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세미나

5.27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05-22 22:47
조회
62
이번 시간에는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무척 특이합니다. 자신의 조부모를 인터뷰하고, 19세기 아이슬란드 작가를 추적하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요. 이렇게 하면서 저자가 찾는 것은 우리 목전에 닥친 문제를 정말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우리가 신문과 책에서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 우리가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혀. 이를테면 우리는 ‘지구온난화’ 같은 단어들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기면서 훨씬 사소한 단어들에는 쉽게 발끈한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감지할 수 있다면 이 단어는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80)


지구온난화는 수십 년 동안 들어온 단어이지만 이것을 정말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여전히 멀고 특별한 이야기 같고, 그보다 우리는 이윤이나 투자나 수익 같은 말이 익숙하지요. 자연을 대할 때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고요. 이런 관점에 사로잡혀 있으면 숲을 개발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판단 하에서 이루어질 테니까요.


이 책은 숲을 개발하고 댐을 짓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지 분석하던 저자가, 스스로 빠진 모순을 깨닫고 완전히 다른 길을 찾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댐이 수몰시킨 마을이 가져올 수도 있는 관광수익 대신 시간과 물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기후담론을 접할 때면 우리가 빠지는 함정은 늘 먼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0년 후, 200년 후...도대체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100년 후가 만약 내 손자가 살아갈 시간, 즉 지금의 나와 이어져 있는 시간이라면? 200년의 시간은 사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런 시간이라면? 저자는 이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발굴하기 위해 조부모와 자신의 자식을 인터뷰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100년, 200년 후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럼 100년, 200년 후는 어떤 시간인가. 지금과 전혀 질적으로 다른 물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바로 해수 산성화로 인해서 말입니다. 물이 산성화 된다는 건 뭘까요? 정수시설을 잘 해서 마시면 해결되는 문제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물이 산성화된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해수 산성화는 모든 시간 모든 바다만큼 거대하고 깊은 개념이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물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것에 의존해서 사는 모든 생물의 생존권이 모조리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해수산성화'라는 말은 이 사실을 담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우리의 이해를 돕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에 대한 신화를 발굴합니다. 히말라야 빙하가 사실은 신성한 암소였고, 우리는 그 젖을 마시는 아이들이라는, 인도의 신성한 소 숭배와 북유럽 아우둠라 신화의 접목입니다. '빙하'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접목 시키고 재해석한 이 신화에서 우리는 단지 흐르기만 할 뿐인 물이 아닌 스스로 그 유속을 조절하고 사람들을 기르는 물의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물을 단지 물로 보지 않고, 그것 자체로 어떤 기능과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베리가 말했던 '지구를 주체로 한 신화를 문학가들이 써야 한다'고 말했던 작업을, 이 책의 저자는 진정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시간과 물에 대하여> 끝까지 읽어옵니다.

목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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