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9.5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9-02 15:36
조회
69
 

니나노 일본어 4시즌 시작했습니다. 이번 니나노 세미나는 사카구치 안고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보고자 가라타니 고진의 <사카구치 안고론坂口安居論>의 한 챕터씩을 각각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어떤 시대착오], [두 개의 청춘], [역사가로서의 안고], [역사의 탐정=정신분석], [타락에 대하여] 총 다섯 개의 글을 번역해서 읽었는데요, 그중 이번 시간에는 [어떤 시대착오], [두 개의 청춘] 두 개의 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 [어떤 시대착오]
가라타니 고진은 [어떤 시대착오]에서 자신이 전전/전후의 시대상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전쟁으로 호류사나 뵤도원이 불타 없어져도 전혀 곤란하지 않다, 전통이나 문화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와 관계없이 생활에 있다고 하는 <일본문화사관> 같은 글은 정말 전쟁으로 본토에 폭격을 맞은 전후에야 쓸 수 있는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안고가 <일본문화사관>을 쓴 것은 1942년으로, 일본인이 진주만 이후 승리에 취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정말이지 <일본문화사관>은 ‘시대착오적’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고의 ‘시대착오’는 다른 글에도 계속됩니다. 저는 고진이 소개한 안고의 글 중 <예고 살인 사건>이 재밌었는데요, 여기서 안고는 일본인의 낙천성을 미국의 탐정소설과 비교합니다.

 
일본인은 탐정소설에서의 미국인과 전혀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일본인은 대체로 유머가 적고 또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낙천적인 국민으로, 일본인이 죄로 인해 비관하며 기가 죽는 것 같은 경우는 거의 있을 수 없다.
내 이웃조직은 폭탄과 소이탄 우박이라 해야 할 몇 차례의 세례를 받았는데, 젊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린 부인이 입을 잘못 놀려서 ‘적기敵機가 오지 않는 날은 쓸쓸해’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배를 잡고 웃었는데, 모든 일본인은 겉으로는 크게 괴로운 얼굴을 하고 매일 적기가 와서 곤란하다고 말하면서 뜻밖에도 내심 이 정도의 속물근성을 각자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타버린 자리야 어쨌든 곧 참호생활도 판에 박히면 금방 유유자적하는 일상성을 회복하고 만다. 폭격중에는 움츠려들지만 한 고비를 넘기면 금방 잊는다. 내 이웃조직에는 어린아이나 노인이 매우 많지만 물자부족이라는 점 하나만 제외하면 폭격에 대해서는 불감증인 것처럼 수월하게 넘긴다. (중략)
일본 도시는 건축물에 관한 한 유럽과 비교할 수 없는 폭격피해를 입었지만 국민의 낙천성은 정말이지 미국의 폭탄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불탄 자리 안에서 그것을 통감하니, 미국의 탐정소설 요령으로는 낙천성을 척살할 수 없다는 것을 미소와 함께 통감하는 것이다. (<예고 살인 사건>)

 

이 글은 일견 이본인은 미국의 폭탄에도 거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안고는 미국인들을 ‘귀축鬼畜’이라고 하던 일본인들이 패전 후 미국 점령군을 환영하던 ‘낙천성’을 한창 폭탄을 맞는 와중에 바로 예견합니다.
안고는 전쟁중 <청춘론>(1943)을 쓰고 전후 그 유명한 <타락론>을 씁니다. <타락론>만 읽으면 안고가 전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전쟁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해 고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반년 사이에 세상은 변했다.”로 시작하는 <타락론> 서두를 읽으면 변한 세상 앞에서 반성하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색하는 글처럼 읽히죠. 하지만 안고의 <타락론>은 전쟁중의 글 <청춘론>과 궤를 같이 합니다. 고진은 이 두 글 사이의 연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중戰中에서 전후에 이르기까지 안고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전쟁 중에 쓴 그의 문장이 아무리 반시대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시대 자체에 걸맞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시대를 어떤 대표적 사건으로 환원하고 그 시대 사람들을 다 그 사건의 관계자처럼 엮는 것은 쉽습니다. 과거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도, 지금 나를 보는 것도 그 사건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처럼 보게 됩니다. 안고가 살던 시대는 더구나 전쟁중이었으니 당연히 모든 일이 전쟁과 연관되었습니다. ‘전시체제 문학’ 같은 것도 당연시 되었고 전시체제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검열당했죠. 그런데 안고는 문학이 그런 사건과 관계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만약 전쟁을 잘 치르고 싶다면 비행기를 잘 만들어 전과를 올리면 된다고 하죠. 안고에게 문학의 역할은 그 시대의 대표적 사건에 기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건의 틈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폭탄 우박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적기가 오지 않으면 쓸쓸해’ 라고 중얼거리던 어찌할 수 없는 낙천성 같은 것 말입니다.

 
안고는 누구보다도 전중을, 전후를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안고에게 있어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그는 쓰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현실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그것을 아는 것이 문학의 역할은 아니다. 문학은 개성적인 것이며 언제나 현실의 창조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역사와 현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고가 비역사적인 생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나 거기 없었다고 하는 것, 거꾸로 말해 거기 없는 것이 그를 누구보다도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여준 것이다.

 

 

2. [두 개의 청춘]
그럼 안고는 자기 시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독야청청 신선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나? 실제로 안고에게 그렇게 물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살던 시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나요? 주변 문학가들이 죄다 좌익운동에 몸담고 있었는데 당신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까? 안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고,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_(ツ)_/¯’

 
전쟁 중에, 나는 히라노 켄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내가 청년기에 좌익운동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동요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항상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간단하게 웃어넘겼다.
받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애초에 청년 된 자가 시대 유행에 무관심할 리는 없다. 그 관심은 전부 일종의 동요인데, 이 하나의 동요에 대한 말은 시대 전체의 관심에 관련해서 말해야 하는 성질의 것으로, 일면만 보자면 왜곡되기 쉽다.
내가 너무 간단히 ‘동요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잘라 말하니, 히라노 켄은 쓴웃음을 지었는데, 이것은 그의 질문이 너무 억지스러운 것이었다. 했다, 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쪽을 잘라 말할 수도 있었다. 무엇을 말하든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다. (<어두운 청춘>)

 

실제로 안고는 전쟁 중 좌익운동을 하는 문인들과 교우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좌익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중으로 얻어맞고 있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거의 유일한 세력으로서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탈락/전향하고 극심한 허무감을 떠안으며. 대표적 좌익 문인 중 한명인 아라 마사토는 이를 ‘두 개의 청춘’으로 구분합니다. 좌익운동을 하며 휴머니즘을 꿈꾸는 ‘첫 번째 청춘’ 그리고 전향 후/전후에 밀어닥친 허무감에 휩싸인 ‘어둠의 청춘’입니다.
시대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좌익운동과 교유하기도 한 안고는 어땠을까요? 안고는 아라 마사토를 명백하게 의식한 글 <어두운 청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청춘은 어떤 ‘-주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한다는 용기와 행위에 있다, 어떤 절대적인 것에 기대어 그것을 추구하는 청춘/그 절대성에 배반당한 청춘 같은 것으로 나눌 수 없다고 말입니다.

 
서커스의 한 자리 가입을 부탁한 나였지만, 나의 자포자기도 공산주의에 몸을 던졌노라 떠들어댔던 것도 없어졌다. 나는 나의 욕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속여가면서 공산주의자로 있을 수 없는 나의 이기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청춘은 어두웠다. 몸을 던질 만한 곳이 없는 어둠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몸을 던지는 곳을 서커스의 한 자리로 공상하면 했지 공산주의로 공상하는 것은 더이상 완전히 없어졌다.
나는 하여간 인간에게 확실히 걸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는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의 절대, 자신의 영원, 자신의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우선 자신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치에 대해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고 나에게 정치가 문제되던 때, 꽤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이론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자가당착. 내가 공산주의에 동요한 것은 어쩌면 가장 많은 주의자들의 ‘용기’있는 도약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웅주의는 청년으로서 이지적이든 맹목적이든 멸시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이었다. (<어두운 청춘>)

 

안고는 <청춘론>에서 어디에도 기대지 않으면서 위태위태하게, 어설프게 곡예를 하는 서커스단을 ‘청춘’이라 했지요. 살아있는 한 계속 뭔가를 하는 것! 거기에는 누군가의 갈채나 비난 같은 것이 덧칠될 여지가 없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비겁하다는 손가락질 받기를 두려워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겠죠. 안고는 늘 “그 모든 감상성을 물리친 정신적 자율”을 동경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좌익운동이든, 그리스도교든, 서커스단의 아슬아슬한 곡예든 말이죠.

 
고진의 글을 읽으며 대단한 안고가 더 대단해 보입니다 @_@ 역시 글이 나온 역사적 맥락을 아니까 안고가 보인 사유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네요. 다음주는 안고가 역사를 어떻게 보고있는 지를 더 본격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사카구치 안고론> 번역본 가져 오시고요.
저번 시간에 시작하려다 말았던 [부모를 버리는 것에 대하여] 강독 시작합니다.
있으시겠지만^^ 과제 다시 한번 첨부하겠습니다~

 

수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19-09-03 10:12
    안고의 글을 읽으면, 안고가 니체를 읽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이상주의의 허무주의와 대결했으며, 철저한 역사 의식을 통해 영원히 청춘일 수 있는 윤리를 실험했습니다.
    드디어 안고의 '부모를 버리는 것'이군요. '부모가 있어도 아이는 자란다'고 했던 말이 징~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