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3학기 10주차 공지 '파르헤지아와 민주주의'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10-04 16:21
조회
159
공지를 올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ㅠㅠ 후다닥 올립니다!

다음 시간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4학기에 다시 10주에 걸쳐 글을 써야 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하핫. 4학기에 쓸 에세이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개요를 써 오시면 됩니다. 《에티카》는 5부 정리27(222쪽)까지 읽으시면 되고요. 《주체의 해석학》은 남은 두 개의 강의를 마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주체의 해석학》에 대한 내용은 현정쌤의 후기에 정리가 잘 됐으니 참고해주세요. 어느새 《에티카》도 5부에 접어들었네요. 네그리는 부르주아적 이상주의에 다시 사로잡혔다고 지적하고, 마트롱은 현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사유가 돋보인다고 해석했던 ‘그 5부’입니다. 읽기 자체는 1, 2부보다 어렵지는 않으나 이해하기는 이전의 내용들보다 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전에 채운쌤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현자가 자신의 윤리를 구성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읽으면, 《주체의 해석학》과 연관시킬 지점이 여럿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자의 독특한 사유 훈련이 인상적이었죠.
“만약 우리가 마음의 움직임 또는 정서를 어떤 외부 원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떼어내어 다른 생각들과 결합한다면, 외부 원인에 대한 사랑이나 미움 및 이러한 정서들로부터 생겨나는 마음의 동요들은 파괴될 것이다.”(5부 정리2)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는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분석하죠. 채운쌤도 지난 강의 중에 잠시 언급하셨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은 스토아와 통하는 지점이 적지 않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 관념을 외부 원인과 떼어내고 다른 관념과 결합하는 조작 훈련이 그렇죠. 잠시 ‘결합해야 할 다른 관념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뒤의 맥락을 읽어 보면 그것은 ‘참된 관념’입니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 참된 관념은 적합한 관념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관념을 조작하는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참된 관념과 결합시키기’가 아니라 ‘이성의 명령에 따라 관념의 질서를 조직하고 연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딸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에게 ‘좋은 아버지’라는 표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냐는 에픽테토스의 ‘표상의 점검’도 생각나네요.

이와 반대로, 지금 사회에서 관념 혹은 앎은 어떤 훈련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모든 것이 용인되죠. 그런데 그렇게 용인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모두가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할 수 있게 됐을 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분의 사건으로 ‘그렇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현의 자유가 거의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유튜브 공간에서는 혐오성 댓글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조회수와 구독자를 올리기 위해 그러한 댓글을 조장하는 영상들도 제작되죠. 그래선지 때로는 표현의 자유가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거다’라는 매우 유아적인 태도로 읽히기도 합니다. 왜 표현의 자유가 요청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강의에서 채운쌤께서 푸코의 파르헤지아와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를 연결시키셨죠. 푸코에게 파르헤지아,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기’는 일련의 규칙과 관계 속에서 진실의 주체가 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게임입니다. 모두가 말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인물만이 가능해죠. 푸코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을 분석하면서 제자에게 스승이 혹은 왕에게 현자만이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진실 말하기에는 관계가 깨지거나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위험’이 동반됩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정말 말할 타이밍을 재고, 내용을 고르고 등 역량을 발휘해야만 하죠.

비슷하게 스피노자에게 권리는 그만큼의 역량을 발휘할 때만 인정됩니다. 즉, 말할 권리는 그만큼 비판적으로 말할 역량을 갖출 사람에게만 용인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의 참여가 다른 사회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됩니다. 대중의 여론도 그런 실험 중 하나라 볼 수 있겠죠. 따라서 정치적으로 대중의 의견을 공론화하고 수렴하는 장을 성립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 이미 저희가 경험하고 있듯이, ‘비판적 말하기’는 대체로 실패합니다. 대체로 정념에 휩쓸려서 말하죠. 유튜브만이 아니라 ‘비판적 말하기’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푸코의 파르헤지아와 스피노자의 민주주의. 그리고 이 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 음... 이번 학기에 다시 철학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어떻게 철학한다고 말했는지 스스로 참 신기하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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