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4학기 1주차 후기

작성자
윤수연
작성일
2021-10-25 02:53
조회
191
벌써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에세이도 못 내고 4학기가 밝을 줄은 몰랐는데, 이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할 일도 미처 못한 상태지만 새로운 조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선생님들과 토론을 하니 푼수같이 좋기도 합니다. 한 번씩 창피함과 죄송함이 솟구쳐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도 있었지만요.

니체 시간에는 새로운 저서인 즐거운 학문을 읽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번 범위를 읽으며 니체가 말하는 병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이 우리를 강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의미가 병을 겪으며 병을 견딜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이 와도 개의치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다르게 말하면 병에 무감각해지는 신체가 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병과 덕은 훨씬 더 가까운, 애초에 한 덩어리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운이나 역경, 증오, 질투, 고집, 불신, 냉혹, 탐욕, 폭력 등은 이것들이 아니라면 덕의 위대한 성장이 불가능한 유익한 환경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병을 앓을 수 있는 자만이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균형에 이르기 위해서는 불화가, 부조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병을 통해 새로운 균형에 이를 수 있을까요? 니체는 질문, 물음을 통해서 수많은 종류의 건강상태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변형의 기술이 바로 철학이다’라고 말입니다. 집요하게 물어가는 과정은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피로해진 사람은 묻는 것을 그만둡니다. 에세이를 멈춰버린 저처럼요. ‘이러한 부조화의 조화 상태, 현존재의 경이로운 불확실성과 애매성 한가운데에 머물며 물음을 던지지 않는 것, 물음의 욕구와 기쁨 앞에서 몸을 떨지 않는 것, 심지어 이 물음을 던지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조차 하지 않고 그에게서 피로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 이것이 바로 내가 경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를 참 쉽게 쉽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에서는 말로만 듣던 그리스 비극을 처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출생의 비밀’의 원조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는데, ‘그리고 나는 듣지 않을 수 없고, 그래도 기어이 들어야겠다’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어쩌다 삶이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이디푸스의 ‘죄’는 무엇일까요? 길 가던 사람을 죽인 것이 죄였을까요? 운명을 인간의 힘으로 달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 죄였을까요? 아니면 진실을 기어이 들어야겠다는 집요한 물음이, 애초에 오이디푸스의 탄생이 죄였던 걸까요. 이걸 누군가의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인을 찾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는 이 비극은 ‘신들의 장난’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이런 운명이 나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원래 이렇고, 그러니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그리스인들은 왜 비극을 통해 끊임없이 상기했던 걸까요? 채운 샘의 강의에서 와닿았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가장 강할 때 삶의 가장 비참한 곳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물어가다 보면 항상 내가 원치 않았던 진실이 튀어나옵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보아야 하고,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걸 겪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가장 비참한 인생을 무대 위에 올리고, 단순히 구경꾼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코로스의 합창과 함께 힘의 고양을 느꼈던 그리스인들의 강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참 편하게 공부를 했고, 오만한 마음으로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 꼴을 계속 보느니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생각을 멈추고만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도망치다 여기까지 왔네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글을 놓지 않으신 샘들의 힘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어쨌든 이제부터라도 써봐야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다른 건강 상태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도 가져보겠지요. 아주 그냥 엉망으로 놓여있는 제 자신이지만 스스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심정으로 놓지만은 말아야겠습니다.
전체 3

  • 2021-10-26 09:34
    발을 다친 요즘 제 생활이 균형이 무너지고 궤도에서 일탈한 듯 합니다. 지금의 제 상태를 '현존재의 경이로운 불확실성과 애매함' 한가운데 놓인 기쁨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건강함을 키워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글을 읽으며 무너지던 생활리듬을 잡아봅니다.

  • 2021-10-26 11:23
    가장 강할 때 가장 비참한 자리를 직시할 수 있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네요. 그러고보면 니체가 강함을 측정하는 지표도 언제나 얼마나 많은 모순이나 울퉁불퉁함을 허용할 수 있는지, 자신과는 전혀 다른 것에 영향 받고 감염될 수 있는지 등이었던 것 같습니다.

  • 2021-10-26 19:06
    자기 멱살 잡고 가기는 좀 힘들죠. 걱정말아요~~그대. 옆에 저도 있으니. 멱살을 서로 크로스해서 잡아 보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