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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 NY 3학기 10주차 후기

작성자
인영
작성일
2021-10-15 04:05
조회
128
3학기 10주차 후기 - [나쓰메 소세키] 길진숙 선생님 특강

소세키의 ‘근대’에 대한 질문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근대’란 뭘까? 근대는 개인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이 자유를 통해 원자화된 개인들이 정말 자유로운가? 라고 소세키는 묻습니다. 근대 개인들은 이성, 과학, 합리주의를 통해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모든 책임도 개인에게 부여됐고, 그에 따르는 양심의 가책도 내면화됩니다. 또 자유가 중요시되다 보니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개인 간에 무한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이런 사회 안에서 인간관계는 서로를 오히려 구속하며, 이성을 앞세워 본능을 숨기고, 외면과 내면이 분리되어 자의식을 한껏 꾸미고 있는 근대인은 자유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소세키는 이런 근대의 개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마치 현미경으로 보듯 관찰하고 근대인의 비대해진 내면의 출현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추적합니다. 그는 근대 국가, 민족이라는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으로 근대 개인이 스스로 구원할 길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소세키가 이 질문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성장 배경과 근대인으로 느끼는 정체성을 길진숙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타자에 의한 자기 인식, 경계와 이중 구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세키는 후처의 자식으로 태어나 두 번 양자로 보내지고 형들의 죽음으로 20살이 넘어 ‘나쓰메’라는 성으로 친부모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양부모는 양육비로 240엔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소세키 작품에 가족과 돈이라는 문제가 주된 소재가 된 이면엔 소세키의 남다른 겪음이 있었습니다. 서구로부터 타자화된 일본은 이성으로 각성하지 못한 문명, 전통과 야만의 사회로 규정되고, 메이지 유신은 모든 가치를 국가 제도에 편입시켰습니다. 국가 주도 아래 시행된 의무 교육 제도는 국가주의, 부국강병, 군국주의 안에서 개인을 강조합니다. 소세키가 영국 유학하였을 때를 상상해 보면 국가에서 뽑혀서 갔으니 재능도 뛰어났을 것이고 사명감과 자부심도 있었을 것 같은데, 스스로 ‘후지산 토끼가 런던 한복판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런던의 풍경에 압도되고 서양인 속에서 느꼈을 신체적 열등감과 정서적 외로움은 신경쇠약을 일으키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의 섬세한 성향도 한몫했을 것 같고요. 소세키는 영국 유학하는 동안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뭐지?’라는 회의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사회학, 심리학, 과학 등 여러 학문을 탐구합니다. 그의 고민은  ‘일본은 뭐지? 서구는 뭐지? 그렇다면 나는 뭐지?’라는 질문에 이릅니다. 그리고 학교, 회사, 군대 등 근대식 제도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경계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자기 본위’의 길을 찾습니다.

길진숙 선생님은 소세키의 ‘자기 본위’가 의미하는 바는 자기가 주인이 되는 개인주의이며, 이는 민족, 국가, 가족, 부모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 행복을 위해 사는 삶이지만, 조건 없는 자기중심주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자기 본위’는 자기 고유성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단독성이며 일회적인 실천입니다. 소세키는 이러한 개인주의의 비전으로 자신만의 문학을 만듭니다. 서구도 일본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제도로 규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어떤 정체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단 한 번 창작으로 실행되고 예술 작품으로 드러나는 자기 고유성! 소세키는 근대 안에서 근대를 넘어서고자 경계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이러한 ‘자기 본위’를 강조하면서 자기 성찰을 계속 질문합니다. 길진숙 선생님은 그것이 우리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근대인의 자의식이 낳는 고뇌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근대 제도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근대를 구성하는 것은 위대한 인물들만이 아니라 낱낱이 원자화된 개인, 한낱 개인이지만 그 개인이 시대 전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자신 안에 숨기고 있는 진짜 욕망하고 있는 것, 개인 안에 충동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사는 모습, 개인인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뭔가 이겨보려고 또 뭔가 돼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공허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내면 풍경 즉, 자의식에 갇혀 있는 것이 근대인의 모습입니다. 길진숙 선생님은 소설 속 모든 인물이 모두 집요하게 자기 인식에 이르려는 인물이라는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허위, 가식, 충동을 낱낱이 드러내 보는 것이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 소세키의 언어를 섬세하게 보고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세키의 작품 속에서 가족과 돈이 개입되고, 자유연애와 결혼제도라는 모순 앞에서 환상과 현실이 마주했을 때,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우정, 사랑, 자유, 가족, 돈, 관계 등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세키적 언어에 내면이 탈탈 털리고 입안이 씁쓸해집니다. [명암]에서 쓰다와 기요코가 마주 앉은 장면을 수묵화처럼 그리는 소세키의 묘사에 마음을 뺏기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천황, 노기, 선생님의 죽음이 함축하고 있는 메이지 시대의 몰락. 선생님도 ‘자기 본위’의 길, 자기 성찰에 이르고자 했지만 자기 내면으로 도피했고 그 시대에서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이전의 시대 몰락 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가 시작될 수 있음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요? 전혀 다른 생성을 위해 몰락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근대라는 제도는 그 경계에서 벗어난 규정을 모두 배제합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다’라고 규정한 말과 생각 속에는 ‘인간답지 않음’이란 경계, 배제가 이미 동시에 작동됩니다. 작가의 사유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존의 관념과 규정을 허무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아닐까요.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제도화된 규정, 배제라는 경계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실천적 사유, 자신을 타자화하여 볼 수 있는 자기 인식에 이르고자 시도해 보는 자기 질문을 한 마디씩이라도 배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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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5 19:17
    니체도 루쉰도 그랬지만, 소세키에 대해 배우면서는 정말로 그가 어떤 중력 안에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냈는지 생각해보게 되요. 그것은 바깥의 누가 줬다고만 할 수도 자기 자신이 부여했다고만 할 수도 없는 무게감인데요. 핵심은 그들이 거기에 짓눌려있지만은 않았다는 것, 계속해서 다른 무언가가 되어갔다는 것에 있는 듯합니다. 그 집요함에 내면이 탈탈 털리고 입안이 쓸쓸해진 저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훔쳐볼 수 있을까요...? 알맹이 쏙쏙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