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 1 6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7-30 18:42
조회
115
(1) 이소(離騷)

초사의 대표적인 시 이소(離騷)는 굴원이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동양문학의 양대산맥 중 하나이지만 아무래도 연구가 적은 시이기도 하죠. 이소는 <고문진보> 후집에 처음에 실려 있는데, 이 후집은 사실 산문집입니다. 그렇다면 이소는 산문인가? 아니면 운문인가? 확실히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개 이소는 운문문학과 산문문학 사이인 사부문학의 시초로 봅니다. 주자는 이소를 '이소경(經)'이라고 하여 이소를 경으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소를 충신의 노래로 해석했지요. 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노래이니만큼, 근래의 연구자는 이소를 무가의 일종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어떨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이소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굴원(B.C. 353?~278?)의 생애는 두명의 초나라 왕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바로 초회왕과 초경양왕입니다. 일단 굴원은 기원전 313년 (초 회왕 16년)에 1차 유배를 떠납니다. 이때는 1년만에 바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상관대부 근상과의 갈등으로 수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초 경양왕 때 2차 유배를 떠납니다. 이때는 10여년동안 수도에서 굴원을 불러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에 상심한 굴원은 단오날 자살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살면서 두 번이나 유배를 다녀온 굴원의 시는 조선의 유배문학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유배문학의 특징은 군주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군주는 항상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칭하면서 왕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주변의 소인배들이 문제라고 노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군주가 어서 그 소인배들에게 빠져나와 정도를 회복하고 자신을 돌아오게 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이 '이소'를 비롯한 유배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유배지에서의 쓴 시, 이소(離騷). 그래서 이 제목을 풀이하는 방법도 세 가지나 됩니다. 첫번째는 어려운 시대에 근심을 만난다는 뜻(주자가 이렇게 풀었지요), 둘째는 왕을 떠나서 겪는 근심, 그리고 세 번째는 큰 근심이라는 뜻입니다. 어쨌든 근심섞인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이 시는 총 375구, 2490자의 장편시입니다. 유배지에서 지었기에 극도로 고립된 화자가 매개자조차 없는 상태에서 하소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요. 그런데 하소연 할 데도 없으니 그걸 듣는 상대로서 하늘이 등장합니다. 하늘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하늘이시여' 하고 울부짖는 것이지요. 또한 이소 안에는 굴원의 역사의식 또한 드러나는데, 이는 공자와 유사합니다. 즉 요, 순, 우 탕, 문왕이 대대로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역사관입니다. 다만 공자와 달리 이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담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소의 특징은 과장, 반복, 열거입니다. 감정과잉이 섞인 현란한 문체, 반복되는 자신을 표현하는 이미지, 거듭 장소의 이동이 열거되지요. 이소는 놀랍게도 지상과 천상을 오르내리며 여행을 하는 내용입니다. 초나라 서울에서 천상으로,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가 저승으로,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지요. 비분과 슬픔으로 얼룩진 지상에 반해 천상은 가볍고 화려하기만 합니다. 이런 곳을 왔다갔다 하는 내용은 일종의 몽자류 소설, 그리고 액자구조의 소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아무래도 자아분열끼(?)가 보입니다. 지상의 나와 천상의 내가 분열되는가 하면 이유없이 바뀌기도 하거든요. 아무래도 하소연 할 데 없는 외로운 처지이다보니 분열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이소는 자기소개로 시작됩니다. 집안, 출생, 이름, 자질, 포부 등등 자신의 모자람 없는 프로필을 읊고 시작하지요. 그리고 이런 자신을 차버린(!) 군주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나타냅니다. 이때 특징은 난초, 창포, 향초 등 고귀한 덕을 꽃에 비유한다는 점입니다. 초사에서는 덕이나 아름다움을 후각 이미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남방의 문학이다보니 물비린내 등 후각에 특화된 것 같습니다. 군주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부하는 과정도 꽃을 심는 것으로 설명하는 등 꽃과 그것의 향기가 주된 이미지입니다.
굴원의 시를 읽는 방법은 1. 굴원이 호출하는 인물 리스트를 만들고 2. 굴원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비유와 동원하는 언어를 확인한 다음 본문을 읽는 것입니다. 안 그럼 글자 찾다가 세월이 다 간다고 해요^^;; 무슨 꽃인지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 다음에 이게 인물인지 아닌지 고민하다가 지치는 거죠. 굴원이 자주 소환하는 인물 중 하나는 팽함(彭咸)이라는 인물입니다. 굴원의 작품에만 여러번 등장하는 인물인데, 은나라의 현대부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에 투신자살한 사람인데, 멱라수에 몸을 던진 굴원이 소환할만한 인물 같습니다.
유배문학의 시초답게 이소에는 여성화자가 등장합니다. 굴원 자신이 여성화자가 되어 질투로 버림받은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를 전하지요. 이때 화자의 감정은 불같이 치솟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죽은 누이 여수가 등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꿈, 귀신, 굴원의 또다른 자아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쨌든 이 누이가 하는 말은 굴원을 진정시키는 차가운 말입니다. 누이는 왕에 맞서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니까 그런 일 하지 말라고 하지요. 이때 재밌는 건 우의 아버지 곤에 대한 해석입니다. 원래 <사기>나 <서경>을 보면 곤은 무능한 신하이지만 여기서는 순에게 간언했다가 죽은 충신으로 나옵니다. 이런 건 북방문학과 다른 남방문학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곤은 자기 부족에 충성한 사람이고 우는 북방에 항복하여 포섭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굴원은 悔라는 글자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후회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후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말을 많이 씁니다. 불의한 세계와 화자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죠.
이런 지상을 못참아서 굴원은 천상으로 날아 오릅니다. 그런데 천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지상과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것을 화자는 곧 알게되지요. 왜냐하면 제흔이 천문을 열어주지 않았거든요. 거기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으나 실패하기만 합니다. 결국 천상에서도 있을 곳을 못 찾은 화자는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점쟁이를 찾아가지요. 점쟁이와 무당은 죽은 누이 여수가 하는 말처럼 현실적입니다. 너를 알아주지 않는 왕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충고하지요. 이때 점쟁이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면서 도취적인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매우 이성적이죠. 사실 여기서 제정신 아닌 사람은 굴원밖에 없습니다. 왜 목숨을 걸고 세계와 싸우는지, 왜 도망가지 않는지 굴원도 계속 자신에게 물어봤던 것은 아닐까요? 굴원은 결국 이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고 다시 하늘로 갑니다. 이번에는 하늘문도 닫혀 있지 않습니다. 굴원을 맞아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굴원은 고향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종도 말도 울면서 돌아보고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생을 마감하지요. 이때 화자 본인이 아니라 마부와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표현은 더 가지 못하는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소의 화자는 지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초사의 특징, 난사亂辭라는 정리글을 마지막에 덧붙입니다. 핵심을 다시 말해주는 주제문을 혹여 독자가 잊을까 붙여주는 것이지요.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기껏 천상까지 가서 다시 돌아온 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지상이든 천상이든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애초에 하소연할 곳도 없어 하늘에 대고 말하고 죽은 누이나 점쟁이와 겨우 말을 트던 화자였으니까요. 그는 결국 "팽함이 있는 곳을 따라가리라" 하며 이 시를 마무리 짓습니다.

(2) 구장(九章)
'구장'이란 사실 후대에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굴원의 작품 9개를 묶어 읊었다고 해서 '구장'이지요. 각각 다른 시기에 지어진 시로, 주자는 굴원이 추방당한 후 임금을 걱정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감상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감정에 의해 촉발되어 쓴 것이므로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발분하여 글을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자가 작품 순서를 정했는데 주로 방축과 유랑을 내용으로 하고, 주된 감상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인(임금)에 대한 걱정입니다.
전체 1

  • 2018-07-31 15:54
    굴원의 미인사랑, 어허어허 하늘을 두드리네.
    마지막에 하늘문 앞에서 고향을 돌아보던 굴원의 심정은 '울컥' 아니었을까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