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5.22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5-18 16:28
조회
82
슬슬 <불량소년과 그리스도>의 끝이 보입니다. 안고는 다자이의 작품이나 유서를 분석하면서 다자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다자이의 자살을 비판적으로 보는듯한 안고의 말을 잘 파헤쳐보면 뜻밖에도 다자이에 대한 찬사와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자이의 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그에 대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안고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실격에 자살극을 일삼던 다자이는 사실 누구보다도 어엿한 인간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다자이는 자신에게 갈채를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서비스 정신이 넘쳐나는 M.C였지요. 그는 숙취에 절어 '죽어볼까?'라고 말하고 그럼 그의 팬들은 갈채를 보냅니다. 안고가 보기에 다자이의 죽음은 그 갈채에 떠밀린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매번 '죽어버릴까?' 라고 말하던 다자이는 사실 선량하고 온전한 인간이고자 했습니다. 안고는 그런 상식과 온전함을 원하는 인간인 다자이가 특별함을 원하고 추구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게 얼마나 본인을 힘들게 했는지를 말합니다. 안고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고에게 문학은 통속과 상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속과 상식이라는 인간의 조건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자이는 가장 전형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이었으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러한 다자이에 대한 해석은 안고가 그에 대해 얼마나 세심하게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고는 다자이가 죽은 1948년에 이 글을 썼을텐데, 외래어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외래어를 만나도 어떻게든 맞는 한국어를 찾아 집어넣어야 하는 우리말과는 달리, 일본어는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순이 같다고 만만히 봤다가 점점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말이 떨어져가는 이유는 이 외래어 탓도 크지요. 영어 뿐만 아니라 한자어도 적지 않거든요. 일본어에는 한자, 외래어, 그것을 표기할 수 있는 글자(한자, 가타가나, 히라가나)가 모두 공존하는 반면 한국어는 오로지 한글로 한국어를 표기해야 하다보니 그냥 글자 뜻을 옮긴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본어의 가타가나 같은 경우, 아예 태생적으로 외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글자였다고 합니다. 불경을 수입해 그것을 읽는 방법을 가타가나로 단 것이죠. 그리고 히라가나는 여성의 입말을 받아적기 위해 쓰였고요, 한자는 동아시아 공통으로 지식인의 언어로 쓰였습니다. 이 셋이 공존하는 일본어는 같은 말이라도 무엇으로 표기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같은 '고마워요'라는 말도, 표기하는 글자가 히라가나, 가타가나, 한자인지에 따라 누가 어떤 시대에 어떻게 말하느냐가 달라지니까요. 이걸 한국어로 어떻게 잡을지는, 매번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발음을 쓰고 한자나 영어를 병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국어로 그 뜻을 다시 번역하고 그 다음에 써야 하는지 말입니다. 일본어는 알면 알수록 어렵습니다...ㅠㅠ
 太宰の遺書は、体をなしていなすぎる。太宰の死にちかいころの文章が、フツカヨイ的であっても、ともかく、現世を相手のM・Cであったことは、たしかだ。もっとも、「如是我聞」の最終回(四回目か)は、ひどい。こゝにも、M・Cは、殆どいない。あるものは、グチである。こういうものを書くことによって、彼の内々の赤面逆上は益々ひどくなり、彼の精神は消耗して、ひとり、生きぐるしく、切なかったであろうと思う。然し、彼がM・Cでなくなるほど、身近かの者からカッサイが起り、その愚かさを知りながら、ウンザリしつゝ、カッサイの人々をめあてに、それに合わせて行ったらしい。その点では、彼は最後まで、M・Cではあった。彼をとりまく最もせまいサークルを相手に。

彼の遺書には、そのせまいサークル相手のM・Cすらもない。

子供が凡人でもカンベンしてやってくれ、という。奥さんには、あなたがキライで死ぬんじゃありません、とある。井伏さんは悪人です、とある。

そこにあるものは、泥酔の騒々しさばかりで、まったく、M・Cは、おらぬ。

だが、子供が凡人でも、カンベンしてやってくれ、とは、切ない。凡人でない子供が、彼はどんなに欲しかったろうか。凡人でも、わが子が、哀れなのだ。それで、いゝではないか。太宰は、そういう、あたりまえの人間だ。彼の小説は、彼がまッとうな人間、小さな善良な健全な整った人間であることを承知して、読まねばならないものである。

然し、子供をたゞ憐れんでくれ、とは言わずに、特に凡人だから、と言っているところに、太宰の一生をつらぬく切なさの鍵もあったろう。つまり、彼は、非凡に憑かれた類の少い見栄坊でもあった。その見栄坊自体、通俗で常識的なものであるが、志賀直哉に対する「如是我聞」のグチの中でも、このことはバクロしている。

宮様が、身につまされて愛読した、それだけでいゝではないか、と太宰は志賀直哉にくッてかゝっているのであるが、日頃のM・Cのすぐれた技術を忘れると、彼は通俗そのものである。それでいゝのだ。通俗で、常識的でなくて、どうして小説が書けようぞ。太宰が終生、ついに、この一事に気づかず、妙なカッサイに合わせてフツカヨイの自虐作用をやっていたのが、その大成をはゞんだのである。

くりかえして言う。通俗、常識そのものでなければ、すぐれた文学は書ける筈がないのだ。太宰は通俗、常識のまッとうな典型的人間でありながら、ついに、その自覚をもつことができなかった。

다자이의 유서는 실체가 없어도 너무 없다. 죽을 무렵 다자이의 글은 숙취 같아도 어쨌든 현세를 상대로 한 M.C였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시아문> 최종회(4회째인가)는 심하다. 여기도 M.C는 거의 없다. 넋두리만 있다. 이런 것을 쓰는 그의 숨어있는 울화와 역정은 더욱더 심해지고 정신은 소모되어 숨막히게 절실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M.C가 아닐수록 가까이 있는 자들부터 숙취가 일어났으니, 그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다자이는 거짓을 말하며 갈채하는 사람들과 발맞추어 간 듯하다. 그는 그 점에서 최후까지 M.C였다. 그를 둘러싼 작은 무리를 상대로 한.

그의 유서에는 그 작은 무리를 상대로 한 M.C조차 없다.

아이가 평범해도 용서해줘, 부인 당신이 싫어서 죽는 게 아니야, 라고 하고 이부세 씨는 악인이다, 라고 한다.

이것은 만취에서 비롯된 소란일 뿐 M.C는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평범해도 용서해주길 바란다는 것은 안타깝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그는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까. 평범해도 우리 아이가 가련한 것이다.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다자이는 그러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소설은 그가 매우 착실한 인간, 소심하고, 선량하고, 건전하며, 반듯한 인간임을 알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단지 연민해 달라 말하지 않고 특별히 평범하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점에도 다자이 일생을 관통하는 절실함에 대한 열쇠도 있을 터다. 즉 그는 비범함에 홀린, 이례적인 허영꾼이기도 했다. 그 허영꾼 자체가 통속적이며 상식적인 것인데, <여시아문>의 시가 나오야에 대한 넋두리 속에서도 이 점은 폭로되고 있다.

황족이 동정하여 애독하신 것만으로 좋지 않은가, 라고 다자이는 시가 나오야에게 덤벼들었던 다자이는 평소 M.C의 뛰어난 기술을 잊은 통속 자체였다. 그것으로 족하다. 통속, 상식적이지 않고 어떻게 소설을 쓰겠는가. 다자이가 평생 이 하나를 결국 깨닫지 못하고 묘하게 숙취에 맞춰 숙취의 자학작용에 휘말린 것이, 그의 대성을 방해했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 통속, 상식 그것이 아니면 뛰어난 문학을 할 리 없다. 통속, 상식을 온전히 지닌 다자이는 전형적인 인간이었으면서 결국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다음주에 만나요/
전체 1

  • 2019-05-18 20:00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뒷부분에 드디어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자기 죽음에 굳이 이유를 달려고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들먹인다는 것이지요. 자기 삶에 어떤 의미를 따로 부여할 필요가 없듯, 죽음에도 이유가 필요없는 것을. 더 멋진 인생, 더 훌륭한 문학, 더, 더, 더한 것을 꿈꾸는 이들의 '그리스도'를 안고는 비판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이 더 진중해집니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