딛지 않는 자' 굴원의 울분과 질문만이 남거든요.


천문은 논란이 많은 글입니다.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워낙 일관되지 않은 저질 작품이라고 하는 평도 있습니다. 후대가 짜깁기 한 글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요. 너무 슬퍼서 왔다갔다 했나ㅋ 싶을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의 고저, 시간의 배열, 역사의 순서를 마구 넘나듭니다. 질문 172개를 방언 하듯 쏟아내는,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이 누덕누덕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는 첫번째로 쫓겨난 시기라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늘에 대한 질문, 땅에 대한 질문, 그리고 신화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세번째 질문은 지역으로 보면 곤륜산에 대한 질문이지요.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굴원은 서쪽을 싫어하고 친제파, 그러니까 동쪽으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데 곤륜산? 이런 어긋남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작품을 읽는 방법중 하나를 제시한 사람은 초사를 정리한 왕일입니다. 그가 쓴 <초사장구>는 후대에 주자가 그대로 이어받았지요. 왕일은 그림이 초사가 그림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글을 썼다는 설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주장하기로 굴원이 몸이 수척해져서 광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몸이 워낙 약해지니 주변이 보이지 않고 역사이래 자신이 가장 슬프고 가련하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화자는 갑자기 무덤을 들어갑니다. 무덤에 있는 것은? 바로 그림이지요. 신령이라든가 괴이한 동물들 등등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그림을 보면서 그 벽화에 글을 쓴 게 '천문'이라는 설이 바로 왕일과 주자의 설입니다. 워낙 정신도 오락가락하니 글에 조리도 없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이걸 나중에 후세 사람이 묶었다고 하는 것. 이것이 왕일의 '제도설題圖設'입니다. 아마 왕일이 이렇게 생각한 건 무덤에 그림을 그리고 묘비를 세우는 후한시대를 왕일이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부지는 <초사통석>에서 왕일의 제도설을 부정합니다. 그는 차서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굴원이 옛날부터 초의 선대까지 거슬러 올라 순서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작품에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굴원이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죠. 어쩄든 이것도 가설입니다. 진상은 알 수 없죠.


천문을 읽기 전에 두 가지 작품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는 유종원의 '천대天對'입니다. 굴원이 묻는 172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쓴 것이죠. 명료한 글을 쓰는 유종원스러운 일일까요? 하늘을 대답하여 천년을 뛰어넘어 대답을 해줬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장유가 '속천문續天問'을 씁니다. 굴원의 작품을 베이스로 깔면서, 횡설수설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실정도 넣어서 쓴 아주 문장이 뛰어난 글입니다. 굴원을 충실이라고 할 때 그 충신은 한없이 애달픈 이미지입니다. 이 충신은 누굴 죽이거나 하지 않고 자신을 해치는 타입의 충신이라고 했습니다. 병자호란 시기를 살던 장유였기 때문에 사문의 흥망을 관점으로 천문을 다시 패러디 해서 썼고요. 그리고 굴원은 초나라의 역사를 썼기 때문에 장유는 단군부터 언급합니다.


천문의 시작은 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바라면서 묻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의 기원, 천체의 모양, 일월성신의 운행, 대지의 구성과 사방 등을 묻습니다. <장자>나 <회남자>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산해경>의 신화도 들어가 있고요. 여덟개의 기둥이 하늘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라든가.

여기에는 숫자 九가 많이 등장합니다. 九는 최대치입니다. 하늘이 아홉 층위로 있다고 보았지요. 이건 지상이 아홉 주로 나뉘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도 그럴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의 질서를 보고 땅의 질서에 대해 묻습니다. 구주九州 배치와 치수에 대한 의문을 쏟아내지요. 지상에 있다는 괴물들은 어디 있고 옛 성왕이 나누었다는 땅은 어떤 것인가? 치수사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등등. 여기서는 곤에 대한 초사 특유의 이미지가 나옵니다. 이소에서도 곤은 '억울한 충신'인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치수를 하려다가 제거당한 신하로 나오지요. 그리고 우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았다고 봅니다. 재밌는 건 우가 죽은 곤의 배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우는 죽은 자의 복제죠.


그런데 다음은 갑자기 이야기가 곤륜산으로 튑니다. 곤륜산의 현포는 어디 있는가? 이때 현포는 전설상의 공중정원입니다. 그 외에도 머리가 아홉인 살모사,  말하는 짐승, 규룡, 불사의 땅 등 온갖 괴물과 상상의 지리를 묻습니다.


그 다음은 두 번째 파트입니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신화와 역사 이야기의 짬뽕입니다. 그러면서 곤륜산은 또 계속 나오죠. 시작은 우의 치수사업부터. 그리고 우의 결혼. <사기>와 달리 우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다고 나오죠. 그리고 또 다른 역사책과 달리 여기서는 우임금이 익에게 선양했는데 우임금의 아들 계가 들고 일어났다고 말하죠. 역사에 대해서 꽤나 우리가 아는 버전과 다른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게 남방의 관점에서 서술한 역사인지 아니면 굴원이 참고한 다른 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무가에서 전해지는 신화 버전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가령 계는 어머니를 죽이고 그걸 대지에 뿌렸다고 하지요. 이건 풍요를 바라는 인신공양 모티프인데 그것이 역사이자 신화상의 인물인 계에게 갑니다.


또 예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는 하늘의 아들로써 지상에 내려와 하백을 죽이고 낙수의 여신을 빼앗지요. 또 활을 잘 쏘고요. 이건 주몽신화의 금와와 해모수와 유화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역사이면서 신화의 이야기가 뒤죽박죽으로 나옵니다. 강태공이 고고한 낚시꾼이 아니라 백정으로 나오고 과요와 형수의 그렇고 그런 사이 설화 등등 북방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요.


온갖 역사 이야기 이후 갑자기 시는 초장왕으로 끝납니다. 정리글도 없습니다. 주를 읽으려면 본문의 다섯배는 되는 글을 뚫어야 한답니다ㅋㅋㅋ 그러다보니 수업을 듣고 나서도 도무지 정리가 안 됩니다(ㅋ;;) 천문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 두서가 없어보이는 시라니요. 그건 아마 우리가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는 시에 익숙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굴원의 초사는 자신의 작품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데 그 감정이란 이렇게 두서 없어보이고, 하지만 격렬한 것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저번의 이소도 그렇지만 천문을 비롯한 굴원의 초사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이 벌써 마지막이네요. 여름도 마지막이고요. '여름에 시를 읽어야 한다!!'고 시작된 강의였는데 말이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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