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181011 소생 플러스세미나 황지팀 샤나메 정리 및 후기

작성자
황지은
작성일
2018-10-14 15:00
조회
108
저희 팀의 <샤나메> 토론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일단 저희 팀은 페르시아 문화가 이슬람에 의해 소멸되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샤나메가 집필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샤나메>에게서 볼 수 있는 페르시아 제국이나 시아 이슬람의 특성을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1. 선악의 대립


1) 기운의 배치
페르시아 지역에 천 년 이상 주요 종교로 자리매김해온 조로아스터교는 선악의 이원론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페르시아인들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실마리를 <샤나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저희 팀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선악의 대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식적인 이미지는 천사와 악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한 의도로 무장한 천사와 오로지 악한 의도로 똘똘 뭉친 악마. 우리의 내적 갈등은 흔히 이 둘의 싸움으로도 표현이 되곤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천사와 악마로 대표되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 사건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테마가 익숙하죠.
  그런데 <샤나메>에서는 선악의 대립 구도가 인간의 내면적 자아, 주체성, 인격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샤나메>에서 선악은 일종의 ‘외부적 기운’으로 묘사됩니다.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아리만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인격이 악해서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악을 관장하는 신이 우리를 전유할 때 우리는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선과 악’하면 흔히 생각하는 권선징악의 논리도 이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이 계속 선으로 머무는 것도 아니며 악이 선에 의해 절멸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카이카우스)는 정의의 칼로 모든 근심을 없앴으며, 온 세상을 초목으로 덮었다. 신이 그를 지지했으므로 아리만은 해악의 손길을 뻗칠 수 없었다”(117).

“하지만 이렇게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으니, 장미의 정원에서 가시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세상이 점점 부유해지면서 이집트 족장들이 반항하는 수위가 높아졌고, 그 나라 백성들은 이란에 대한 복종을 그만둬 버렸다. 하마베란의 왕도 그에 동조하여 페르시아의 간섭에서 벗어나길 바랐다”(118).

  위의 인용문처럼, ‘선의 시대’가 지속하려 하면 그 평화를 깨려 하는 ‘악의 반항’이 일어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샤나메>에서의 악은 왜 절멸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일까요? <샤나메>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은 부흥되고 절멸되어야 하는 특성이 아니라, 만물의 운동 원리를 알려주는 기운 배치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2)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에는 독특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과 악의 대립은 아후라 마즈다(절대신, 유일신)의 두 아들로부터 시작되며, 아후라 마즈다 자신은 선과 악을 초월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샤나메>에서도 오르마즈드(아후라 마즈다)는 악의 신 아리만과 직접적인 대립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세계에서 직접 선을 구현하려 하지도 않고, 선한 방향으로 인간을 조종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악의 신 아리만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장해 인간 세계에 직접 개입해 들어가 그의 세력을 넓히려 합니다.
  이는 조로아스터교가 가지고 있는 ‘메녹’과 ‘게틱’이라는 분리된 세계관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녹은 순수한 영혼의 세계, 내세이며 게틱은 물질적 세계, 현세를 뜻합니다. 악의 신 아리만은 오직 게틱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에게 아리만이 개입하는 현세는 내세보다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었을까요? 이 세상은 완벽하고 순수한 저 너머의 세계와 달리 아리만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따라서 불완전합니다. 이러한 세계 감각은 시아 이슬람의 그것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세계를 드러나는 가시적 세계인 표층 세계와 드러나지 않지만 실재하는 심층 세계로 나누는 시아 이슬람은 표층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고 불완전하지만 심층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며 완전하다고 봅니다.


2. 복수와 혈통

선악의 이원론 구도가 <샤나메>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주로 ‘복수’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복수는 개인적인 원한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가문 대대로 이어지는 오래된 ‘미션’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카이 코스로는 죽기 전 “복수를 끝마쳤으니 할 일을 다했다”고 이야기하며 죽음을 준비하죠. 이들에게는 ‘나의 삶’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이루어야 할 어떤 것(복수)이 이미 정해져버린 느낌입니다. 마치 현세의 임무는 복수라는 듯.
  현실의 고통에 대한 감각이 복수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요? <샤나메>에서는 구체적 복수의 대상이 정해져 있지만 구체적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그것이 실제적 대상에게 복수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자기 바깥으로부터 찾는 것이죠.


3. <샤나메>의 효과

맨 앞에서도 잠깐 말씀 드렸듯이 <샤나메>는 페르시아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왕의 지원 아래서 집필된 국가 단위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페르시아 왕의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 국가의 민족관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샤나메>라는 책을 통해 무얼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후대에게 교육시키는 목적이 전부인데, 뭔가 다른게 있을까요? 책 자체가 ‘이슬람’으로 환원되지 않는 예외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저항의 행위일까요?
  아무튼 이슬람 시대에 지어진 <샤나메>의 존재는 ‘이슬람’하면 그 이름 아래 법 체계나 문화 관습이 통일되어 있는 어떤 것으로 상상하기 쉬운 우리의 사고 습관에 균열을 냅니다. 이슬람의 지배 아래서 일어났던 이런 운동들이 흥미롭습니다.

적는 과정을 통해 보니까 <샤나메>가 잘 정리가 된 것 같지도 않고 새삼 어렵네요 ㅠ.ㅠ 담시간에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요! 그럼 다음주에 봐요~
전체 3

  • 2018-10-15 12:49
    싸우고, 또 싸우고, 잠잠하나 싶으면 또 싸우고. 끝없는 싸움. 쉼없는 분투. 그 어떤 도덕도 무화시키는 온갖 난리들. 그리고 그 복수의 댄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휘말려들어가던지요.
    실로 영원한 것에 대한 절대부정이 있었습니다. @.@

  • 2018-10-15 12:55
    선과 악을 얘기하는 이유가 "만물의 운동 원리를 알려주는 기운 배치의 변화 과정"? 뭔가 아리송해지네요. 그리고 시아파가 현세를 어떤 식으로 감각하기에 그와 비슷한 게 샤나메에서도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도 궁금하네요. 팀 발표에서 풀어주시겠죠?

  • 2018-10-16 10:11
    오오 반장님 토론때 막 던진 걸 훌륭하게 주워담으셨네요ㅎㅎㅎ 앞으로도 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