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5.15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5-11 17:01
조회
90
니나노 일본어에서는 저번 학기에 강독하던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대해 '숙취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다자이 캐릭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강독을 하고 있자면 다자이가 무덤에서 일어날법한 말들을 왕왕 만납니다. 다자이는 자신을 '마이 코메디언'이고자 했지만 그런 건 되지 못했다든가, 다자이는 자신을 '인간실격'입네 하는 말로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실상은 너무나 '제대로 된 인간'을 다른 이에게 '서비스' 하고 있었다고요. 하지만 안고의 말마따나 다자이가 한 1년 잠적 탔다가 장난입네 하고 돌아오면 그것으로 괜찮은 일이지만, 이미 다자이는 죽었고 안고는 그런 다자이에 대해 쓰고 있지요. 삶이라는 링 위를 내려간 다자이는 더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 안고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안고는 <불량소년과 그리스도>에서 내내 술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의 '숙취' 증상과 '얼굴이 달아올라 역정이 나는' 상태를 계속해서 안고의 삶과 죽음에 빗대며 말했지요. 안고가 보기에 다자이의 상태는 술을 마시면서 '자신을 잊고싶다'고 거듭 말하는 주정뱅이와 비슷했습니다. 다자이 '나라는 인간을 잊고싶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자신이 '인간에서 실격당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인간을 벗어난 것도 자기비하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인간'을 필사적으로 갈망하면서 또 지레 그것에 대해 포기해버리고 삶을 놓아버리는 기만에 지나지 않지요. 다자이의 죽음에 대해 말하며 안고는 늘 '살아있음'에 방점을 놓습니다. 아무리 촌스럽고 유치해도 자기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인간'을 단지 '연기'한다는 생각에 취하거나 자신을 잊고싶다는 자기비하에 취하는 것을 안고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안고는 이미 죽은 다자이에게 말합니다. '괜한 핑계를 대지 마!'
안고의 글을 읽으면서 자기비하와 오만은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뭔가에 '실격' 했다는 생각을 하고 괴로워하며 잊고 싶다고 하는 것은, 그 기준에 미쳐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일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요. 물론 다자이는 죽었고, 우리는 안고의 말을 통해서만 다자이의 삶과 죽음을 읽고 있기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안고는 평소 다자이가 제대로 된 인간 역할을 서비스하는 짓을 '저지른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본의와 어긋나는 짓을 하고 후회와 짜증으로 얼룩진 채 있었다고요.

 

酒は、うまいもんじゃないです。僕はどんなウイスキーでもコニャックでも、イキを殺して、ようやく呑み下しているのだ。酔っ払うために、のんでいるです。酔うと、ねむれます。これも効用のひとつ。
然し、酒をのむと、否、酔っ払うと、忘れます。いや、別の人間に誕生します。もしも、自分というものが、忘れる必要がなかったら、何も、こんなものを、私はのみたくない。
自分を忘れたい、ウソつけ。忘れたきゃ、年中、酒をのんで、酔い通せ。これをデカダンと称す。屁(へ)理窟(りくつ)を云ってはならぬ。
私は生きているのだぜ。さっきも言う通り、人生五十年、タカが知れてらア、そう言うのが、あんまり易しいから、そう言いたくないと言ってるじゃないか。幼稚でも、青くさくても、泥くさくても、なんとか生きているアカシを立てようと心がけているのだ。年中酔い通すぐらいなら、死んでらい。
時的に自分を忘れられるということは、これは魅力あることですよ。たしかに、これは、現実的に偉大なる魔術です。むかしは、金五十銭、ギザギザ一枚にぎると、新橋の駅前で、コップ酒五杯のんで、魔術がつかえた。ちかごろは、魔法をつかうのは、容易なことじゃ、ないですよ。太宰は、魔法つかいに失格せずに、人間に失格したです。と、思いこみ遊ばしたです。
もとより、太宰は、人間に失格しては、いない。フツカヨイに赤面逆上するだけでも、赤面逆上しないヤツバラよりも、どれぐらい、マットウに、人間的であったか知れぬ。
술은 맛있어서 마시는 것이 아니오. 나는 위스키든 꼬냑이든 겨우 넘긴다오. 고주망태가 되기 위해 마시는 것이지. 취하면 잠든다오. 이것도 술의 효용 중 하나.
그러나 술을 마시면, 아니, 몹시 취하면 잊어버린다오. 아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지. 만약 나라는 인간을 잊을 필요가 없었다면 나는 이딴 것을 마실 이유가 없소.
'나를 잊고 싶다' 라니, 거짓말쟁이. 잊어버리고 싶다면 일 년 내내 술을 마시고 취해 있으라지. 이것을 데카당이라고 한다. 쓸데없는 핑계를 대지 마라.
나는 살아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인생 오십 년, 대단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은 꽤 쉬운 일이기에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유치하고 미숙하고 촌스러워도 뭔가 살아있는 증거를 내세우려고 마음먹는 것이다. 일 년 내내 취해 있을 거라면 죽는 게 낫지.
일시적으로 자신을 잊는 일은 매력적인 일이오. 이는 분명 현실적으로 위대한 마법이지. 옛날에는 울퉁불퉁한 50전 짜리 동전 하나면 신바시 역 앞에서 잔술 다섯 잔을 마시고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 요즘은 어려운 마법이지만. 다자이는 마법사 실격이 아니라 인간실격이라오. 그렇게 굳게 믿으셨다.
본래 다자이는 인간에서 실격당하지 않았다. 숙취로 얼굴이 달아올라 역정이 난 상태였지만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역정이 나지도 않은 놈들보다도 얼마나 제대로 된 인간적인 자였는지 모른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참고해주세요~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욕망에 대하여>, <나의 장례식> 원문 파일도 첨부합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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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1 20:31
    안고라면 니체의 이 구절을 다자이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라고 상상해봅니다.
    '네가 체험한 모든 것, 모든 시도, 오류, 실수, 착각, 정열, 너의 사랑과 희망이 너의 목표 속에서 남김없이 꽃을 피우도록 성취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다자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삶'이었다라고 하는 안고의 비판이 처음에는 '뭐, 심하군!'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버린 벗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임을 알겠습니다. 안고는 다자이의 글을 정말 좋아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