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1.19 소세키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1-13 17:01
조회
373
161119 소세키 공지
오늘 채운쌤은 청소 프로젝트의 취지를 밝히셨죠(!). 우리는 전공자처럼 소세키를 읽는 것이 아니며(그렇게 읽을 수도 없고) 소세키를 통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평을 만나는 것이라고요. 소세키가 쓴 백 년 전 소설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 것이 ‘청소’ 프로젝트의 관건이었습니다. 문제의식. 나라는 존재의 감정과 욕망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소세키를 보면서 그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여 글을 쓰고 그리고 도쿄를 가자!는 야심찬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제야(!) 밝히셨던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감정과 욕망을 만드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걸 모르면 자기 가족사, 자기가 가족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이야기하다가 끝날 수가 있는 것. 자기 가족관계를 사회적 맥락에서 보지 않으면, 즉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겹쳐지지 않으면 글은 일기나 반성문이 되기 십상입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도, 소설과의 거리가 다양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논평만 반복한다면 재미없는 글이 되겠죠.
예컨대 소세키가 여성에 대해 쓰는 것을 볼 때 그가 여성을 잘 모른다고 하든가, 여성을 수동적으로만 그린다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작가가 출현시키는 세계를 분석해내지 않는다면 논평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소세키가 그리는 여성, 그가 말하는 개성, 그리고 출연시키는 고등유민이라는 존재들, 그의 소설에 꼭 등장하는 기차, 부각되는 시각적 이미지... 이것들을 나열하고 그치는 것은 소세키와 내 문제가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고등유민의 경우, 그들은 당시 대학을 나온 지식인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시스템에 편입되는 노동의 길입니다. <그 후>에서 히라오카와 다이스케는 똑같이 대학을 나왔지만 히라오카는 은행원이 되었고, 다이스케는 일하지 않는 삶에 머물죠. 소세키 소설에서 본격 고등유민이라고 할 만한 첫 번째 인물. 그런데 다이스케는 ‘일하지 않겠다’고 택하기보다는, 그러니까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기 보다는 그것을 계속 유예합니다. 채운쌤은 어영부영함이라고 표현하셨고, 다이스케 자신은 비겁함이라고 말했죠. 이런 어영부영함이 소세키 소설에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은 내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은 소세키 소설에 드러나는 인물의 어영부영함은 지금 사람들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닮았다고 하는 단순 비교도 글을 끌고 나가는 데 막다른 곳으로 이르게 곳으로 이르게 합니다. 그들을 어영부영하게 만드는 힘과 지금의 사람들이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그래야 소세키와의 거리가 확보되고 소세키를 현대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것. 소세키의 무엇을 읽든 ‘내’가 지금 소세키를 읽는다는 것을 놓지 말아야 하며, 그 ‘나’는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소세키와의 다양한 거리 확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산다. 그것이 소세키의 소설과 만나서 어떻게 예리하게 다듬어지는가, 드러나는가, 어떻게 실패하는가. 늘 내가 소세키를 읽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거리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 늘 명심하며 소세키를 읽고 글을 써 옵시다~

자세한 후기는 건화가 성심을 다해 써 올려 줄 거예요~

다음 시간은 <문>과 <만한 이곳저곳> 읽어옵니다.
<문>을 읽고 공통과제를 쓰고, <만한 이곳저곳>을 읽고 거기에 드러난 시선을 분석해 옵니다.
즉 과제가 두 개^^

간식은 진희쌤, 종은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1

  • 2016-11-14 13:07
    흠... 문제의식을 끌어냈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일기가 되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ㅋㅋㅋ 어떻게 읽고 써야 할까요~ 채운쌤의 얘기는 같은 걸 들어도 항상 새로운 것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이란 ㅋㅋㅋㅋ