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2- 2주차 후기

작성자
작성일
2021-06-15 19:53
조회
90
이번 주는 조지 커퍼드의 ‘소피스트 운동’ 4장까지 읽고 토론을 시작했는데요. 본격적으로 소피스트와 대면하기 위한 준비운동과 비슷했습니다. 서두에서 제시하고 있는 소피스트들이 논의했던 문제들이 무척 현대적인 담론이라서 소피스트들이 세련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저자는 인식론과 지각 이론의 문제 (현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혹은 언어와 실재의 관계)에서부터 인간중심적인 진보에 대한 신념에 대한 문제(지식의 사회학), 신, 평등, 정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소피스트들이 제기한 논의들에 대해서 플라톤의 안경을 벗고 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남긴 문헌이 없어서 소피스트하면 궤변만 들어놓는 엉터리 사기꾼이지 진정한 철학자는 아니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앞으로 진행될 세미나에서 어떻게 해석이 달라질지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소피스트는 연금술사가 과학자로 평가받지 못하지만 과학적 발전에 공헌한 것처럼 소피스트들도 이것저것 마구 철학(?)한 공헌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역사적 발전의 결과가 오늘날의 결실이라는 전제와 더불어 변증법적 진보에 대한 전제가 있는 것이더군요. 과연 진보가 무엇이고 “누가” 진보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걸려 넘어지는 부분인데요. 거듭되는 발전이란 실은 욕망을 정교하게 하는 장치 혹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얘기를 나눴어요. 예를 들어 더 편리한 것이 나오는 순간 불편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한다는 명목을 가진 기술의 발전이 전에 없던 새로운 노동을 창출하기도 하는 것들도 있구요.

소피스트에 대한 해석은 크게 실증주의자와 헤겔의 관점에서 극복되어야 할 주관주의자로 양분되는데 저자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중도적 입장을 두는데요. 소피스트가 실증주의라고 보는 관점은 경험을 중시하고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p19)이라고 여긴 점 등을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헤겔의 관점에서 보는 소피스트에 대한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헤겔은 정신이 정반합의 발전적 전개과정을 겪어서 종국적으로 Universal mind에 도달한다고 봤는데 그러한 점에서 소피스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나아가기 위한 정반합의 단계에서 필요한 등장요소라고 봤습니다. 그나마 헤겔 덕분에 소피스트들은 철학사에서 구석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와 분리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고 해요. 고대 그리스는 타인에게 복종하는 노예를 그야말로 극도로 혐오했나 봅니다. 소피스트는 돈을 가지고 오는 온갖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에게 지식을 팔았다는 점에서 돈의 노예로 취급당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소크라테스는 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제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소피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죠. 소피스트가 돈을 받았다는 게 크게 문제인가 싶었는데 크게 문제가 되더군요. 소피스트는 제자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만 보아도 자유가 없고 스스로 노예가 된 자들이니까요. 플라톤이 자본주의에 초대되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노예 천지에 공기마저도 돈을 주고 사야 할 텐데.....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정의도 소피스트를 역사에서 배제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합니다. 이미 철학에 진리를 위해서 봉사하는 자들만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는 소피스트들의 경험주의나 회의주의는 철학의 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초대권이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진리 추구를 위한 삼단논법에는 이미 논박하는 양자의 공통된 “전제가 놓였다”고 하는데, 소피스트의 궤변은 “문장이 놓인 것”일 뿐이고 상대를 이기기 위한 기술로서 궤변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으니 무척 얄밉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진리 추구의 당위에서 자유로운 소피스트들을 궤변론자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를 다음 세미나에서부터 더 자세히 나올 것 같습니다.

3주차는 [소피스트 운동] 9장까지입니다.
전체 1

  • 2021-06-16 15:57
    충실한 후기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 내내 우리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식을 진리와 묶으면서, 진리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소피스트적 사유가 사유가 아닌 것으로 배제되어야 했던 역사에 대한 푸코의 분석이 흥미로웠죠. 그런데 동시에 당대에 소피스트들이 비난받은 이유를 보면 이것이 단지 인식의 문제였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피스트들은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때 문제는 단지 돈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라기보다는 가르칠 상대를 직접 고르지 않고 돈만 주면 누구든 학생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가르침의 행위 자체가 주체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라는 게 또 놀라웠습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단순한 구도로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우리의 관점을 실험해가면 좋을 것 같네요. 목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