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 복습 양화 24~끝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9-07 17:25
조회
85
양화 24~끝

 

子貢曰 君子 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자공이 말했다. “군자도 미워함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미워함이 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고 아래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무례함을 용기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과감하기만 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미워한다.”

 

曰 賜也亦有惡乎 惡徼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以爲直者

“사야,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눈치만 보는 것을 앎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불손함을 용맹으료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고자질 하는 것을 정직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

 

양화 25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

 

양화 26장

 

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받으면 끝이로구나.”

 

四十 成德之時 見惡於人 則止於此而已 勉人及時遷善改過也 蘇氏曰 此亦有爲而言 不知其爲誰也

40세는 덕을 이루는 시기이니 미음을 받는다면 거기에서 끝나고 말 뿐이다. 사람들에게 제때에 허물을 고치고 선으로 나아가기를 권면하신 것이다. 소씨가 말했다. ‘이것 역시 이유가 있어서 말씀하신 것이겠는데, 누구 때문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미자 1장

 

微子 去之 箕子 爲之奴 比干 諫而死

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微箕 二國名 子 爵也 微子 紂庶兄 箕子, 比于 紂諸父 微子 見紂無道 去之以存宗祀 箕子, 比干 皆諫 紂殺比干 囚箕子以爲奴 箕子因佯狂而受辱

미(微)와 기(箕)는 두 나라 이름이다. 자(子)는 작위다. 미자는 주왕(紂王)의 이복형이고 기자와 비간은 주왕의숙부다. 미자는 주왕의 무도함을 보고 떠나가서 종사를 보존했고, 기자와 비간은 모두 간하였다. 주왕이 비간을 살해하고 기자를 가두어 노예로 만드니, 기자는 미친 척 하고 모욕을 받았다.

 

 

孔子曰 殷有三仁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의 세 인한 사람이 있었다.”

 

미자 2장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유하혜가 법관이 되어 세 번 쫓겨났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대는 이제 떠날만하지 않은가?” “도를 곧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쫓겨나지 않겠는가. 도를 굽혀 다른 사람을 섬긴다면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는가.”

 

미자 3장

 

齊景公 待孔子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제경공이 공자를 대우하며 말했다. “계씨처럼은 아니더라도 계씨와 맹씨 중간 정도로는 대우하겠소.” 그러고는 다시 말했다. “나는 늙었으니 쓰지 못하겠다.” 공자께서 떠나셨다.

 

魯三卿 季氏最貴 孟氏爲下卿 孔子去之 事見世家 然 此言 必非面語孔子 蓋自以告其臣而孔子聞之爾

程子曰 季氏 强臣 君待之之禮極隆 然 非所以待孔子也 以季孟之間待之 則禮亦至矣 然 復曰 吾老矣 不能用也 故 孔子去之 蓋不繫待之輕重 特以不用而去爾

노나라 삼경중 계씨가 가장 높고 맹씨가 그 다음이다. 공자께서 떠나신 일은 [세가]에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공자를 만나고 한 말은 아니고, 스스로 그 신하에게 고하여 공자께서 들으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계씨는 강한 신하이니 군주가 그를 대우하는 것은 지극히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를 대우한 이렇게 대우한 것은 아니었고, 계씨와 맹씨의 사이로 그를 대우하였으니 예우가 또한 지극하다. 그러나 다시 번복하여 말하길 ‘내가 늙어서 쓸 수 없다’고 했으니 그러므로 공자께서 떠나신 것이다. 이는 대우의 경중에 달린 것이 아니며 다만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셨을 뿐이다.

 

 

미자 4장

 

齊人 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제나라 사람이 미녀와 악공을 보내니, 계환자가 그들을 받고 삼일간 조회하지 않았다. 그러자 공자께서 떠나셨다.

 

季桓子 魯大夫 名斯 按史記 定公十四年 孔子爲魯司寇 攝行相事 齊人懼 歸女樂以沮之 尹氏曰 受女樂而怠於政事如此 其簡賢棄禮 不足與有爲 可知矣 夫子所以行也 所謂見幾而作 不俟終日者與

계환자는 노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사(斯)다. <사기>를 살펴보면, 정공 14년에 공자께서 노나라 사구가 되셔서 재상의 일을 겸하여 행하셨다. 제나라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해 미녀와 악공으로 그것을 방해했다. 윤씨 말하길 미녀와 악공을 받고 정사에 태만한 것이 이와 같았으니 현명한 자를 소홀하게 대하고 예를 버려두어 함께 일을 할 수 없음을 아셨던 것이고 이 때문에 떠나신 것이다. 이른바 조짐을 보고 일어나 종일 기다리지 않으신 것이다.

 

 

미자 5장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 不可諫 來者 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

초나라 광인 접여가 공자를 지나다가 노래했다. “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쇄하였는가.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간할 수 없고 올 것에 대해서는 추구할 만하니,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오늘날 정치 하는 자는 위태롭나니”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避之 不得與之言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함께 말하고자 했는데, 접여는 빨리 걸어 피해서 함께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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