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10. 백구(白駒)여 오라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1-21 18:16
조회
812

10. 백구(白駒)여 오라


천자문을 읽다 뜬금없는 장면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鳴鳳在樹 白駒食場(명봉재수 백구식장), 우는 봉황새가 나무에 있고 흰 망아지가 마당에서 풀을 먹는다’. 봉황새나 망아지에게 큰 관심이 없던 나는 ‘뭐지?’ 싶었다. 그런데 이 구절 꽤나 멋지다.


여기서 봉황새나 흰 망아지(말의 새끼)는 뛰어난 인재를 말한다. 봉황은 상상의 새인데 예부터 고귀함이나 신령스러움을 표현했다. 사실 봉황은 천자를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청와대 문에는 봉황새 장식이 있다고. 봉황새가 나무에 있다는 것은 뛰어난 군주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책에서는 ‘길사(吉士), 곧 선비가 거주할 곳을 얻은 것’으로 풀이했다. 흰 망아지(白駒)도 마찬가지다. 백구에서 포인트는 백(白). 흰 빛을 뿜어내는 모양을 통해 인간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구절을 다시 읽어 보자. ‘鳴鳳在樹 白駒食場 (우는 봉황새가 나무에 있고 흰 망아지가 마당에서 풀을 먹는다)’. 선비가 살고 있으며, 흰 빛을 뿜어내는 멋진 인간이 편히 쉬고 있다. 이것은 동양의 무릉도원일까. 우샘에 따르면 이 장면은 군주의 역량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군주의 훌륭함은 인재가 살게 하는 데에 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군주의 능력은 일종의 ‘살리는 힘’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풀과 나무도 자라게 하고(化被草木), 그 힘은 사방에까지 미친다(賴及萬方). 뛰어난 군주 곁에 뛰어난 이들이 모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인재인가는 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鳴鳳在樹 白駒食場(명봉재수 백구식장)’은 지식인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우리 삶에서 인재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鷄鳴狗盜(계명구도)’라는 고사성어가 말해주는 것도 그렇다. 누가 인재인 것일까. 똑똑한 사람? 힘이 센 사람? 아니면… 돈을 잘 버는 사람?(^^;) 맹상군은 ‘닭 울음 소리를 내는 재주’ 그리고 ‘개와 같이 좀도둑질을 잘하는 재주’ 덕택에 살았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사람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힘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곁에서 사람들은 어떤 힘을 펼쳐내는가가 곧 그이의 역량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이번 구절은 반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더 흥미롭다. 어진 이들이 등을 돌린다면 그 나라는 이미 쇠망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닌가. 나는 봉황이나 백구는 아니니 ‘내가 머물 곳이 없구나!’하고 탄식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내 곁에 뛰어난 이들이 모이고 있는가. 인재고 자시고 누구 하나 옆에서 살게 할 힘은 있는 것일까. 덕화가 사방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풀과 나무가 절로 자라는 데 까지는 바라기 어렵더라도 말이다. 사실 나라 걱정은 하지도 않고 군주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다만 뛰어난 인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결국 죽는 것은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鳴鳳在樹 白駒食場(명봉재수 백구식장)’은 군주의 능력이란 인간을 알아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이 능력을 바로 우리가 어떻게든 배워야 할 것 같다.

전체 3

  • 2016-01-24 15:32
    '인재고 자시고 누구 하나 옆에서 살게 할 힘'을 기르는 게 공부겠죠. 공부 마당에 자라는 이 글의 풀 정말 맛나요, 왈왈!

    • 2016-01-25 16:26
      ^^
      그런데 쓰고 아차 싶었던 것이... 이번 구절의 '백구(白駒)'는 멍멍이 백구(白狗)가 아니고 흰 망아지(白駒) 그러니까 말(말 새끼?)라고 ... 강조를 하려 했는데^^.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6-01-25 18:07
        어쩐지.. 강아지가 왜 풀을 먹나 했어요. 흑흑 이러니 한문 공부를 해야 한다니까요. 에잇 난 망아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