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7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4-20 16:25
조회
124
지난주에 이어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을 읽었습니다. 지난번 스티글레르의 논의도 그렇고, 이번에 일리치의 논의에서도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무용지용’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일리치가 ‘그림자 노동’을 분석하는 이유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벗어나 호모 아르티펙스 수브시스텐스(자급자족적 삶의 기술을 갖춘 인간)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인간은 날 때부터 ‘필요’를 가진 존재이고 자연의 ‘희소성’을 두고 서로 싸워야 하는 존재”라고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죠. 저에게는 일리치의 이러한 기획이 ‘소비’가 아닌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 삶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스티글레르와 키루의 대담집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 시대에서 그것은 함께 공부하는 삶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고요!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 상식처럼 있었는데, 이것도 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사고였습니다. 일리치는 인간이 충족해야 할 선험적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방식이 자명한 진리가 아님을 역사적으로 분석합니다. 그에 따르면, 중세시대 사람들은 자급자족으로 실존을 도모했습니다. 여기서 자급자족은 ‘내 것은 내가 챙긴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공동체에 속한 자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었죠. 반대로 “본격적인 의미로 임금 노동에 조상하는 사람은 과부나 고아처럼 오갈 데 없는 사람, 따라서 공동체의 공적인 부조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181) 중세시대에 “극빈자란 디베스(dives, 부자)의 반대말이 아니라 포텐스(potens, 능력자)의 반대말”이었던 것이죠. 즉, 공동체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극빈자였고, 임금 노동자였습니다. 비약이지만, 다른 사람과 ‘필요와 충족’의 관점으로밖에 관계 맺지 못하는 사람의 실존은 정말 협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왜 협소할 수밖에 없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스피노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체크만 해놨습니다.^^; 어쨌든 임금 노동이 생계를 유지하는 주된 수단이 아니라 자급자족의 보완물이었다는 것, 이 구도가 근대사회에 오면서 전도되었다는 분석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급자족에 대해 얘기할 때조차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자급자족의 기술은 단순히 필요를 충족하는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의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는 실천적 앎입니다. 만약 자급자족을 개인적 활동으로 규정하게 되면, 타인과 관계 맺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임금 노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앞에서 지적한 “임금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에 아무런 긍지도 느끼지 않는다”는 지적을 되새기게 되는데요. 일리치가 호모 아르티펙스 수브시스텐스가 돼야 한다고 말할 때도,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기술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활동 속에서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수레 수십 대와 수행원 수백 명을 이끌고도 떳떳한 맹자가 떠올랐는데요. 사람들은 맹자가 말만 많지 실제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맹자 본인은 제후에게 등용되지 않고도 떳떳했죠. 아마 맹자는 자신이 여러 제후들에게 왕도정치를 주장하고, 스스로 그러한 앎을 지켜나간다는 점에서 이미 떳떳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역사는 일치일난(一治一亂)을 반복해왔고, 맹자는 자신만이 치세를 펼칠 열쇠라고 생각했죠. 지나친 자기 자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역사적으로 자신의 실존을 인식한 결과였습니다. 느낌이지만, 인간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계보학적으로 분석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맹자와 일리치의 분석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무용지용’을 해석할 때는 실존을 역사적인 지평에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만 있네요!

다음 주에는 김종철 선생님의 《간디의 물레》를 읽습니다. 어휴, 할 말이 참 많네요! 그리고 저희 마지막 주에 장자를 길잡이 삼아 글을 쓴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ㅎㅎ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전체 2

  • 2021-04-20 18:54
    이렇게 훌륭한 공지를 쓰다니, 이거슨 후기를 쓴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난 글입니다요.ㅋㅋㅋ
    저는 '그림자 노동'을 읽고 인간의 소외에 대한 이해가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활동을 그림자 노동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을 풍부한 삶의 양식에서 소외시킨 것은 아닐까하는 지점을 글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 2021-04-20 19:31
    다들 벌써 에세이 주제들을 잡으셨군요.. 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아서... 기승전 공부로 잡아야 하나??ㅋㅋ 좀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